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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r 05. 2024

조세핀의 나폴레옹에 대하여

리들리 스콧 감독. 나폴레옹

우리 결혼은

프랑스 번영의 장애물이 됐습니다.


당신이 러시아에 보낸 60만 명 중

오직 4만 명만이 돌아왔어요.

그래서 당신은 무기한 유배를 갈 겁니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영국의 연합과 프랑스 정부의 동의로.


그는 군인으로서 61차례 전투를 이끌었다.

1793년 -1815년 300만 명 이상이 전사



프랑스를 넘어 세계 정복에 가까운 야망을 꿈꾸던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이 가장 사랑하는 영토는 조세핀(바네사 커비)이었다. 한 국가의 영웅을 넘어 스스로 황제에 등극한 나폴레옹의 여성관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폴레옹이 자신과 동침한 조세핀의 출산을 통해 후계자를 볼 수 있었다면 나폴레옹의 역사, 최소한 둘의 역사는 어떤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가시적으로 소멸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버전보다 더 격렬한 불멸의 정복자 커플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적의 성벽과 광야의 적군들에게 대포알을 날리고 날아오는 대포알이 말에 맞아 쓰러지고 부하들의 머리가 날아가고 총칼로 심장이 찢기는 사이 조세핀은 다른 남성과 침대 위에서 뒤엉켜 있었다. 나폴레옹은 전장에서 이러한 진실을 전해 듣고도 돌아와 조세핀을 자신의 인생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영민하고 고혹적인 조세핀은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나폴레옹에게 어떤 존재감을 지니는지 간파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국경을 넘어 유럽을 지배하려 하고 있었고 조세핀은 나폴레옹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신과 덜 자란 소년의 화학작용, 둘은 서로를 결박했다. 나폴레옹은 매일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전장에서도 조세핀에게 보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편지가 문제가 아니라 종이 위 글자 수보다 많은 전장의 시체수가 문제였다. 조세핀이 황제의 아이를 못 낳는다는 죄로 쫓겨난 후에도 둘의 연서는 세계 지도 위를 오가고 있었다. 헤어지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걸. 둘만 인정하는 둘의 사랑은 추문과 웃음거리가 되어 신문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명예를 추락시켰고 권력의 상징 나폴레옹의 입지는 잉크 한 방울의 부피보다 좁아지고 있었다. 역사를 바꾸며 (당시 군인들에게) 추앙받던 나폴레옹이 그를 따르던 부하 3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조세핀의 목숨보다 가벼이 여긴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눈물을 조세핀 앞에서만 흘린 것처럼 연출한다. 군인들은 도망치는 나폴레옹 뒤에서 쓰러져 죽었고 조세핀은 그런 나폴레옹을 기다리다 병들어 죽었다. 그는 모두의 곁을 지키려다가 모두를 잃었다. 주변 모두를 희생시키고 역사가 영원히 기억하고 재해석하는 광인이 되었다. 결국 그의 방식대로 의지를 실현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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