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또다시 혼란스러워진 고객 커뮤니케이션 시대
“와, 비가 엄청 왔습니다. 경복궁이 완전히 물에 잠겼어요.”
전국을 강타한 기록적인 집중호우 뉴스가 연일 보도되던 어느 날, 노란 우비를 입은 유튜버가 카메라를 든 채 경복궁 곳곳을 돌아다니는 영상이 SNS를 통해 퍼져나갔습니다.
영상 속 경복궁은 흙탕물로 뒤덮여 있었고, 전각과 월대로 스며드는 빗물을 공무원과 봉사자들이 양동이로 퍼 나르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침수 피해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장면들이었죠. 물론 침수된 경내에서 물개가 헤엄치는 장면을 보고 나면 이 영상이 가짜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뉴스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타이밍, 현실적인 영상 퀄리티, 그럴듯한 상황 설정까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에는 충분한 가짜 영상이었습니다.
해당 영상이 확산되던 당시 유튜브에서 '장마', '폭우' 같은 키워드와 동영상 생성 AI '비오3(Veo3)'를 검색하면 AI로 만든 유사한 형태의 영상을 수십 개 이상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고객과 고객이 서로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야기한다'는 고객 커뮤니케이션 변화가 많은 기업들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전환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우리는 이러한 소셜미디어 마케팅의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타겟팅 광고를 돌리고, 인플루언서와 협업하며, 바이럴 콘텐츠로 브랜드를 알렸죠. 하지만 그 사이 무언가 중요한 것이 변했습니다. 신뢰라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토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콘텐츠, 즉 가짜뉴스가 폭증하다시피 증가추세로 사회 곳곳에 번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가짜뉴스는 더 이상 부정확한 사진 자막이나 날짜, 통계의 실수 같은 의도하지 않은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는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오디오와 비디오 콘텐츠,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음모 이론과 소문 같은 조작된 정보(Disinformation)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토샵을 활용한 조잡한 조작에서 벗어나 딥페이크나 AI 같은 새로운 기술들을 통해 더욱더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가짜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도 어려워진 세상입니다.
여기에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우리가 뉴스와 정보를 소비하고 공유하는 방식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부정확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콘텐츠조차도 확산을 가속화하였습니다. 이제 문제는 단순히 "가짜뉴스를 조심하자"가 아닙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매력적이고, 더 빠르게 퍼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믿는 말 그대로 가짜뉴스 전성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뉴스의 외피를 쓴 허위 정보, 즉 가짜뉴스는 단순한 오류를 넘어 커뮤니케이션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실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 탈진실의 시대까지 가세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사전이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대중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즉 객관적인 사실이 있는데도 개인의 취향, 개인적 신념, 개인이 속해있는 집단의 신념, 정치적 성향 등에 의해 대안적 사실 (Alternative Fact)을 선택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탈진실이 과학적 분야에서 정치적 상황으로 넘어와 이제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분야도 이제 예외는 아닌 거죠.
탈진실 확산에 기여한 여러 원인 중 하나가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입니다. 사용자의 편리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등장한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편향적 사고 형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죠. 또한 유튜브 쇼츠, TikTok, 인스타그램 릴스 등 주요 숏폼 플랫폼들에서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한 기준이 노출수가 되면서 이제 콘텐츠 제작자들에게는 더 이상 진실이 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경쟁적으로 사용자 참여도, 조회수를 높이려고 자극적이고 논란이 될 만한 콘텐츠를 쏟아 내고 있습니다.
이제 AI를 활용하여 누구나 정교한 가짜 뉴스를 손쉽게 만들고 확산시키는 것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마케터들은 '진실보다 더 강력한 가짜'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2025년 대한민국은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일상화된 '정보 과잉' 시대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휴대폰 하나로 전 세계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마주한 현실입니다. 오늘날 기업들은 진실이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신뢰가 치명적으로 평가절하되고 조직화된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는 미디어 환경에서 고객과 소통해야 하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위협적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제품의 기능과 혜택을 알리는 것을 넘어서, '신뢰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브랜드'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투명성과 진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기업들은 자신들의 메시지가 가짜뉴스와 구별될 수 있도록 더욱 정교하고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 접근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가짜뉴스와 탈진실이 지배하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기업들은 고객과의 소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진실이 힘을 잃어가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객과의 신뢰 관계 구축이 가장 중요한 마케팅 전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서 가짜뉴스와 탈진실의 시대를 깊숙이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