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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추된 B-17 폭격기 1대당 10명의 공군이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 톰행크스 제작. 마스터스 오브 디 에어

by 백승권

B-17 폭격기엔 10명이 탄다. 각자 조종과 항로, 기관총과 폭탄 투하 등의 역할을 맡는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 공군과 미국 공군의 공격 방식은 달랐다. 영국은 밤, 미국은 주로 낮에 정확하게 적의 목표지점을 공략했다. 그래서 미군의 피해가 더 컸다. 시청한 지 20년 가까이 되는 HBO 밴드 오브 브라더스(스티븐 스필버그 & 톰행크스 제작)에서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는 장면이 주인공들의 팔다리가 날아가는 장면인데 APPLE TV 마스터스 오브 디에어의 각인된 지점 역시 비슷하다. 병사들이 거대한 비행 기계 안에서 맹렬히 사투를 벌이다 거대한 폭발, 화염, 파괴와 함께 공중에서 불타오를 때, 사라질 때, 이름을 지울 때, 다음 장면부터 나오지 않을 때 나는 공포보다 슬픔에 휩싸였다.


전쟁 영화(드라마)를 보고 감상에 빠지는 건 (창작자가) 의도한 결과다. 당시 시대상에 있어 납득할 수 없는 결정과 이해관계를 비난하는 일보다 쉬운 건 없다.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했던 군인 모두가 피해자이며 희생자다. 술 마시고 농담하고 시비 붙고 이성에게 빠지고 이런 클리셰들의 잔상들은 폭탄 투하 지점까지 날아가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비행 장면의 굉음이 등장하면서 모두 증발한다. 이들이 감정을 드러내는 신체 부위는 대부분 눈망울이다. 제대로 흔들릴 수조차 없다. 목표 지점이 남은 상황에서 대공포가 사방에서 터지며 비행기의 날개를 찢고 유리를 부수고 비행기의 동체를 부수고 같이 타고 있는 전우의 몸을 부수고 있다. 곧이어 잠잠해지면서 본격적으로 적기가 에워싸면서 더 강렬한 전투력으로 시청각을 압도하고 정신과 영혼을 짓누른다. 구토는 숨 쉬듯 흔하다. 같이 대형을 유지하며 날아오던 친구들이 탄 전투기가 불길에 휩싸인다. 한대가 추락할 때마다 그 안의 10명이 전사자가 된다. 낙하산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원 사망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목표 지점까지 기어이 생존하여 폭탄을 투하해야 한다. 이륙할 때 수십대였던 폭격기가 돌아올 때 거의 남아있지 않을 때가 많았다. 누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두가 달려가 물었지만 피와 재에 젖어 내린 군인들은 어떤 말도 할 기력이 없다. 그들에겐 이미 죽은 전우들에게 대한 끔찍한 절망과 자신들은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과 내일 또 이 비행을 나서야 한다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로 짓눌려 있다.


육지에서의 전투는 지하 땅굴이 아니라면 대다수 하늘과 숲을 배경으로 최후가 그려지지만 공중전은 다르다. 흔히 요새라고 불리는 B-17 기체 안에서 모든 생과 사가 갈린다. 다리에 파편이 박히고 폭격에 얼굴이 날아가고 비상착륙을 하다가 폭발하기도 한다. 요새는 무덤이 된다. 아무리 고쳐도 고장 나고 아무리 튼튼해도 공중분해된다. 그 안에서 어떤 군인은 낙오될 뻔하다가 함께 나선 모두의 배려로 목숨을 건졌다가 이후의 비행에서 자신이 여유 있게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당한 전우의 곁을 지키며 최후를 같이 한다. 그에겐 이런 선택이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한 대답이었다.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끌어올려지는 본능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누군가는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는 전우를 남기고 도망치듯 빠져나왔어야 했으니까. 같은 상황에 있지 않은 이상 누구도 비난하기 힘들었지만 누구는 앞서 말했듯 끝까지 곁을 지키다 같이 폭발하기도 했다. 모두가 역사와 후세가 추앙하는 영웅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인지 알게 된다.


마스터스 오브 디 에어의 공중전의 인상적인 부분은 무엇보다 거리와 시점이다. 이유도 이름도 없이 적국의 하늘에서 산화한 스무 살들이 저렇게 많았다. 마치 종군 기자라도 되어 비행기를 같이 탄 채로 전투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 취재에 입각한 재연이자 촬영, 연출이겠지만 최소한 어떤 혼란 속에서 끝끝내 어떤 고비를 넘기며 결과에 다다랐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토록 급박한 상황 속에서 유언을 읊조리며 사라진 이는 없었다. 어쩌면 국가에게 처절하게 이용당한 무모함이자 에너지였다. 남은 자들은 어느 하늘을 바라보며 죽은 자들을 기려야 할까. 마스터스 오브 디 에어는 전쟁이 파생한 지옥도가 하늘에서도 펼쳐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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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