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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아 Mar 30. 2022

서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첫 번째 편지

용두사미에 관한 말을 나눴었잖아요. 그래서 사미가 되지 않기 위해 늦은 시각이지만 의자에 앉았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떤 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꼭 북페어에서 이 책을 설명하는 윤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파악하는데 음악 취향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친해지고 싶은 이가 있다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물어봅니다. 그 음악을 들으며 그 사람을 떠올리죠.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음악이 있는데 그중 한 곡이 그 사람에게 닿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게 멜로디든 가사든 분위기든. 나중에 어디선가 우연히라도 그 음악이 들리면 그 사람이 떠올라 좋은 기분이 됩니다. 윤의 최애곡은 무엇인가요? 저의 최애곡은 몇 선택지 내에서 바뀌는데요. 요즘은 나이트 오프의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알고 있지만'이라는 곡입니다. 밴드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어렸을 때부터 넬에게 빠져 살고 있습니다.) 차분한데 차분하지 않은 묘한 느낌의 곡을 좋아하거든요.


보통은 유튜브 뮤직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출퇴근을 합니다. 하지만 가끔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은 날이 있습니다. 오늘이 그랬어요. 습관처럼 이어폰을 끼지만 아무런 음악이 나오지 않고 바깥소리가 적당히 차단됩니다. 그러면 나도 바깥과 적당히 차단된 느낌을 받죠. 이 차분한데 차분하지 않은 느낌이 좋습니다. 머리가 쉬어지는 기분이에요. 사람들이 백색소음을 듣는 건 그런 이유일까요? 그렇게 적당히 차단된 소리와 눈에 의지해 길을 걸으면 매일 걷던 길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바깥이 싫어 이어폰을 꼈는데 바깥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니 이상하죠?


윤은 바깥을 차단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하네요.


저는 매일 책방으로 출근을 합니다. 3층의 작은 곳이라 손님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혼자 있을 때가 많은 책방이죠. 친구들에게 너 같은 외향형 인간이 책방에서 일하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많이 들어요. 물론 사람에게 에너지를 얻는 일도 기쁘지만 혼자서 이렇게 책을 읽는 시간도 나쁘지 않습니다. 앗, 책을 읽는 것도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니 이 또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겠다는 생각을 방금 했어요. 역시 저는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가 봅니다.


바에서 처음 본 윤은 어른의 경계선에 있는 듯 보였습니다. 누군가가 넘으라고 강요하는 경계선을 아직 넘고 싶지 않아 보였죠. 어쩌면 저 역시 그런 사람이었기에 비슷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불쑥 제안한 '느리고 솔직한 편지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받아주어 고맙습니다. 이래저래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우리는 바에서 가끔 마주치겠지만 서로 어색해하지 않기로 해요. 윤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 외에는 또 다른 자아가 활동을 하고 있을 시간일 거 같거든요. 나의 솔직함도 윤의 솔직함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서운해하지 않기로 해요. 그러려고 편지를 제안한 것이니까요.


우리가 나누는 편지에서 서로의 솔직한 에너지를 나누기를 바라요. 그것이 어쩌면 이 편지에 갇혀있더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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