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의 어젠다, 클럽 별칭 제정 건

클럽운영팀 기획 회의

by 세상 사람


이름짓기 놀이를 좋아한다. 이번 시리즈를 쓰면서도 한편으로 끊임없이 이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클럽을 시작하기 전, 그리고 그보다 더 전부터 이 놀이를 즐겨 왔다.


"클럽이라고 불러 줘"라는 제목을 붙이고 본격 클럽 수기로 방향을 잡기 이전에, 혼자 노는 이야기를 모아 "잘 키운 나 하나"라는 시리즈를 써 보자 상상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지어 둔 영문 제목은 "A bit of A Loner"였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쓰이는 관용구로 a bit는 '조금, 약간'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나는 bit의 '부분, 조각'이라는 뉘앙스도 살려, '혼자 있는 나'라는 측면, 혼자 노는 어떤 사람의 일면을 조명하는 얘기를 한번 늘어놓아 보고 싶었달까.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이 제목들에 아직 애착이 있지만, 좀 더 구체성을 띠는 ‘클럽 활동’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또한 너무 혼자에 힘주기보다는 관계의 기틀을 두고 싶기도 했다.


이렇듯 이름을 붙이고, 뜻을 담고, 반짝거리다 시들해지기도 하면서, 오래도록 이 놀이를 좋아해 왔다.


나의 1인 클럽은 현재까지 4개다. 이것들을 두고도 틈만 나면 개념화하고, 아이디어를 확장하며 논다. 최초에는 '글쓰기 모임'이나 '집밥 살롱'처럼 일반명사의 조합으로 클럽을 지칭했는데,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레 각각의 고유성을 살린 이름을 붙이고 싶어졌다. 새 이름을 지으면 무얼 할까. 로고 디자인? 그건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MOI · 엠오아이


글쓰기 모임에 첫 별칭을 붙인 날, 신나서 스레드에 올렸다. MOI: Mono-writing Initiative. 어딘가 고독하고 거창하면서, 불어 moi가 me(나)를 뜻하기도 하니 홀로 하는 글쓰기 모임에 맞춤이었다. 이에 한 스친이, 그가 혼자서 하는 모임에도 이름을 붙여 봐야겠다는 공감의 댓글을 남겨 줘서 내심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스친의 모임 이름은 나중에 들었는데, 무척 근사했다.



B-side Walk


다음은 밤산책 클럽 차례. 아이디어의 출발은 '밤'과 'sidewalk(보행로)' 그리고 '불광천'이었다. 내내 night walk에서 맴돌다가, B-side Walk라는 말을 떠올렸다. B-side라고 하니 카세트테이프의 뒷면 같은, 뭔가 비주류의 그늘이 느껴지면서도 외진 곳에 숨겨진 진짜(?) 같은 맛도 난다. "옥상시선" 연재 때 '포옹'이라는 글​로 밤을 예찬하던 정서가 상기됐다. 밤 산책이 내게 주는 영향을 표현할 만한 닉네임으로 제격이었다.



Happy Hour @ Hotel Macadamia


집밥 살롱은 좀 고민했다. '살롱'이란 말이 모임이나 클럽보다는 색채가 있으니, 그냥 이대로 부를까도 싶었다. 하지만 싫어. 이름짓기 놀이를 멈출 순 없는걸. 메인 콘셉트는 '식당'이었다. 손님에게 음식을 차려 내는 시간이니까. 하지만 좀 더 '팝업'스러운, 열렸다가 사라지는 느낌을 원해. 그러던 중 Happy Hour가 뇌리를 스쳤다. 통상 음식점이나 바에서 특정 시간대에 일부 메뉴와 주류를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는 시간을 뜻하는 말. 난 여기서 happy의 본뜻을 강조하고 싶었다.


10년 차에 접어든 집밥 인스타그램 계정명이 마침 @hotel.macadamia니까 둘을 합치자. 때때로 열리는 나의 집밥 살롱은 호텔 마카다미아의 해피 아워. 잘 차린 한 끼를 먹는 동안 행복해지기로 하는 시간.


*예상할 수 있겠지만, Hotel Macadamia는 실제 내가 운영하는 호텔일 리 없고, 살고 있는 집의 애칭이다. 2016년에 붙였다.



00독서회 · Public Reading Society


마지막은 금요독서회다. 지난번 Chapter 1: 클럽 활동 보고서​에 언급했듯, 독서회 요일을 한정 짓고 싶지 않아 어차피 변경이 필요했다. 또 하나 고려할 사항은, 모임의 주 장소를 도서관으로 정했다는 점. 개설할 때만 해도 서점이든 어디든 특정하지 않았으나, 전주 여행을 통해 도서관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그리하여 오늘 지은 별칭은 00독서회(숫자 00을 '공공'으로 읽는다), 영어로는 Public Reading Society. 공공도서관에서 개최한다는 의미에, 1인 클럽 치고 과하게 공적인 명칭이라는 아이러니를 더했다.





이것으로 네 클럽 모두에 별칭 붙이기를 완료했다. 별칭을 불러 줄 사람 역시 나 한 명이겠지만. 일단 이렇게 시행하고, 수정 보완 건은 다음 회의에서 협의합시다.


Seine



사진은 Happy Hour @ Hotel Macadamia 11회차 증빙, 손님이 달걀의 익힘 정도를 마음에 들어 했던 오므라이스.


keyword
화, 수, 금, 토, 일 연재
이전 15화도리부터 레너드 셸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