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커뮤니케이션-영어 좀해도 '영알못'의 순간!

배경 지식이 없다면 내가 가진 역량은 안드로메다로

by 김지혜

의료 분야 통역을 하며 이불 킥 같은 흑역사에 대해 고백하고자 한다.

고객은 나에게 분노하였다. 왜?

통역이라고 참여했지만 통역을 하지 못했다.

의료와 치료 분야는 나의 전문 통역분야가 아니다.

난 나의 전문 분야를 더 확장하고 싶었다.

한때 블록체인이 대 유행일 때 그쪽에 빠르게 진입해야 했던 것처럼 코로나 시대에 의료는 중요한 분야다.

그래서 통역 의뢰가 왔을 때 회의 어젠다를 확인하고 사전 공부를 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통역에게도 자기 전문 분야 외에 새로운 분야의 확장은 기본 3년 이상 걸린다.

어떤 회의가 진행될지에 대한 3줄의 설명으로 회의에 참여했다.

내가 전문적으로 하는 분야라면 3줄도 충분하다. 고객의 정리되지 않는 어젠다를 몇 개의 질문만으로도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의료는 나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고 일을 한 난 폭망 했다.


3줄의 설명을 듣고 의료 약품 생산 확장 관련 회의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첫 번째 문장에서부터 관련 의료 약품명과 업체명이 나오면서 그 이름을 재확인하는 나에게 고객은 대진노 했다.

본인이 영어를 잘함에도 통역을 고용한 이유는 그래도 놓칠 것 같은 그런 의학 용어의 벽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의 용어 재확인 통해 내가 가진 관련 분야 지식과 용어의 이해 수준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고객은 화가 났다.

결국 고객이 직접 영어로 회의를 진행했다.

혹시나 중간에 요청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놓아버린 정신줄을 겨우 부여잡고 열심히 메모를 했다.

하지만 대화 중간에 가끔 영어 표현을 찾아 헤미는 중에 도와주고 싶었지만 끼어들기 무서웠고 고객도 나에게 절대 묻지 않았다.

나는 정말 여기 왜 있는가!라는 생각에 그 회의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느라 힘들었다.


회의 내용을 들으며 알 수 있었다.

통역을 했다 하더라도 아마 그 많은 약품과 의학 용어를 분명히 난 몰랐을 것이다.

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회의 후 “난 뭐 하러 있었나’라는 석고대죄의 통역 후 보고서를 에이전트에 제출했다.


중재자, 통역자, 전달자, 촉진자, 코디네이터, 퍼실리테이터 이들은 모두 어떠한 만남과 상황에 더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존재한다. 없어도 진행 가능하지만 더 효율적이고 부가가치를 더하기 위해 이들을 고용한다.

그날의 난 그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도대체 난 왜 여기 있나, 회의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있어도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 채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의뢰 한 에이전트는 이제 잘렸구나 생각했으나 다행히 다른 통역 의뢰가 들어왔다.

이번엔 온라인 플랫폼 회의 통역이다. 그나마 내가 통역을 많이 하던 분야다.

회의 어젠다 두 가지를 받았다.

지난 이불 킥을 극복하고자 관련 분야 영문 사이트와 한글 사이트를 이틀간 찾아 학습했다.

관련 회사의 현재 상황, 그 분야 온라인 플랫폼의 트렌드, 한국의 규제나 규정, 주요 업체, 경쟁 구도, 해외 사례, 등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을 모두 찾아봤다.


회의가 시작되자 내가 사전 학습한 분야에 관한 것이었다.

회의를 한다는 것은 그들이 기초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전된 상황에서 무언가 서로 간에 배경 지식을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결국 문제없이 나는 대화의 맥을 잡고 제대로 통역할 수 있었다.


영어와 한국어의 대화가 같이 오고 가는 경우,

처음 참여하는 회의라면 영어는 주로 전문 용어와 업계의 축약어, 지역이나 회사 이름 등 고유명사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반면 한국어는 용어보다 배경을 모르는 상태라면 문맥의 파악이 가장 큰 도전과제다.

한국말의 특징은 주어와 목적어가 없어도 의미가 통한다는 것이다.

반면 영어는 주어가 있어야 문장을 시작할 수 있고, 목적어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동사들이 많다.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려면 주어로 시작하고 적절한 동사를 쓰기 위해서 모호한 목적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들어보니 그럴 것 같기는 하네요.’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는 의미다. 하지만 동의는 아니다.

앞에 언급된 많은 내용을 듣고 ‘무엇을 들었는지' 문맥을 파악해서 주어를 찾아야 한다.

“그럴 것 같다’는 말에서 ‘그럴 것’은 어떠할 것 같다는 것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처음 참여하는 회의에서 짐작으로 주어와 목적어를 판단한다면 큰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


‘들어보니 그럴 것 같기는 하네요.’이 말의 의미는;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짐작하고, 그 돈이 많이 들어갈 거 같다는 것에 공감하듯 표현하면 돈을 투자하겠다로 오해할지도 모른다.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들어보니 투자가 어렵다는 의미로 파악될 수도 있다.

전체의 큰 그림을 읽지 못한다면 이렇게 말한 상대에게 확인해야 한다.


그럼 이렇게 확인한다고 생각해보자.

‘들어보니 그럴 것 같기는 하다.’라고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은 것을 말씀하시는 지요? "

"그럴 것 같다는 건 누가 어떠할 것 같다는 것인지요? "


내가 한 이야기를 누군가 이렇게 또박또박 묻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지금 내가 국어가 모자라다는 것을 지적받는 느낌일 수 있다.

이런 질문으로 상대를 맘 상하게 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배경 지식이다.

관련 토픽에 관한 배경 지식은 이런 문맥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배경 지식을 더 많이 가지고 소통을 하게 되면 모호한 주어와 목적어 없는 문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말씀하신 내용이 정부 측에서 실시한 제도를 "들어 보니" 그렇다는 거죠?

"그럴 것 같다는 것"은 방금 저쪽에서 설명한 내용처럼 투자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이신가요?

이렇게 확인하는 것이다.

그럼 "예" 혹은 "아니오"로 답할 것이고 바로 통역할 수 있다.

'아니오'라고 답한다면 다시 설명을 해줄 것이다.


배경 지식을 알아서 내가 빠르게 이해한 다는 것은 상대에게 어떻게 인식될까?

상대는 '내가 통역을 잘한다, 소통을 잘한다, 말귀를 잘 알아먹는다, 눈치 있다, 대화가 통한다'로 해석한다.

우리는 모두 타인과 대화를 하며 살지만 상대가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당신의 말을 못 알아먹겠어요.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특히나 상사의 말을 못 알아먹으면 상사의 욕받이가 된다.

상사가 가진 소통 문제는 험담으로나 가능한 이야기다.

이렇듯 한국의 소통은 듣는 사람의 책임이다.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영어가 유창한 사원이 새로운 업무를 맡는다면

업무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부족은 그가 가진 유창한 외국어 능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해외 담당자로 도무지 문맥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소통의 어려움을 겪은 후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영어 잘한다더니만, 영어 잘하는 줄 알았는데, 해외에서 학교 나왔다면서.'

그럼 또 그 당사자는 생각한다.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었구나'라고 자신감을 무너뜨린다.


사실은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의 파악과 배경 지식, 업무 전문성에 대한 문제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글로벌 업무 담당자로서 해외 업무에 성과를 보이고 싶다면,

해외 담당자로서 일을 잘하고 싶다면

학원을 다니거나 인강을 듣는 것이 아니라 업무와 관련된 자료를 학습하고 그와 관련된 영어와 용어를 익히는 것이 우선이다.

내 업무의 전문성은 결국 자신의 업무 이해와 그 이해를 업무 능력으로 어떻게 잘 발현하는가가 관건이다.

그것이 해외 업무라고 한다면 그 매개가 영어로 이우러 질 뿐이다.

해외 업무에서 내가 못 알아듣는 건 결국 영어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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