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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Feb 25. 2024

외주조차 줄 수 없는 XX 같은 인생

제니퍼 애니스턴, 리즈 위더스푼 주연.  더 모닝쇼 시즌3

일은 일이 아니다. 차라리 슬라임에 가깝다. 각자의 입장, 관점, 태도, 감정, 역사, 온도, 폭력, 시간, 관계, 변수, 비밀, 폭로, 공간, 사건, 지인, 기후, 거짓말, 오해, 기술, 가족, 노력, 불안, 희망, 기대, 좌절, 고난, 시련, 돈, 명예, 우정, 권리, 싸움, 인내, 눈물, 분노, 고립, 연대, 기억, 대화, 약속, 거래, 선물, 걱정, 배려, 배신, 배척, 조명, 실시간, 반응, 대중, SNS, 인종, 차별, 초대, 거부... 그만 쓰기로 한다. 일은 독립적이기 매우 어려운 개념이다. 이런 관점에 어울리는 2천 년 전 셀럽이 남긴 아주 근사한 명언이나 기록이 있다면 좋을 텐데 늘 그렇듯 그러지 못해 애석하다.


애정하는 Apple TV+ 오리지널 시리즈 더 모닝쇼 시즌3는 (특히 직장에서의)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좋은 대사들이 많다. HBO 뉴스룸과 비견되거나 좀 더 동시대에 맞는 (무엇보다 여성이 모든 중심을 이끄는) 시각을 드려내려 시도한다. 뉴스를 다루는 자들이 자신이 선택한 일과 직장 안에서 얼마나 휩쓸리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도 짓눌리고 무시당하고 주장하고 갈등하고 무엇보다 진실을 숨기고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배신하고 거짓말에 공들이고 강한 척하고 전략적 유대를 쌓고 테러를 당하는지 보여준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을 때도

의미 있는 뭔가를 만들고 싶어요


우린 뉴스를 보도해야지

뉴스가 되면 안 되잖아요?


난 기계를 작동해야 하는데

나도 망할 톱니바퀴예요


거지 같은 일의 멋진 점은

외주를 줄 수 없단 거죠


직업인으로서의 철학과 직장 구성원으로서의 입장은 늘 격돌한다. 전자는 특히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언론인이라는 사명감. 자신이 무엇을 포기하면서 지금까지 버텨왔고 스스로에게 무엇을 약속하며 처한 상황을 조금씩 개선시켰는지 그리고 이후 같은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위한 책임감까지 아우른다. 특히 언론인은 마이크와 카메라를 통해 공권력이 덮으려는 약자들의 목소리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고 공론화시키며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 세대까지 올바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포지션이다. 방송국을 대표하는 아침 뉴스 프로그램을 맡다가 저녁 뉴스를 리드하게 된 브래들리(리즈 위더스푼)는 오랫동안 취재에 공들인 아이템을 내보내려다 가로막힌다. 임원이 제시하는 이유는 매출과 직결되는 주요 광고주의 요청이었다. 뉴스는 브래들리가 생의 모든 것을 던진 분야이기도 했지만 브랜들리의 자리가 있는 방송사의 주요 수익원이기도 했다. 개인의 직업관 및 가치관과 조직의 이익이 부딪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쪽으로 명쾌하게 기우는 해법 같은 건 없었다. 기업이 계약을 해지하고 돌이키기 힘든 타격을 입거나 개인이 제보자와 약속한 뉴스를 못 내보내고 소수의 발언권이 날아가거나 어느 쪽이든 부작용과 여파는 잠깐의 빡침으로 끝날 게 아니었다. 브래들리는 제보자에게 사과 연락을 하지만 제보자는 사과를 받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달려 있었고 사과 한마디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브래들리와 방송국에게 급한 뉴스는 단 하나가 아니었다. 이런 케이스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늘 포기해야 하는 건 개인이었다. 아무리 슈퍼 스타급 셀럽이라고 해도 경영진과 끝까지 언성을 높이긴 힘들었다. 주장할 수 있고 경청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였다. 대화는 때론 대화로 끝나곤 했다. 회사는 좌절할 수 없었다. 개인은 포기하고 계속 같은 일을 해나가야 했고 회사는 문 닫지 않으려면 계속 구성원들에게 처음과는 다른 어려운 요구를 해야만 했다. 각자의 서로 다른 사정은 늘 있었다. 비즈니스라는 영역에서 조직은 늘 협상에 유리했다.


모닝쇼 이번 시즌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브래들리가 가족에 의해 인생과 커리어가 파괴되는 과정이었다. 브래들리가 잠입취재하는 카메라 앞에서 브랜들리의 동생이 폭력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과 함께 백악관을 기습하며 경찰관을 때리는 장면이 담기는 순간 브래들리의 인생은 완전히 끝장났다. 상식적인 예상도라면 동생은 중형을 언도받고 감옥에 가고 그 영향으로 브래들리는 뉴스쇼에서 하차하며 인간관계와 커리어가 모조리 단절되는 수순이었다. 브래들리는 이성적 판단을 위한 모든 동력을 상실한다. 안 그래도 쓰러질 것 같은 자신을 지탱하던 두 개의 축이 사라지는 사건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내 삶을 가장 완벽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이젠 더 이상 절망감에 몸서리칠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브래들리는 그 장면이 카메라에 담긴 순간부터 중대 범죄에 연루된 당사자였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쓸데없었다. 결국 이런 대체 나는 왜 태어났을까로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바뀔 수 없었다. 브래들리의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이라는 수렁이 브래들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숨통까지 옥죄고 있었다. 아빠, 엄마, 동생까지 어느 하나 멀쩡한 인간이 없었다. 다들 나의 인생을 조지려고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발악 중이었다. 뉴스를 보는 거의 모든 미국인이 알아보는 유명 언론인이었지만 언제라도 금세 잊힐 수 있는 한없이 보잘것없는 흔하고 나약한 존재였다. 은폐를 시도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심지어 동생의 추가 돌발행동은 더더욱 다수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었다. 브래들리는 사랑마저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브래들리의 어쩔 수 없는 뿌리, 가족은 정말 브래들리의 삶을 연결하는 모든 다리를 불태우고 있었다. 뭐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냐며 어깨를 으쓱거리며. 모닝쇼가 브래들리에게 언제까지 욥의 고난 같은 사건들을 계속 견디게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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