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졸음 보고서

오만과 편견

by 효문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그 옛날, 점심 먹고 들어오자마자 코를 골며 낮잠을 자던 부장님의 심정을 아니 몸을.

'게으름과 나태함의 표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편견이었다.


언제부턴가 오후 2~3시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방문자가 있다. 바로 졸음이다. 단순히 '졸린다'가 아니라 졸음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잠깐 책상에 엎드리면 순식간에 블랙 아웃이다. 기면증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갱년기 전에는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 미친 듯이 졸리지도 않았고, 설령 졸린다 하더라도 샷 추가한 커피 한 잔이면 얼마든지 떨쳐낼 수 있었다. 새벽까지 술자리를 달렸거나 밤을 꼬박 지새워 일한 다음 날에도 10분쯤 비몽사몽 간에 잠시 졸고 나면 다시 머리는 맑아졌고 몸은 개운해졌다.


하지만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졸음이 쏟아질 때 벤티사이즈의 커피를 들이부어도 소용없었다. 강력한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잡아당기고, 심지어 밖에 나가서 걸어도 껌딱지처럼 달라붙은 잠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걸으면서도 눈이 감겨 빨리 벤치를 찾아서 앉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졸음이 쏟아지면 나는 무조건 백기투항한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갱년기이니 한숨 자고 일어나서 일하라고 양해해주지도 않고 '갱년기를 위한 낮잠 프로그램' 같은 것도 운영하지 않는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잠을 스스로 이겨내거나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 경험상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것은 '오후 2시의 방문자를 잘 다독'이는 정책이다. 거절을 거절하는 방문자를 위해 내가 선택한 첫 번째 원칙, 오후에 중요한 일이나 회의가 있을 때 혹은 운전을 해야 할 때 점심은 아주 가볍게 먹거나 굶는다. 음식물을 소화시키기 위해 혈액이 위장으로 몰리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어 졸음이 쏟아진다고 한다. 나의 의지로 혈액을 뇌로 보낼 수 없으니,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점심 가볍게 먹기 혹은 건너뛰기를 선택한다. 졸다가 사고를 내거나 실수를 하는 것보다 잠시 배고픔을 참는 것이 백배 낫다.


둘째, 점심 직후에 중요한 스케줄은 잡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잡아야 한다면 여유 있게 잡는다. 눈가에 졸음을 매달고 멍한 정신으로 중요한 일을 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중요한 결정은 가장 머리가 맑은 시간에 할 수 있도록 조정한다.


셋째, 소나기는 피하고 본다. 장대기가 쏟아질 때 처마 밑에서 잠깐 비를 피하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졸음이 쏟아질 때도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꼭 침대에 누워서 자야만 잠인 것은 아니다. 의자에 앉은 채 혹은 책상에 엎드린 채 잠깐 눈만 감고 있어도 낮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바쁜 데 눈 붙일 시간이 어디 있냐고 불평할지도 모르지만,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바쁠수록 눈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 사달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졸음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체력 기르기. 강력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내가 더 강력해져야 한다. 커피 한 잔으로 가뿐하게 졸음을 물리쳤던 그때 그 시절의 건강과 체력을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운동을 하면 들쑥날쑥 날뛰는 수면리듬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는 있다. 밤잠이 충분하고 질이 좋아지면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낮잠의 기세도 꺾인다.


이제 졸음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았다.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 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눈꺼풀 하나 들어 올리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싸워서 이기려고 하지 말자. 게으르고 나태해서 조는 것이 아니라 몸이 이겨내지 못하는 것뿐이니 더 열심히 달리자. 언제나 결론은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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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문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방송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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