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독서회 필드트립 - 전주 도서관 투어
전주에 관해 들은 것이라고는 한옥마을과 영화제, 비빔밥과 콩나물국밥, 하나 더하면 수제 초코파이 정도였다.
이번 여행지를 전주로 택한 것은 우연이었다. 얼마 전 모 기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가 신청을 해서 예비 선정자로 뽑혔는데, 장소가 전주였다. 결과 발표가 나지 않은 채 ‘이번에 전주에 가 보려나?’하는 마음이 몽글몽글 생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레드에 ‘제주도 가서 살까?’ 하는 공상 어린 글을 올렸는데, 한 스친이 댓글로 전주도 괜찮다는 얘기를 들려준 것이다.
그러고도 선뜻 실행은 못하고 있었다. 앞서 제주행 항공권 끊었다가 당일에 취소한 사건(?) 이후로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클럽 활동이니, 여행기니,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이전의 나는 현관문 여는 데도 5분씩 고민하는 자발적 격리자였다. 꽤 오랫동안.
그래, 용기를 내 보자. 그렇게 전주 명소를 검색하다 발견한 ‘전주 도서관 여행’. 무릎을 쳤다. 이거야. 해설사와 함께하는 공식 프로그램은 일정이 맞지 않았지만, 혼자 슬슬 걸어 한 군데씩 들르면 좋을 듯했다. 이름하여 [금요독서회 필드트립 - 전주 도서관 투어] 기획 스타트.
한옥마을 일대를 중심으로, 갈만한 후보 몇 군데를 찾아 두었다. 여행을 시작한 월요일은 휴관. 이후 언제로 할지 각을 재다가 3일 차로 계획했다. 기상 예보에 비 소식이 있었는데, 비 오는 날 도서관도 운치 있을 것 같았다.
다가동 숙소에서 나와 남쪽으로 걸었다. 조금 가면 다가여행자도서관, 그길로 더 가면 전주남부시장, 거기서 건너면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이라 그 경로로 정했다.
다가여행자도서관에 도착하자, 어제까지 만끽한 한옥마을 정취, 수목원의 자연, 산책하던 거리의 자유분방함과는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규모가 크지 않아 독립 서점이나 북카페 같은 인상도 풍기는 곳이었다. 이름답게 여행 관련 책이 가득해서, 여행 첫날을 함께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를 다룬 책 위주로 골라 창가에 앉았다. 진지하게 독서할 작정은 아니라서 사진이 많은 책을 훑으며 여행 감성을 충전했다.
한 시간 반쯤 머물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래된 상가 건물들 사이를 걸어서. ㅇㅇ상회, ㅇㅇ당, ㅇㅇ사…. 낯익으면서도 낯선 풍경을 지나, 남부시장 안 비빔밥집에 도착했다. 어제저녁 컵밥이 부실했으니 오늘은 지역 음식을 먹자. 피순대가 유명하다 들었지만, 당기지 않아 육회비빔밥을 택했다. 잔술로 파는 모주도 한 잔 곁들이니 기분이 났다. 모주는 1~2% 내외의 저알코올 음료인데, 은은한 수정과 맛이 난다.
식사를 마치고 또 걸었다. 싸전다리를 건너며, 전주천 저편에 첫날 노을을 봤던 청연루가 보여 마음으로 인사했다. 다음 코스인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은 바로 초입에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곳은 규모가 더 크고, 안쪽에도 자리가 더 많았다. 정원이 내다보이는 자리, 나무 톤 인테리어, 노출 콘크리트와 여기저기 놓인 화분이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책 셀렉션은 예술 분야 중심이라 나에게 익숙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서로 다른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보는 것을 좋아해서, 독서회에서도 늘 그렇게 책을 고른다. 병렬독서라고 하던가. 명칭은 관심 없다.
2층으로 올라가니 열람실이 한층 더 아늑했다. 한쪽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 골라 온 책 중 『ALONE』이라는 책을 펼쳤다. 22명의 작가가 ‘혼자였던 순간’을 적은 에세이 선집이라고. ‘줌파 라히리’ 작가 편을 미독하며, 마음에 닿은 부분을 옮겨 적었다.
… 내 안에 간직된 작가라는 꿈이 마치 방 안에 갇힌 한 마리의 파리처럼 느껴졌다. 살아 있긴 하지만 하찮은, 어떤 목적도 가지지 않은, 그게 있다는 걸 인식할 때면 언제나 불안해지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나를 혼자 내버려두는 그런 파리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그런 단계까지 나아간 것도 아니다. 나의 불안감은 매우 조직적이고 선제적인 성격을 띠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가기도 전에 내가 먼저 나 자신을 거부해 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줌파 라히리, p. 47).
내 안에 간직된 음악가라는 꿈이, 떠올랐다.
또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새 도서관에 가기는 애매해 좀 걷기로 했다. 세 번째 숙소는 호텔. 첫날 게스트 하우스에 이어 어제는 모텔, 마지막 밤은 호텔로, 점층적(?) 구성이다. 만약 비가 오면 호캉스를 즐기려던 의도도 있었다. 대로변에서 풍년제과를 마주쳐 초코파이 하나를 샀다. 올라가다 보니 헌책방 거리라고도 불리는 동문예술거리에 접어들었는데, 그때부터 비가 쏟아졌다.
아쉬운 마음을 누르며 일찍 호텔로 향했다. 막상 가 보니 방이 좁은 낡은 호텔이었다. 그래도 하룻밤 쉬기에는 충분했다. 무슨 국제 대회가 있는지 단체 투숙객으로 로비가 시끌벅적했지만, 수면에 방해될 만큼은 아니었다.
방에서만 시간을 보내려니 출출해서, 배달 앱을 켰다. 호텔에서 배달시키는 건 처음이었다. 점심때 후보에서 밀려난 피순대를 시켰는데, 안타깝게도 입에 맞지 않아 작은 실패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기분 전환 하는 것도 나의 몫. 애를 쓰다 결국 밤 산책을 나갔다.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려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알고 보니 그 뒤편이 전주 영화의거리였다. 영화제 기간이 아니고서야 상가가 즐비한 곳이라 특이점이 없었지만, 나는야 여행객. 비에 젖은 노면이 반사하는 오색찬란한 불빛을 조명 삼아 촉촉한 노래를 귀에 꽂고 걸었다.
상기된 기분으로 호텔로 돌아와, 남은 커피와 함께 초코파이를 먹었다. 아, 두 개 살 걸.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스타벅스를 두 번이나 갔다. 아플 때, 그리고 스트레스받을 때. 문득 ‘스벅’이가 나에게는 ‘어려울 때 친구’인가 싶어 웃었다.
마지막 밤이다. 내일도 도서관 탐방을 이어가려면 일찍 자야지.
- 4일 차로 계속됩니다. -
Seine
첫머리 사진은 다가여행자도서관에서 전주 엿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