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찾아온 겨울왕국의 엘사
마음이 따뜻하면 정말 손이 찰까?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한 때 내 마음은 따뜻하다 못해 펄펄 끓었을 것이다. 어느 날 밤, 낯설고도 날카로운 감각에 눈이 번쩍 뜨였다. 꽁꽁 언 쇠붙이에 발뒤꿈치가 쩍 달라붙은 느낌에 잠은 확 달아났고, 본능적으로 손이 움직였다. 정신없이 발뒤꿈치와 발목 뒤쪽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약간 서늘한 느낌이 들 뿐이었지만, 피부 안쪽 어딘가에서 '한랭지옥'이 펼쳐진 것 같았다. 단순히 '시리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냉기였다. 한참 동안 문지르고 비볐지만 차가운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안에서부터 터져 나온 냉기가 수많은 바늘이 되어 피부를 마구 찔러대는 것 같았다.
수은주가 30도를 웃도는 지난해 여름, 그렇게 엘사(?)가 나를 찾아왔다. 손가락에서 신호탄을 쏘았던 갱년기 증상은 불면증을 거쳐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엘사의 방문으로 이어졌다. 세상은 한 여름인데 내 몸속에는 '작은 겨울왕국'이 있었다. 덕분에 나는 한 여름에 수면양말과 발토시를 끼고 살았다. 물론 에어컨도 켜고. 일을 하러 갈 때도 언제 냉기가 올라올지 몰라 가방에 발토시를 가지고 다녔고 해외여행을 갈 때도 제일 먼저 캐리어에 챙겨 넣었다. 몸속 얼음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한 나름의 대응도 했다. 생강이 체온을 높이는 데 좋다고 해서 편강을 주문해 간식처럼 먹었고, 일할 때는 건식 족욕기에 발을 넣고 하고, 일주일에 2~3번 반신욕도 했다. 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발뒤꿈치에 똬리를 튼 얼음덩어리가 어느 날은 종아리로 올라갔다가 어느 날은 발등으로 갔다가 위치를 옮겨다니긴 했지만, 녹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겨울왕국이 가슴속에 자리잡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마음이 꽁꽁 얼어버렸다면 "엄마가 얼음정수기가 됐어" 같은 실없는 농담을 하지도 못했을 테고 '뛰다 보면 발바닥에서 마찰열이라고 생기겠지'라는 근거 없는 긍정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절대 녹지 않을 것 같았던 만년설도 녹고, 빙하도 녹는 세상이다. (물론 지구의 빙하는 녹지 않아야 하는데 녹아서 걱정이지만) 하물며 겨우 내 발뒤꿈치에 들어있는 작은 얼음덩어리는 말해 뭐 할까?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긍정의 힘인지 운동의 힘인지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턴가 얼음덩어리가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사실 체온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근육량을 늘리는 것'이라고 한다. 근육의 움직임이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근육량을 늘리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겨울왕국은 녹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믿고 '달리기와 걷기, 필라테스와 가벼운 근력운동'을 숙제하듯이 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더니, 냉기가 올라오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강도가 약해졌다. 냉기 때문에 자다가 깨어나는 일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니 갱년기, 무서워하지 말자. 시간차를 두고 갖가지 증상을 동반하지만 맞서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