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아온 증거 '흉터'
나의 새끼손가락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다.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지만) 저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는 제대로 된 놀이터가 없어서 아이들은 골목길이나 공터에서 뛰어놀았다. 버려진 양철 지붕을 미끄럼틀 삼아 놀았던 어느 날, 새끼손가락을 크게 배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천으로 꽁꽁 싸매고 버텼다. 결국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큰 흉터가 남았고 새끼손가락이 살짝 비뚤어지게 자랐다.
엄지손가락에는 미술시간에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칼에 베인 흉터가 있고, 무릎에는 중학교 때 바닷가에서 놀다가 넘어져서 다친 흉터가 있다. 어깨에는 몇 년 전 지방종을 제거하면서 생긴 흉터가 있다. 어디 그뿐일까? 보이지 않는 상처와 흉터도 숱하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한 현재진행형의 상처와 툭하면 재발하는 손목의 염증, 실연과 실패로 인한 흉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흉터, 무심코 던진 모진 말에 다쳤던 흉터 등등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이 모든 흉터는 열심히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한 증거이자 흔적이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잠시 다리를 쉬러 들어간 휴게실에서 멋진 우드슬랩을 만났다.
수령 450년, 고사한 느티나무로 만든 우드슬랩은 곳곳이 갈라져 있었고 옹이구멍도 있었다. 하지만 나비장으로 멋지게 수리를 하니 흉터는 근사한 아름다움이 되고 시간이 지닌 위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맞다. 나이는 이렇게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저기 고장 난 것처럼 삐걱거리는 갱년기의 몸. 어제는 다리가 시리고, 오늘은 등이 저리다. 어쩌면 내일은 지독한 두통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까닭 없는 두드러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의사에게 증상을 호소하면 호흡기 내과도, 순환기 내과도, 피부과도 우리 과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원인을 알아 빨리 치료하고 본래의 생생한 몸을 되찾고 싶어서 열심히 병원도 다녀봤지만 욕심이었다. 본래의 건강한 몸을 회복하다니,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욕심이 아닌가. 욕심을 내려놓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안으로 갈라지고 옹이구멍이 생긴 느티나무처럼 내 몸속에서도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 보다 여기기로 했다. 다만 '느티나무의 갈라진 부위를 나비장으로 잇는' 것과 같은 조치는 늦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예를 들어 운동이나 식단관리 같은 것들 말이다. 참 고맙게도 몸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상처가 생기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흉터를 품은 근사한 우드슬랩처럼 나이 들어갈 수는 있다.
ps. 손가락을 다치고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던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일까? 딸을 키우면 늘 강조했던 말이 있다.
"엄마에게 혼날 것 같은 일일수록 빨리 전화해." 문제는 숨기면 숨길수록 악화된다는 것을 몸에 남긴 흉터가 말해주기 때문에 그렇게 강조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