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우울증 탄생의 비밀
'바닥에 떨어뜨려도 3초 안에 주우면 괜찮다'라고 우기면서 떨어진 음식을 잽싸게 주워 먹곤 한다. 그런데 떨어뜨린 것이 아이스크림이라면 상황 끝.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뭔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혹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갱년기처럼. 물론 처음 갱년기에 직면하면 마음은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강하게 저항한다. 하지만 실체가 있는 몸은 마음과 다르다. 여기저기 삐걱거린다. 이런 몸과 마음의 불협화음에서 '갱년기 우울증'이 탄생한다.
어쩌면 갱년기 우울증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예쁜 옷을 입어도 예전처럼 핏이 살지 않고, 안경을 벗지 않으면 스마트폰 글자가 안갯속 풍경처럼 흐릿하고, 단어가 기억나지 않아서 얘기하다 말고 내적 아우성을 지르고, 겨우 한두 잔의 술에도 컨디션이 무너지는 일이 내게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직은 아닌 척, 아직은 청춘인척 억지를 부렸다. 결과는 참담했다. 불면의 밤과 식욕부진과 소화불량, 가슴 답답함... 온갖 불편한 증상들이 무질서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참 어리석게도 이 과정을 겪고서야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를 것을 깨달았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처럼 평온과 용기와 지혜가 절실히 필요했고 나름의 평온과 용기와 지혜로 생활방식을 재조정했다. 밤을 새우고 나면 컨디션을 회복하는데 일주일이 걸림을 인정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 일은 미리미리 하기로 했다. 술을 마시면 숙취가 2박 3일을 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분은 와인 혹은 맥주 한 잔으로 내기로 했다. 숨쉬기 운동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운동화를 신고 부지런히 달리기로 했다. 깜빡거리는 형광등 같은 기억력을 인정하고 더 많이 읽고 배우고 공부하기로 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갱년기를 겪으며 '꽃을 버리고, 강을 버리는 작업'을 무사히 마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낸다면 멋진 생의 열매를 맺고 마침내 푸른 바다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