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즈니스의 기본 역량은 무엇일까?

한국어! 주어와 목적어를 찾아라~

by 김지혜

나는 통역사이다.

통역사는 타인의 이야기를 잘 정리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오랜 기간 이 일을 하며 말을 잘하는 화자는 그 말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고,

말을 잘하지 못하는 화자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한국말이 있다면 문맥을 통해 최대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왔다.


타인의 말하는 의도를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통역의 중요한 역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회사들이 자기와 가장 잘 맞는 통역사와 일을 한다.

언제부터인가 난 엔지니어링이나 기술분야에 가장 잘 맞는 통역사가 되었다.

내가 엔지니어와 기술 전문가와 가장 잘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한 고객이 느끼는 내가 가진 적합성의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기술적인 이해도도 중요하다.

기술적 이해도는 그 분야의 경력과 나름의 공부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또 다른 중요한 역량은 한국어의 문맥 읽기였다.

한국어는 주어와 목적어가 없어도 말이 된다.

예를 들어

“이전과 동일하게 진행하기로 했습니다.”라고 한국어로 했다고 하자.

듣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 말에는 주어와 목적어가 없다.

누가?(주어) 무엇을?(목적어) 동일하게 진행하기로 했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다.

이 말을 구글 번역기로 돌려 보았다.

I decided to proceed as before.라고 나온다.

주어가 없으니 “I(내가)” 진행한 것으로 넣어 주었다.

무작정 “I(나)”라고 넣는 것은 사실 위험하다.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고 회사에서 결정한 것일 확률이 높고 공급업체와 회의라면 공급업체가 이전과 동일하게 진행하기로 했을 수도 있다. 그럼 공급업체(supplier)가 주어가 된다. 아니면 공급업체와 나의 업체(We)가 같이 결정한 사항일 수도 있다.

앞뒤 문맥을 모르는 상태에서 통역을 해야 한다면 나는

It is decided to be proceeded as before. (그것은 예정과 동일하게 진행하기로 했습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고, 진행하기로 결정한 주체도 모른다.


이전에 많이 이야기가 오고 갔다면 상대는 그 it 이 누구인지 이해한다. 나만 모호할 뿐이다.


많은 한국인, 심지어 나도, 이렇게 주어와 목적어 없이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은 대화상에서 하나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영어로 통역을 하거나 번역을 하게 되면 비로소 주어와 목적어를 찾아서 넣어야 할 때 우리는 많은 대화에서 주어와 목적어가 빠져 있음을 알게 된다.

내가 가진 장점은 그것이었다. 바로 그 주어와 목적어를 빠르게 찾아낸다는 것!


질문이 일반화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내가 모르는 것을 최대한 질문하면 더 정확하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통역을 하면서 자꾸 질문을 하면 실력이 없는 통역사로 인식하는 고객이 많다.

최대한 질문하지 않고 빠르게 파악해야 실력을 인정받는다.

주어를 찾지 못하면 위의 사례와 같이 it이라도 넣어서 오해 없는 불특정 대명사로 대체해야 한다.

상대가 알아듣는다면 그 it 이 뭔지를 상대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모른다면 그 주어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경우 내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상대가 묻는 것이라 통역에 대한 인식은 나빠지지 않는다.


통역을 하면 할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영어도 영어지만 이러한 한국어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이해하는 것은 영어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아니 어떤 땐 더 어렵다.

최대한 주어와 목적어가 없는 상태에서 화자의 의도를 빠르게 파악해서 주어와 목적어를 올바르게 넣어 주는 것이야 말로 통역의 큰 역량 중에 하나다.


영어를 잘하면 외국인과 대화도 잘하고

외국업체와 비즈니스를 잘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영어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일 뿐이다.

내가 하려는 말과 상대가 하려는 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결국 내가 모국어를 말하는 방식대로 영어로 구사하게 된다.


외국어는 내가 하는 모국어 수준을 뛰어넘기 힘들다.


국어가 되지 않는 아이가 영어도 뛰어나게 구사하기 힘든 것과 같다.


나는 순수 국내파 통역사다.

한국에서 자라고 한국에서 국어를 공부하고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아이였다.

결국 내 한국말 표현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 내 영어 표현이다.

아무리 내가 영어 단어를 외워도 내 한국어로 머릿속에 그 문장이 정리되지 않는데 영어로 나올 리 없다.


한 번은 영어 스피치 대회를 준비하며 영어로 정리한 원고를 외국인에게 검수받았다. 수준 높은 단어와 수준 높은 표현으로 수정해 주었다.

그 멋진 표현들을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잘 외워지지 않았다.

또한 그 말로 내가 리허설을 했을 땐 더 이상 내가 하고자 하는 말 같지 않았다.

결국 난 내가 적었던 원래의 표현으로 연설을 했다.

멋진 말들은 외워서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 표현이 한국어로 체화되어 있지 않으면 더 이상 그 말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결국 한국말로도 하지 않는 멋진 영어 표현이 쉽게 나올 리 없다.

책을 많이 읽지 않고, 국어를 잘하지 않았기에 난 어쩌면 엔지니어링과 기술 전문 통역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표현력의 한계에 가장 적절한 분야이다.

형용사가 많지 않고, 멋진 문장보다는

사실과 원리, 논리의 대화를 하는 이 분야야 말로 내가 가장 잘 맞춰갈 수 있는 분야였다.


한 번은 모피업체 세미나를 통역한 적이 있었다.

세 명의 연사가 있었다. 가공/재단 전문가, 비즈니스 전문가, 패션 디자이너

세 명의 통역이 배치되어 연사를 선정할 때 나는 가공/재단 전문가를 지원했다.

효율적 재단의 방법과 가공 방법에 대하여 기술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날 패션 디자이너를 통역했다면 아마도 나의 통역은 엉망이었을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는 수많은 형용사를 사용했다.

그녀는 바다의 파도에서 영감을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모피를 디자인했다고 했다.

파도의 색상과 거기서 느낀 황홀함, 아름다움, 울렁임, 가슴 벅참 등등 의 수많은 형용사를 사용했다.

내가 직접 그런 멋진 광경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표현하는 형용사는 아마 몇 개 안될 것이다.

예쁘구나, 아름답다, 멋지다. 정도 일 것이다.

심지어 난 경상도 출신이다.

자라는 동안 무뚝뚝한 부모님에게서 내가 쓰는 몇 개의 형용사 이상의 단어를 부모님에게서 들어 본 적이 없다.

나의 아버지는 멋진 광경을 보고도 멋지다고 하신 적이 없다. 그냥 "다 봤으면 가자"라고 하셨을 뿐이다.


내가 수많은 영어의 형용사를 외워서 아는 것과 내가 그것을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나는 예술 분야는 통역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내가 예술을 모르고 관심이 없고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제대로 통역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언어는 하나의 수단이다. 외국어는 외국인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연장 같은 것이다.

우리는 언어라는 연장을 가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와서 A, B, C를 배웠다면 지금의 내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배운다.

하지만 내가 외국어라는 멋진 연장을 가졌다고 해서 대화의 기술을 가진 것이 아니다.


결국 내가 English speaker는 될 수 있지만 English communicator가 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내가 한국어로 누군가와 소통을 잘하고 대화를 잘 이끌어 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기본 역량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역량이다.
그리고 그 소통을 하기 위한 툴이 바로 외국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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