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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를 쓰는 세계

by 백승권

언어는 세계

각막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이미지로 영원히 각인되는 빛의 조각조차

언어의 일부


말과 글, 의미가 담긴 소리와 글자라는

원형적인 정의 중 후자, 글자, 글, 텍스트는

가장 긴요하게 쓰는 도구


선택은 했지만

책임이 없어

책임질 능력이 없어

다루는 재능, 능력, 실력, 자질, 트레이닝,

견고함, 표현력, 어휘력, 문장력, 리듬감,

전략, 결과, 기대감, 함의, 암시, 비유, 은유

설득력, 가독성, 매혹과 유혹, 강렬한 인상,

각인, 포근함, 따스함, 결계, 진심, 진정성,

타이밍, 사상, 사고 체계, 정서, 감정, 감각...

그 무엇이든 하염없이 낮고 얇고 좁고 얕아


붓으로 다루기에도

계산기로 다루기에도

퍼즐로 다루기에도

늘 삐걱거리고


가장 자주 쓰면서도

가장 자주 고장 나고

가장 오래 생각하면서도

가장 거칠게 갈기며


공을 넘기면서도

힘과 속도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고


더 비관적인 것은

앞으로도 얼마나 나아질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면

저의 세계는 이미

공기가 없어요


헉헉 토해내며

비뚤거리는 글씨로 가득한

여기저기 구겨진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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