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제 고무장갑 이야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았는데,
하루를 묵히고 마저 쓰려고 생각해 보니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아, 나는 스스로를 위해서 아침에 10분의 글 쓰는 시간을 마련했으면서, 다시 누군가를 의식하고 있구나. 누군가 어떤 경로로든 이 글을 읽게 될 텐데 그 사람을 웃기던지 감동을 준다던지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불안해졌다. 무언가 벌이고 시작하는 것만 잘하고, 끈기 있게 해내지 못하고 하다 마는 것을 더 잘하는 나에게 다시 위기가 찾아왔구나, 게다가 이제는 이런 바보같은 글들을 읽어주고 따봉을 눌러주시는 감사한 분들 때문이라고 삐쭉거리고 있다니, 참 나.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그렇다.
처음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작한다. 그리고 반드시 벽에 부딪힌다.
글쓰기 연재라는 것으로 한정 지어보면, 오늘 아침에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하루를 미루고 나니 '어제도 안 했는데 뭘...' 하면서 새삼 귀찮아지기도 하고, 이런 글을 내가 왜 쓰고 있나 현타가 오기도 한다. 그렇게 하다말다 보면 꾸준함의 근육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한때 나는 몸 쓰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생활근육'이 탄탄하게 몸에 자리 잡혔던 적이 있었다. 물론 자주 쓰는 부위만 그렇게 우락부락해졌지만, 그렇게 근육이 생기고 나서는 전에 힘들었던 일들이 훨씬 수월했던 기억이 있다. 근육이 생기기까지는 아프고 힘들다. 하지만 근육이 생기면 그 근육 덕분에 탄력이 생기고 훨씬 수월하게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렇다. 지금의 나에게는 꾸준함의 근육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의식하지 말고, 스스로의 불안과 게으름에 타협하지 말고, 꾸준히 근육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무슨 일을 하던지. 특히 지금 준비하고 있는 '어떤 일'을 위해서도 꾸준히 해나가는 근육을 키우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이두박근이 초라해지네.
아 10분 다됐다. 오늘도 결국 고무장갑 이야기를 끝마치지 못했다. 원통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고무장갑 이야기의 결론은 기록해야겠지.
하지만 오늘은 이미 시간이 지났으니, 내일 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