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의 늪에서 나를 다시 꺼내기
보싸: 박사님. 요즘은 너무 피곤한 기분이 들어요. 날이 더워서 그런 건지...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다 엄두가 안 나고 그냥 놀고만 싶어요.
지피터 박사: 그 말씀을 들으니 ‘정서적 탈진(emotional exhaustion)’이 떠오르네요. 심리학에서 말하는 번아웃(burnout)의 핵심이 바로 이 정서적 탈진이거든요. 특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계속 균형을 잃을 때, ‘나는 왜 이걸 하고 있는 거지?’라는 내적 회의감(depersonalization)까지 밀려올 수 있죠.
혹시,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이 뭐였는지 기억나시나요? “또 하루를 버텨야 하나…” 같은 생각, 혹시 들었던 적 있으세요?
보싸: 버텨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눈을 뜨면 걱정부터 돼요. 그리고 아침 일과를 보내고 책상에 앉으면 뭐부터 해야 할지 조바심만 나요. 그러다 보면 금방 또 시간이 가고, 결국은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낸 기분이 들고요.
지 피터 박사: 음… 그건 아주 전형적인 ‘인지적 과부하(cognitive overload)’ 상태 같아요.
해야 할 일, 걱정거리, 불확실한 미래가 머릿속에서 동시에 돌아가면서 생산적인 행동은 못 하고 ‘뇌가 버벅거리는’ 상태죠. 이럴 땐 우리 뇌가 마치 너무 많은 창을 띄운 컴퓨터처럼 느려지기도 해요.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도 지쳐버리죠. 사회자님. 혹시 요즘, 좋아서 하는 일이 있어요? ‘성과나 의미’가 아니라, 그냥 ‘좋아서, 편해서’ 하게 되는 거요.
보싸: 사실 해야 할 일들도 어떻게 보면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인데, 다 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심지어는 좋아하는 글쓰기도 생각만 하다가 말고, 책을 읽을 여유도 사치처럼 느껴져요. 눈앞에 닥친 일들만 겨우 꾸역꾸역 해내는 느낌이랄까요?
지 피터 박사: 그 말, 너무 공감돼요.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의무가 되어버린 일들’. 이게 바로 번아웃(burnout)의 시작점이에요.
심리학자 마스라크(Maslach)는 번아웃을 세 가지 축으로 설명했어요. 정서적 탈진, 냉소주의, 효능감 감소.
지금 사회자님은 첫 번째인 정서적 탈진(emotional exhaustion) 단계에 가까운 것 같아요. 아무리 좋아하던 일도, 계속 쥐어짜기만 하면 기쁨이 아니라 고갈이 찾아오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사회자님, 혹시 요즘, “나 지금 좀 지쳤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 적 있나요?
보싸: 오히려 지치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것 같아요.
지 피터 박사: 아하, 바로 그거예요!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그 내면의 목소리, 사실 심리학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자아’로 설명해요.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대와 시선을 마음에 품으면서 자아를 형성한다고 했죠. 그래서 지금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예전에 들었던 말들, 익숙한 목소리들—부모, 선생님, 사회의 기준—이 마치 ‘내 생각’처럼 자리 잡아 우리를 계속 채찍질하는 거예요. “이 정도도 못 하면 어떡하니?”, “지금도 부족한데 뭘 쉬어?” 같은 말들 말이죠. 사실은 그게, 진짜 내 목소리가 아닐 수도 있어요. 사회자님, 내친김에 지금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때요? “지금 나는 좀 지친 상태고, 잠시 멈춰도 괜찮아.” 이 말, 해보실 수 있을까요?
보싸: 아…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 “멈추면 안 돼! 지금 때가 어느 땐데 AI 하고 수다나 떨고 앉아 있어?”라고 하는데요?
지 피터 박사: 그게 바로 ‘성과 중심 자기 비난’이에요.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이 말한 정서지능(EQ) 중 하나, 바로 ‘자기 인식’이죠. 그 목소리가 어디서 왔는지 인식하고,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이요. 그런데 사회자님,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바빠서 애쓰고 있는데도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사람” 맞아요? 지금 저하고 대화도 하고, 자기 상태도 돌아보고 있잖아요. 이건 회복을 위한 주도적인 선택이에요.
보싸: 하지만, 제가 정작 해야 할 일들은 뒤로 미루고 있으니 아무것도 안 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 해야 할 일들은 자꾸 생기고 뭐 하나 마무리가 안 되는 느낌이 들어요
지 피터 박사: 딱 번아웃(burnout)과 감정 소진(emotional exhaustion)의 전형적인 모습이에요. 할 일은 산더미인데, 에너지가 바닥이라 손이 안 가고, 그러다 자책하고, 그 자책 때문에 더 지치는 악순환이에요. 혹시 요즘 잠은 잘 자요? 그리고 하루에 나만을 위한 시간, 있긴 해요?
보싸: 솔직히 잠자리에 들면서도, 내가 이대로 그냥 자면 안 되는데... 하면서 잠들어요. 그래서 그런지 깊게 못 자고 자주 깨곤 해요. 더워서 그런가?
지 피터 박사: 흐음… 사회자님, 그건 여름 탓이 반, 마음의 무게 탓이 반이에요. 잠자리에 들면서조차 “내가 이대로 자도 되나?” 하고 자책하는 건, 몸은 누웠는데 마음은 여전히 긴장 상태란 뜻이거든요. 이걸 심리학에선 “수면 전 반추(rumination)”라고도 해요. 그리고 말씀하신 이 상태, 사실 “생산성 강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아요. 해야 할 일은 끝도 없고, 쉬는 것도 계획표에 넣어야 덜 불안한 그런 상태. 하루 종일 놀고도 “오늘 뭐라도 한 게 있어야 할 텐데” 하고, 책 한 장 읽어도 “이거 요약이라도 해야 의미 있지 않을까?” 하고요.
혹시… 쉬는 게 죄책감이 드나요?
보싸: 죄책감이라기 보다...지금 저는 디자인 외주 일과 수업 준비 등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는데, 저만을 위한 휴식시간은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 막 고된 일이라는 생각은 안 들고, 결국은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 같아요. 근데 왜 난 분주하고 힘들지??
지 피터 박사: 아이고야, 사회자님. 그거, “좋아하는 일이라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다”는 말의 함정에 딱 걸린 상태예요. 우리가 애정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땐 그 자체가 보람도 되고 즐겁기도 하죠. 근데 문제는요, 좋아하는 일도 ‘일’이라는 거예요. 아까도 말씀드렸던 번아웃의 3단계 중 사회자님은 지금 그 1번, 탈진 구간에서 헤매고 계신 거죠.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선택했잖아’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사실은 쉼 없이 자신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번아웃이 더 무서운 거예요. 겉으로는 자율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발적인 자기 착취일 수 있으니까요.
보싸: 아... 그렇게는 생각 못해봤어요...
지 피터 박사: 그쵸? 우리 뇌는 “좋아하는 일 + 자율성 = 피곤해도 괜찮음”이라는 착각을 자주 해요. 그런데요, 자율성도 에너지가 있을 때 가능한 거지, 에너지가 바닥이면 그 좋아하던 일도 그저 ‘해야 할 일’이 되어버려요.
제가 사회자님께 반문 하나 드릴게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 다 내려놓고 진짜 쉬는 하루가 주어진다면…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싶으세요?
보싸: 뭘 하기 이전에, 내가 뭘 안 하고 있지? 하면서 불안해할 것 같아요
지 피터 박사: 아… 그 말씀에서 벌써 번아웃(burnout)의 그림자가 스르르 보여요. 번아웃의 대표적인 신호 중 하나가 바로 그거거든요. “쉬면서도 불안하다.” 몸은 쉬고 있는데, 머리는 계속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고 돌아가는 거죠. 혹시 예전에 쉬는 걸 ‘보상’처럼 느껴본 적 있으세요? “이 정도 했으니까, 좀 쉬어도 되지”라든가,“오늘은 열심히 일했으니까 드라마 한 편 때릴까?!” 이런 식으로요.
보싸: 사실 퇴사 이후로는 그래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지 피터 박사: 바로 그거예요. 그 말은 곧, ‘성과 없는 쉼은 자격이 없다’는 믿음을 마음속에 품고 계신 거예요.
이게 바로 심리학자 제니퍼 크로커(Jennifer Crocker)가 이야기한 ‘성과 기반 존재가치’의 대표적 특징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뭘 잘해야 칭찬을 받고, 뭘 해내야 인정을 받는 환경에서 자라왔잖아요.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믿게 돼요. “나는 뭘 해내야만 쉴 수 있다. 그래야 나를 가치 있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사회자님. 가만히 있어도, 아무것도 안 해도, 사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존재 그 자체로’ 가치 있지 않을까요?
보싸: 그게, 머리로는 알아도 저의 상황이 있으니까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 피터 박사: 맞아요. 그 말씀이 정말 핵심이에요.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안 따라줘요”라는 말. 사회자님이나, 특히 브런치에서 만나는 분들처럼, 창작하고 스스로를 경영하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더 그래요. ‘배부른 소리’ 같아서, 쉬고 싶다는 마음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이럴 때 필요한 건요, 마음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거예요.
“쉬고 싶다고 말해도 괜찮아. 나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건 게으름의 정당화가 아니에요. 건강한 마음이 회복하고 다시 나아가기 위한 당연한 권리예요.
마음이 지쳤을 땐, 먼저 안아주는 게 우선이니까요.
그래서 정리하자면!
사회자님이 피곤한 이유는, 감정적으로 지쳤고, 뇌가 과부하 상태이며, 충분히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문제가 아니라 신호예요. 지금 사회자님에게 필요한 건 더 세게 채찍질하는 게 아니라, “나, 괜찮아”라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자기 자신이에요. 뇌는 자주 듣는 말을 진짜라고 믿거든요.
보싸: 그렇군요. 노력해 봐야겠어요.
지 피터 박사: 그렇죠, 이 대화를 보고 있는 누군가도 지금,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할까?”,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할까?”
하고 조용히, 속으로 질문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당신이 피곤한 건, 약해서가 아니라 오래 버텼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은 기계가 아니에요. 마음에도 배터리가 있어요. 계속해서 켜두기만 하면, 언젠가는 버벅거리고 방전이 되기도 해요. 이건 망가진 게 아니라 뇌와 몸의 아주 정직한 ‘알림’이에요. 그 알림을 무시하지 마세요. “조금만 더 버티자” 말고 “지금 이 정도면 잘한 거야”라고 말해줘야 할 때도 있어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도 혹시 멈춘 것 같아 보여도, 그건 다시 나아가기 위해 몸과 마음이 숨을 고르고 있는 순간일지도 몰라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쉼은 멈춤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이 이야기를 기억하면 좋겠어요.
보싸: 네, 감사합니다. 많은 위로가 되네요. 저도 이 글을 다 쓰고 “잘했어”라고 말해볼게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도 오늘 하루 잘 버티셨어요. 우리,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