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설레고 싶다

심장이 늙는다

by 효문

늦은 퇴근길이었다. 골목길을 지나다가 막 술집에서 나온 두 중년남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다.

"아, 연애하고 싶다"

"미친놈"

"예쁜 여자를 만나고 싶은 게 아니라, 다시 설레고 싶다고."



"엄마, 너무 설레"

어렸던 딸이 그리고 지금 청년이 된 딸이 가장 많이 하는 말 가운데 하나이다. 그 말을 하는 딸의 모습은 눈부시게 예쁘고, 딸이 내뿜는 에너지 덕분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때가 많다. 생각해 보니 한 때는 나도 그랬다. 날씨가 좋아서 설레고, 친구들과 놀러 갈 생각에 설레고, 그 사람의 미소에 설레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더 이상 설렘을 느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무덤덤했다.


그리고 다시 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저녁을 준비하는데 심장이 쿵쿵쿵 나대기 시작했다. '이 타이밍에 왜? 된장찌개에 넣으려고 냉장고에서 꺼낸 두부가 골드바로 변신한 것도 아니고, 된장찌개를 끓여서 섹시한 남자와 같이 먹을 예정도 아닌데, 도대체 왜?'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심장은 이내 평정을 회복했다. 하지만 '왜'라는 물음은 길게 이어졌고, 질문은 이내 걱정으로 탈바꿈했다. '설마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걱정의 눈덩이를 굴리기 전에 행동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득달 같이 예약하고 병원을 찾았다. 48시간 홀터 모니터를 착용하고 검사를 했고 결과는 '부정맥'이었다. 다행히 걱정해야 하는 유형은 아니라고 하는데 여전히 마음은 불편했다.

"부정맥이 왜 생기는 거예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노화죠. 심장도 근육으로 움직입니다. 나이가 들면 근육기능이 떨어져서 갱년기 무렵에 부정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아, 심장도 늙는구나!' 하긴 나이가 들면 무릎 관절도 늙고, 두뇌도 늙는데, 심장이라고 안 늙을까. 노화는 위장으로도 오고 심장으로도 올 수 있는 데, 왜 심장은 늙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심장의 노화'라는 말은 지독하게 씁쓸했다. 의사는 적절한 운동을 권했고, 나는 시키는 대로 열심히 뛰었다. 운동 덕분인지 아니면 코로나 부작용으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행히 두어 달 지나자 '불쾌하면서도 서늘한 느낌을 동반했던 두근거림'은 사라졌다.


어쨌든 사춘기의 설렘과 갱년기의 두근거림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춘기의 설렘이 5월의 햇살이라면 갱년기의 두근거림은 11월의 빗줄기였다. 11월을 5월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두근거림을 설렘으로 되돌리고 싶다면 일단 심장 근육부터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세상을 향해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한다. 뭔가를 혹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설렘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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