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릴 수 없는 기차를 타고

by 백승권

기차를 타고

창 밖의 풍경들이

빠르게 부서질 때


마지막 이미지들이 덜컹거리며

색과 선과 면으로 분리되고


터널을 지날 때마다

12호차의 승객들은

속도보다 빠르게 나이를 먹고


저기 기차 간다

멀리 바깥에서 볼 적에는

그저 빠르고 긴 교통수단일 텐데


1941년 여름

나치 무리들은 비슷한 길이의

화물기차칸에 유대인을 가득 태우고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바깥에서 문을 잠근채

모두 잠들 때까지 멈추지 않았고


*

1941년 여름에도 루마니아 병사들은 같은 해 1월

‘철권통치가 부카레스트에서 폭발시켰던 것보다는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학살과 이송 계획(“이 계획은 순전한 공포 면에서 보자면 전체 잔혹사에 대한 기록에서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였다.”)에 여전히 참여했다.

루마니아 스타일이란 5000명을 열차 화물칸에 발디딜 틈 없이 태우고는

여러 날 동안 목적지도 계획도 없이 교외를 달리게 하여 질식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살해 작전을 마치고 나서는 흔히 유대인 도살장에 시신들을 전시했다.


**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한 곳은 유개화차였습니다 . 텅 빈 화물칸은 그 안에 갇힌 사람들(한 번에 100명 이상) 중 일부에게 질식사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주림과 갈증, 극심한 과밀, 그리고 열악한 위생 환경 속에서 여정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추방된 사람들 중 다수, 특히 노인과 어린이들은 여정 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계엄과 내란이 성공했다면

이 기차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겠지.


살아서 내릴 수 있어서

오늘은 안도했어요.

내일은 알 수 없지만.

광주송정역에 도착하며.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분문 내용 중 일부


**

원문과 출처

Boxcars were the first place of death for many during the Holocaust. The bare freight cars often became a suffocation chamber for some of the people (100 or more at a time) who were squeezed into it. Those who survived the trip had to endure the journey under conditions of hunger and thirst, extreme overcrowding, and horrible sanitation. Many of those deported, especially the elderly and children died during the journey.

출처_ https://www.thefhm.org/exhibits/the-box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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