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 필요한 이유
'안달루시아'라고 불리는 스페인 남부의 연안도시 말라가에 있는 말라구에타 해변. 아침 산책을 나가니 백사장에 먼저 다녀간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사람의 발자국과 나란히 찍힌 강아지 발자국.
"우리 함께 아침 산책을 즐겼어요"
나란히 찍힌 발자국이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뒤돌아보니 왠지 나의 발자국이 쓸쓸해보였다. 문득 오르텅스 블루의 시가 생각났다.
그 사막에서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으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오르텅스 블루
나란히 찍힌 발자국을 이미 봐서일까? 뒷걸음으로 걸어 내 앞에 찍힌 발자국을 봐도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숙소에서 자고 있던 딸의 나이였다면 뒷걸음으로 걸으며 내 발자국을 볼 생각은 아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는 혼자서 영화보고, 혼자서 여행하고, 혼자서 책 읽고... 혼자 하는 것도 충분히 좋았으니까. 때때로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혼자서도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고 있는 것 같아서 뭔가 뿌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사춘기와 청년기를 지나 갱년기로 접어들자 상황이 달라졌다.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열심히 수다를 떨 때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난 화장실에 갈 때도 휴대폰을 가져가"
"왜? 볼일 보는데 오래 걸려서..."
장난 같은 나의 말에 친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화장실에서 쓰러질 수도 있고, 화장실 문이 잠겨서 안 열릴 수도 있잖아."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이나 화장실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걱정을 하게 된다. 갱년기가 되면. 왜냐하면 체력과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고, 걱정은 사서 하게 되고, 무엇보다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져서 내가 쓰러져 일주일 쯤 연락이 안 되더라도 집에 찾아와 초인종을 눌러줄 이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느 해 여름, 몹시 무더운 어느 날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찾아서, 끼니도 때우고 일도 할 겸 노트북을 들고 집근처 패스트푸드 가게로 갔다. 그 날 그곳에서 본 어느 어르신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르신 역시 무더위를 피해 에어컨 있는 곳을 찾아온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그 흔한 휴대폰도 없었다. 일을 하는 네다섯 시간 동안, 나의 시선은 문득문득 할아버지에게 가닿았지만 할아버지는 처음 그 모습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한없이 쓸쓸해보였다. '어쩌면 평생 일만 하느라 취미를 가져본 적도 없고, 문화를 즐겨본 적도 없어서 시간이 있어도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렇게 앉아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속을 헤집어 놓았다.
나이가 들수록 동행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홀로 행복할 수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그런데 동행이 반드시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말라가 해변에 발자국을 남긴 강아지처럼 반려동물일 수도 있고, 식물일 수도 있고 혹은 취미나 문화생활도 훌륭한 동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더 많이 좋아하려고 노력한다.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인가와 동행할 수 있다면 갱년기도, 그 다음에 펼쳐질 노년기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