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지른 실수를 들여다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인간 본성의 법칙]의 <1장. 비이성적 행동의 법칙>에서 이성적인 나를 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의 뿌리를 끝까지 찾아보라는 부분이 있다.
어떤 부정적인 상황, 흥분하거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의 감정을 끝까지 드려다 본다는 것, 이는 나의 바닥을 마주한다는 말이다. 나는 피드백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말 끝까지 더 드려다 보고, 더 찾아보려 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답변하기 어렵다.
중고등 학교 시절, 시험을 치고 나면 오답노트를 몇 번이나 만들었지만 제대로 정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음번 시험 공부할 때는 전체를 다시 제대로 보면 오답들은 언제나 다 커버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나는 나의 틀린 문제를 자세히 드려다 보지 않았다.
그 오답들을 살펴보았다면, 분명 내가 잘 틀리는 패턴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을 찾아내서 어떻게 다음번에 같은 실수 하지 않도록 분석하고 고민했다면 나의 작은 실수들로 인한 점수가 떨어지는 현상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험이 다시 시작되면 전체적으로 어차피 다시 다 훑어볼 것이라는 나의 환상은 지금의 나라는 존재에 대한 편향을 보여준다.
스트레스 상황의 내가 가장 바닥인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런 난 어쩌다가 나오는 나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 생각하고 넘어간다. 나 스스로에게 틀린 시험 문제처럼, 제대로 드려다 보지 않고 쉽게 나를 용서한다. 그리고 내가 좋은 컨디션으로 보여주는 나의 모습을 전체적인 나로 인식한다.
언제나 제대로 드려다 보지 않는 틀린 시험 문제처럼,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제대로 바라보지 않은 나의 오점들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 그런 인상적인 흥분상태의 나를 기억하고, 틀린 시험 문제가 내 점수를 깎아 먹듯 나의 이미지를 깎아먹는다.
틀린 시험 문제처럼 오답노트는 만들지만, 그다지 열심히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나의 실수를 통해 철저히 나를 드려다 보지 않은 채 잘 도 살아간다.
[ 인간 본성의 법칙 ]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을 알려준다.
뇌의 사고 부분을 강화하여 이성적인 나를 더 끌어내기 위한 전략과 실천 방법 내 안의 편향을 자각해야 한다.
- 탓하기 편향
우리는 교훈을 배워 같은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내가 저지른 잘못을 그다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의 자기 성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럴 때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 혹은 순간적 오판을 탓하는 것이다.
탓하기 편향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저지른 실수를 들여다보는 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인간 본성의 법칙, 1장 비이성적 행동의 법칙 내용 중]
내가 운영하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문화 토크(Cultural Talk For Diversity & Inclusion) 커뮤니티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전 세계인들과 토론을 하는 모임이다. 해외 취업 강의를 하며, 해외 취업을 준비는 학생들이 가지는 어려움 중에 하나는 바로 경력을 만드는 것이다. 외국계 회사는 대부분 바로 실전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경력직을 원한다. 하지만 일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경력을 쌓을 수 없다. 결국 경력은 복리다. 해본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언제나 몰린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해외 취업 준비생들에게 내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의 운영을 도와주고 경력을 쌓는 방법을 강의 중에 지나가듯 제안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능력 있는 한 친구가 콘퍼런스의 로고와 포스터 제작을 도와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Canva를 이용해, 어설프게 만들어서 공지하고 광고를 했던 포스터는 그 친구의 도움 덕분에 아주 수준 높은 모임처럼 멋있게 광고할 수 있게 되었다.
AI 툴 중에 이미지를 조합하여 동영상처럼 만들 수 있는 기능이 있어 그녀의 도움으로 만든 몇 개의 포스터를 활용하여 동영상을 만들어 보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공지는 자주 노출되게 올려줘야 사람들이 신청을 더 하고 잊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르게 동영상을 모임 페이지에 올렸다.
그렇게 나름 뿌듯하게 올려놓고 나니 갑자기 그녀가 만들어 준 포스터를 내가 다르게 활용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이렇게 내가 제작해서 올렸다고 원래의 디자이너인 그녀에게 메일로 의견을 물었다.
그녀의 답변은 당황스러워하며 본인이 디자인을 했다고 공지를 한 상태에서 이렇게 동영상을 만들어 올린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내려 달라고 했다.
빠르게 동영상을 공지에서 내리고 그녀에게 사과했다.
AI가 만든 것과 비교되는 것이 싫은 걸까?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데...
원래의 디자인을 한 일종의 저작권자로서 이를 활용했다는 것이 기분이 나빴던 것일까?
디자이너들이 가진 프라이드에 스크레치는 낸 것일까?
나의 실수가 그렇게 큰 실수 일까?
분명 그녀의 입장이 아닌 이상 나는 디자이너의 마음과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내 머릿속에는 내가 가진 기준의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마구마구 생겨났다.
나는 내가 정말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좀 더 나의 실수를 드려다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메일을 보냈다. 어떤 부분이 기분이 나쁜 것인지, 어떤 부분이 명확하게 잘 못된 것인지 알고 싶다고 말이다.
그 메일을 보내고 나서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녀에게 받을 답변이 두려웠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한 것이지 또박또박 설명하고, 내가 디자인 업계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 했는지를 설명하는 답변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실수들을 직면하기 위한 메일을 보냈고, 그 답변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오답노트를 비워두고 다음번에 잘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나를 마주하는 여정에는 이렇게 두려움이 밀려온다. 안 해도 되는 것을 하는 것 같다. 이미 사과도 했고, 동영상도 다 내렸으니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내가 나의 실수를 더 마주하고 있을 필요가 없는데...
굳이 작은 문제일 것 같은 그것들을 마주한다는 것에 이렇게 두려움이 밀려온다는 것이 이상하리 만치 불편했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마주할 준비는 크건 작건 이렇게 두려움이 밀려온다. 긴장 속에 그녀의 답변을 기다렸다. 다음날 드디어 답변이 왔다.
나의 실수와 무지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답변을 상상했었는데 그녀는 디자이너의 생각과 입장을 설명하였다.’ 그녀의 답변은 이러했다.
' 브랜딩이라는 게 하나의 메시지를 통일성 있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00을 모티브로 포스터와 이미지를 만들어서 보내주었고, 그것으로 만든 동영상은 결이 다르다.'
이건 나에게 중요한 정보이다. 디자인과 브랜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고, 나의 오답노트는 내가 실수로 틀린 게 아니라 내가 몰라서 틀린 것임에 분명했다. 이건 공부하고 배우면 다음번에는 맞출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녀의 답변 중에 내 예상과 완전히 다른 부분이 있었다.
기존의 포스터와 이미지 디자인 작자를 그녀의 이름을 적어서 홍보했는데 이 동영상도 본인이 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하지 않는 것을 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거부였다.
이건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결이 달라 AI 가 만든 동영상이 싫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더 멋있다면,
나는 그걸 내가 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을 취했을까?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냥 들어오는 득을 나는 마다했을까?
아주 작은 부분을 기여했으며 마치 내가 큰 것을 한 것처럼 부풀리게 보이도록 일을 하고 있지는 않나?
나는 그녀처럼 진정성 있게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하지 않은 것을 한 거처럼 보이는 상황에 나는 침묵하고 있지는 않는가?
아주 작은 부분의 역할이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는 그냥 얻어걸리는 운 같은 이득을 이렇게 설명한다.
[ 갑작스러운 성공이나 승리도 때로는 아주 위험할 수 있다.
신경학적으로 봤을 때 뇌에서 분비된 화학물질들이 강력한 흥분이나 에너지를 일으키고,
그게 다시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싶은 욕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손쉽게 얻고 나면 정말로 지속될 진짜 성공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기본적 진리조차 망각하기 쉽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성공에서 운이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
어떤 뜻하지 않는 노력 없이 얻어진 이득이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떠한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도록 한 것은 분명 나의 탓이다. 그곳에는 단단한 기초가 결여되어 있고 이것은 치명적인 중독성을 갖는다.
나는 젊은 청년, 디자이너에게 배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2가지 눈
1.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볼 줄 하는 눈.
2. 나에게 좋거나 나쁘거나 그 양단의 어떤 상황에도 진실을 냉정히 바라볼 수 있는 눈
그녀는 답변은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면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이라 괜찮다!라는 말로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그녀는 내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용기와
내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
상대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공감력을 가졌다.
어쩌면 우리 세대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는 용기 있는 젊은 세대들의 행동과 태도는
분명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오늘도 나는 MZ에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