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갱년기 생활
"아, 그 사람 이름이 뭐지?"
"누구?"
"그 왜 있잖아. 키 크고 눈썹 진한 남자"
"엄마, 세상에 그런 남자는 54만 8천 명도 넘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외모를 설명하다가 딸의 비웃음을 사는 날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얼굴은 기억나면서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 이유는 뭘까? 뇌과학자님 혹시 이유를 아시나요?)
"잠깐만, 내 전화기가 어디로 갔지?"
친구랑 통화 중에 이런 망발을 하고는 스스로 깜빡 놀라는 날도 온다. (친구랑 통화는 뭘로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시장 다녀와서 휴대폰을 찾아 온 집안을 다 뒤지다가 포기. '마트에 흘렸나 보다.' 냉수 한 잔 마시고 다시 마트에 가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조금 전에 사 와서 냉장고에 넣어둔 두부 위에 곱게 올려진 휴대폰을 발견하는 날도 온다. ('휴대폰을 냉장보관하면 수명이 길어지려나?' 쓸데없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갱년기가 되면 이런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때 최악의 선택지는 자신에게 화를 내거는 것이다. '도대체 정신머리를 어디다 놓고 다니는 거야' 그런데 이게 화를 낼 일일까? 좀 어이없긴 하지만 화낼 일은 아니다. 그럼 왜 화를 내는 것일까? 생각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거기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지난주에는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어디 세웠는지 몰라서 지하 2층과 3층을 헤매고 다녔고, 지지난주에는 엄마 생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인지기능장애? 치매 전조증상? 치매면 어떻게 하지? 요양원에 들어가야 하나?'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비눗방울처럼 동동 떠다니다가 빵빵 터지고 있었던 것이다.
STOP
일단 생각을 멈춘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묘하다. 생각을 멈추고 피식 웃고 나면 심각한 일도 덜 심각하게 느껴진다. 걱정되던 일도 덜 걱정스럽게 느껴진다. 실제로 '휴대폰을 냉장고에서 발견하는 것'은 화낼 일도 아니고, 걱정할 일도 아니다. 그냥 재미있는 일이 생긴 것뿐이다. 반백 년을 사용한 뇌가 수학과 화학, 물리, 생물, 영어, 제2외국어 등등을 다 공부해 내던 시절처럼 반짝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반백 년을 사용한 몸이 무릎이 삐걱 리고, 잡티가 생기고, 엉덩이가 처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떠올리며 주문을 외운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혼은 생각의 빛깔로 물든다
에 가르트 폰 히르슈하우겐의 책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생각의 빛깔은 뇌세포 사이에서 정보를 교환해 주는 신경전달 물질들에 의해 정해집니다. 이 생화학 물질들은 생각의 맛을 결정짓는 소스와도 같아서 달콤하거나 쌉쌀할 수도 있습니다. (중략) 세로토닌이 부족해지면 생각의 색깔은 어두워지고 우리는 우울해집니다.
내 영혼이 곱게 물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걱정하지 말자! 속상해하지 말자! 화내지도 말자!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을 부지런히 분비시키자. 운동하기, 햇볕 쬐기, 좋은 일을 떠올리며 미소 짓기 등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