평온히, 내 속도로, 필요한 만큼만

발우공양

by 세상 사람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설악산으로 수련회를 갔다.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이 아니라 당시 서클 활동을 하던 불교 연합 학생회에서 가는 템플스테이였다. 열 일고여덟 살, 그것도 여고와 남고 학생들이 함께 갔으니 사찰에서 묵는 수련회답지 않게 아주 잡념 가득한 여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본래 종교가 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엄마와 막내 고모 손을 잡고 성당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친구를 따라 동네 교회에 (놀러) 가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이제 절에 갈 차례였던 걸까. 교내 노래반에 들었는데 그 서클이 불교 학생회 소속이라 멋모르고 법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 해 여름 수련회까지 간 것이었다.

준비물은 여벌의 옷과 세면도구 외에 특이한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바로 발우공양 체험에 쓸 각자의 그릇이었다. ‘발우공양(鉢盂供養)’은 스님의 평소 식사를, 발우는 그릇을 일컫는 말이다. 밥, 국, 찬, 그리고 헹굼물인 청수를 위한 그릇까지 총 네 개와 행주 한 장, 수저 한 벌을 챙겼다. 짐을 싸던 나는 이 체험의 의미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저 발우로 쓰기에 마침맞은 비주얼의 나무 그릇이 집에 있다는 사실이 기쁜, 그야말로 세속의 아이였다.








수련 프로그램은 법회와 참선, 조별 활동, 108배, 탑돌이, 공양 등으로 구성되었다. 저녁때의 기억일까, 법당 안의 그리 밝지 않은 조도만이 얼핏 그려지고 내용은 어렴풋하다. 조를 짜서 아이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뭔가 공부한 것 같지만 그 역시 또렷하지 않다. 108배 시간에는 1080배에 도전하는 이들에 경외감을 품으며 나는 중도에 포기했던 것 같다. 그런 나도 허벅지와 종아리에 알이 박이긴 했다.

챙겨 간 목기 덕인지, 공양 시간만큼은 기억의 퍼즐이 좀 맞춰진다. 밥때가 되면 수행자들은 각자의 자리에 발우를 펼쳐 놓고 앉아 배식을 받는다. 먼저 청수 그릇에 받은 물로 수저와 그릇을 헹군 후 물은 다시 동일한 그릇에 모은다. 밥, 국, 찬을 받는다. 음식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먹는다. 다 먹은 후 무 조각으로 그릇을 닦고 마실 물로 헹궈 그 물까지 마시고, 마지막에는 다시 청수로 수저와 그릇을 헹군 뒤 퇴수 그릇에 버린다. 마른행주로 물기를 닦고 그릇을 정갈하게 포개 정리한다.

이때 최후에 버리는 물에도 음식찌꺼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때 들은 ‘아귀’ 설화를 검색으로 재조합해 보니 다음과 같다("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말고). 전생에 탐욕의 업보가 있으면 배고픔과 갈증에 허덕이는 아귀 지옥에 살게 되는데, 아귀는 목구멍이 바늘구멍처럼 작아 아무리 먹어도 굶주리게 된다. 발우공양에서의 청수는 아귀에게 주는 물로, 작은 음식찌꺼기라도 있으면 불로 변해 아귀의 목을 태운다고 한다. 죽어서 아귀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식탐을 부려서는 안 되고, 또한 아귀의 목구멍을 불에 태우지 않으려면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

기억이 맞다면, 우리는 빈 방이 여러 개 붙은 집채의 마루에 밖을 향해 일렬로 앉아 밥을 먹었다. 산의 청량한 공기를 온 얼굴로 맞으며. 그리고 배가 고플 나이였다. 아마 아귀의 처절한 스토리가 등장하지 않았어도 음식은 남기지 않았을 것 같다.








사찰에서는 마늘과 젓갈도 쓰지 않기 때문인지 찬이 대체로 담백했다. 평소 채소류를 두루 잘 먹는 편이라 어려움은 없었으나, 모든 반찬을 뛰어넘는 새콤함으로 무장한 김치볶음의 등장에 입속은 폭죽이 터지는 듯했다. 나는 ‘나중에 어떤 연유로 채식을 하게 되었는데 입맛이 없으면 김치를 볶아 먹으면 되겠구나!’ 하며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속으로 박수를 쳤다. (당시 상상했던 채식은 산채 나물과 뿌리째 씹어 먹는 생식 같은 거였다.)

김치볶음 다음으로 좋았던 것은 누구나 조용히, 천천히, 자신의 그릇에 주어진 만큼의 음식을 남김없이 먹는다는 점이었다. 큰소리를 내거나 남겨서는 안 된다는 규율에서 오는 경건함에 쌀 한 톨, 푸성귀 한 줄기가 사뭇 달리 느껴졌다. 반찬 묻은 그릇을 헹군 물까지 마셔야 하는 지점에서는 약간 움찔하기도 했는데 나 혼자 먹은 그릇이고 어차피 물과 음식은 뱃속에서 섞인다 생각하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산속의 절에서 자연을 마주하고 먹는다는 특수성의 영향이 컸지만, 무엇보다 고요한 가운데 몸과 마음에 이는 정적인 생동감이 좋았다.

평온히, 내 속도로, 필요한 만큼만 취한다는 것. 살면 살수록 쉬운 일이 아니다. 밖은 쉽게 시끄럽고, 자극은 다짜고짜 내 타임라인을 침범한다. 나는 어느새 혼란스럽게, 잰걸음으로, 담을 수 있는 것 너머를 원하고 있다. 음식 얘기를 쓰다 떠올린 기억이지만 발우공양이 그리운 건 맛 때문은 아닐 것이다.








조금 아쉽다. 깨달음보다는 사념이 나를 지배하던 때의 일이라 그런지 그 외 부분이 영 뒤죽박죽이다. 한창 초록이 무성한 나무들. 구불길을 오르는 버스. 아직 서먹해 더 설레던 동기들의 장난과 웃음과 스치는 눈빛. 푸르게 적막한 안개가 온 산을 채운 새벽, 전에 없이 맑은 정신으로 보드득 흙을 밟던 느낌. 그때를 떠올리면 이 모든 조각들이, 물결 위로 떨어져 반짝이는 햇빛처럼 우르르 일렁이다 사라질 뿐이다.

어쩌면 내 경험이라고 해서 영원히 내 것은 아닌가 보다. 세세한 장면을 기억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인연도, 기억도,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게 둘 수밖에 없는 걸. 일부러 떼어낼 필요는 없겠지만 억지로 잡아두어서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날엔 함께였지만 서둘러 다음 생으로 떠난 한 친구도, 한때는 전부였지만 지금은 형체 없이 사라진 인생의 다른 시기들도.

수련회 마지막 날 나는 ‘반야행’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 역시 인터넷의 힘을 빌어 찾아보니, 반야(般若)는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प्रज्ञा prajñā)’ 또는 팔리어 ‘빤냐(paññā)’를 가리키는 낱말로 뜻에 따라 지혜(智慧)로 번역한다고 한다. 반야행은 즉, ‘지혜로운 행동’을 뜻한다. 오직 체험과 실천으로써 진리를 자각할 것(머리로만 아는 지식과는 다르다).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에의 집착을 버릴 것. 나아가 체득한 반야를 현실 속에서 자비라는 이름으로 베풀 것. 오늘 여기 앉은 나와는 어마어마하게 멀지만, 언젠가는 가까이 가 보고 싶은 이름이다.



Se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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