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체
자기가 아는 걸 조심해요.
대개 거기서 문제가 시작되니까.
너희는 벌레다
천 번의 폭발 후에는
광속의 1.12%에 도달할 겁니다
네가 어느 방에 들어가든
우리가 먼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네게 보여주고자 하는 건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이 깊은 심연 어느 곳에 자살에 대한 욕망을 숨겨 놓고 있다면 인간의 집단 인류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자살에 대한 욕망이 너무 비대해서 공동의 소멸, 인류 멸망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일단 타인의 시선에 너무 노출되고 사후에도 남은 자들이 겪을 후유증이 크며 여러 부작용 등이 뒤따르지만 인류의 멸망은 심플하다. 모두가 (예외 없이) 단숨에 끝날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다수의 그림자 속에서 나의 최후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는) 기묘한 안도감마저 들게 한다. 삼체는 외계의 침공이라는 미래과학 장르에서는 흔한 소재를 다룬다. 원작이 궁금하지는 않았다. 오래전 충격과 감동과 함께 매료되며 격렬한 갈채를 보냈던 SYFY채널의 배틀스타 갤럭티카가 떠올랐다. 정복이 아닌 생존을 위해 침략을 감행한 외계 종족들. 단순히 대적과 섬멸의 개념을 넘어 이해와 커뮤니케이션의 영역 안으로 우주의 또 다른 생명체에 대한 인식을 바꿔줬었다. 여러 설정 상 삼체와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
삼체는 맥락에 대한 설득보다는 일방적 전시와 전달에 비중을 둔다. 한 국가의 혼란스러운 내전과 희생을 겪은 개인이 외계를 향해 복수의 메시지를 쏘아 올렸고 외계는 반응한다. 삼체라 불리는 외계 종족은 지구의 메신저들과 교신하며 지구와 구성원들에 대해 학습한다. 400년이 아니라 4초도 걸리지 않아서 지구를 감싸는 모든 레이어를 지우고 쑥대밭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최초 메신저인 예원제(진 쳉, 로잘린드 차오)의 자녀(교수)가 양성한 과학자들은 인류와 삼체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죽거나 다치거나 뇌가 분리된다. 삼체는 자신들을 섬기는 사이비 교주와 대화하며 인간은 거짓을 일삼고 쓸모없으며 죽이기 쉬운 벌레라는 정의를 알게 된 후 지구상의 모든 미디어 디스플레이를 통해 선전포고한다. 지구에 처박힌 인류, 너희들은 모두 벌레라고. 지구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다. 스마트기기와 컴퓨터와 도심의 옥외광고 등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을 통해 인류는 죽여 마땅한 벌레라는 메시지가 송출되고 있었다. 인류는 그때부터 집단 자살의 광기에 휩싸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HBO 왕좌의 게임 제작진이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체는 외계가 지구로 향하는 명분을 전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전지전능함에 있어서 삼체의 존재를 먼저 인지한 인간 무리들에게 삼체 문명은 서구권의 대표 신과 동일한 호칭과 대우를 받는다. 삼체와 지구에게 가까워지는 것은 신이 오는 모양새였다. 고난당한 인간이 태양을 향해 소원 메시지를 쏘고 우주가 응답하며 대신 복수를 해주러 오고 있었다. 성경에 기록된 신의 아들이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다면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신의 목적은 복수였다.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자기 종족에 대해 정의한 벌레들을 죽이러 오고 있었다. 여기에 대한 대다수의 인간들은? 멸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먼저 접촉한 사이비 교주와 무리들은 배를 타고 떠돌다가 나노 섬유 기술로 말 그대로 도륙당한다. 기다리던 자들이 비명 속에 팔다리가 날아가는 참극을 그들의 신은 보고만 있었다.
아주 멀리서 보는 이런 광경은 우스웠을 것이다. 도착해서 정복할 곳에서 미리 벌어지는 토착민들끼리의 아주 작은 내부 소동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지구인들에게 대안은 없었다. 애초 계획을 세울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평소에 다들 디스토피아적인 공상 과학 영화 스토리에 길들여져서인지 우주 문명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은 의연하고도 차분해 보였다. 마치 수명과 생명의 유한함에 익숙해졌듯이 외계 문명에 대한 인류 멸망 또한 언젠가 닥쳤을지 모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탁상공론은 지루했고 나이 든 백인 남성의 독재적인 의사결정을 전적으로 따랐으며 아시아 여성의 지적 능력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었다. 젊은 백인남성들은 순서대로 죽어가고 있었다. 삼체 문명은 미래 전쟁에 대비하는 지구인들의 모든 논의와 준비 과정, 핵심 구성원들을 모두 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사람들을 선별하고 있었다.
먼 우주로부터 다가오는 지구 멸망 가능성 앞에서 도시의 분위기는 급하지 않다. 각자의 성공적 커리어를 지니고 있는 이과 출신 동기들을 자주 부각하며 그들의 사랑과 우정을 강조한다. 애초 그들은 한 교수 밑에서 수학했고 그의 죽음으로 다시 뭉쳤으며 그 과정은 잔잔하다. 각자의 사생활과 애달픈 짝사랑이 자주 언급될 뿐이다. 그들은 하나씩 이야기에서 다양한 죽음의 외형을 갖추며 사라지지만 이것 또한 어차피 일어나게 되었을 일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들에게 인류 멸망은 하던 일을 관두거나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거나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미래의 사건처럼 보인다. 사실 그렇지만. 하여 어떤 소란도 긴장감이 옅어진다. 연기력, 연출, 각본, 편집 등 조금씩 탄력이 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네 가지 요소 전부 아직은 CG나 AI로 대체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여기에 대비해 예원제의 서사는 처절하기 그지없다. 격변하는 시대의 희생자에서 평생에 걸쳐 전 인류를 대상으로 멸망이라는 복수를 감행하는 심판자가 된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일이 그렇듯 그 뜻이 아무리 장대해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의 모든 여파를 감당하긴 버겁다. 예원제의 복수극은 예원제의 컨트롤 영역을 처음부터 벗어난다. 딸이 죽고 남편이 죽고 추종자들이 죽는다. 왜 나쁜 선택을 하는 과학자들의 서사는 늘 결과적으로 자신의 무력함을 드러내고 만인을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빠뜨리는 역할로만 등장할까. 예언제와 진 청(제스 홍)의 구도는 HBO와 BBC가 공동제작한 드라마(시리즈) 이어즈&이어즈의 각 진영의 대표를 상징하는 뮤리얼(앤 리드)과 비비언(엠마 톰슨)의 대립 구도와 유사해 보인다. 후자는 결국 종말에 이르렀고 전자 역시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 예원제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면 지성과 사연을 지닌 새로운 빌런으로 극을 리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떤 정의로운 용기도 고난을 겪은 사적 복수심 앞에서는 나약해 보인다.
집단 자살, 공동 소멸, 인류 멸망이라는 단어를 삼체에서 끄집어낸 건 극 중 인물들의 느슨한 태도 때문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타는 행성이 보일 정도의 급박함이 없어서 그런지 이전의 종말을 다루는 이야기들과 속도와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집단 학살 당하는 처참한 전쟁 보도와 끝없는 재난으로 이어지는 기후 위기 후유증이 가득 채워진 세계 뉴스에 노출되어서 그런지 멸망은 더 이상 잠시 공상으로 즐기는 허구가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자멸이든 공멸이든 외계 종족의 타의에 의한 대학살이든 언젠가부터 다수의 인식 속엔 잠재적으로 우린 모두 기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개인과 집단, 시대의 최후를 맞이할 수 있다는 잠재의식이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머리에 총구가 겨눠지면 과거엔 울며불며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겠지만 지금은 눈을 질끈 감으며 그래... 이런 날이 올 줄 알게 되었다.. 그래.. 어서 방아쇠를 당기렴...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생이었다... 같이 바뀌었달까. 넷플릭스 삼체는 전체적으로 이런 분위기 안에서 기술의 진보로 외계인의 공격을 요청했고 기술의 진보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대책과 방어 체계를 세우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위기에 대한 믿음 만으로 진행되는 (실체가 없는) 전쟁 대비. 22세기 버전의 트루먼 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