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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Sep 29. 2024

디바와 갱신


Day 4-5. In München

드디어 그날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독일에서 머무는 7일간의 여정, 그 여정의 하이라이트이자 백미이자 정수이자 핵심인 아델의 콘서트 날이지요. S 언니와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Frankfurt-Höchst역으로 가는 우버에 탑승합니다. 택시로 가니까 금방이더군요. 내려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까지 가서 환승한 다음, 뮌헨으로 가는 ICE 열차에 올라탑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뮌헨 중앙역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 저희는 좌석 지정을 따로 하지 않고 탑승했어요. 즉 누군가가 저희가 앉은 자리에 와서 본인이 예약한 자리라고 하면 바로 꺼져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지요. 짐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S 언니는 식당 칸으로 떠나고, 저는 스마트폰 배터리 충전을 사수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전기를 열차에서 빌려 쓰면서 제 자리에 아무도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천운이 따랐는지 제 자리에 붙인 저의 엉덩이는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살짝 날씬한 외양에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유럽형 나무들이 창밖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런 모양의 나무들은 유럽에서만 본 것 같았어요. 질릴 때까지 각종 유럽형 나무의 초록과 뾰족했다 둥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습니다. 뮌헨역에 내릴 때엔 점심시간의 피크를 살짝 지난 타이밍이었고, 중앙역 부근은 터키 등 중동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이 드글드글해 다소 위험해 보였습니다. 아델이 콘서트를 하는 몇 주 주말 동안, 뮌헨의 호텔 가격은 몇 배나 뛰어있었습니다. 평소엔 10만 원 초반대로 예약할 수 있었던 호텔이었는데, 저희는 30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으로 예약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나마 아델의 콘서트가 있는 스타디움 근처 호텔들은 50만 원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가격도 요구하던 터라, 이 정도면 감지덕지다 싶었습니다.


체크인 시간보다 이르게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할 수는 없었던 저희는 짐만 맡겨 두고 바로 근처 괜찮아 보이는 와인 샵으로 출발합니다. 중앙역 인근을 벗어남과 동시에 동네의 소음은 반 이상 줄어들어 있었고, 인파는 중앙역 근처에서 보던 것의 4분의 1도 안 되는 것 같았어요. 동네가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으며 평화롭게 와인 가게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저희가 찾은(사실 S 언니가 찾은)곳은 ‘Zero Dosage’라는 이름을 가진 가게였어요. Dosage라는 단어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즉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샴페인을 만들 때 아주 소량의 dosage(이하 ‘도사쥬’)라는 것을 추가한다고 합니다. 단맛을 내기 위한 것이지요. 얼마큼의 도사쥬를 넣는가가 그 와인의 당도를 결정하게 된다네요. 물론 와인을 만들 때도 당이 있지만 발효 과정에서 그건 전부 알코올로 변형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 도사쥬를 넣지 않은 상태는 굉장히 드라이하다고 합니다. 시중의 드라이한 와인들조차도 소위 말하는 바디감과 입체적인 맛을 구현하기 위해 사실은 악간의 도사쥬가 추가된 거라고 해요. 갈 때는 몰랐지만 여러분께 이곳에 간 이야기를 전하려다 보니 덕분에 저도 새롭게 많은 것들을 알게 됩니다.


제로 도사쥬에서 주문한 화이트 와인과 안주


제로 도사쥬에는 저희가 첫 손님인 것 같았습니다. 다들 이쪽까지 와서는 옆에 있는 카페로만 빨려 들어갈 뿐, 와인 마시러 대낮같이 밝은 때에 여길 오지는 않더군요. 대관한 느낌으로 편하게 구석 자리를 택해 와인 추천을 받았습니다. 화이트와인, 오렌지, 레드까지. 같이 곁들여 먹는 안주로는 종류별로 놓인 치즈와 드라이 토마토, 이름을 알 수 없지만 바질이 섞인 듯한 상큼한 소스가 같이 놓이는 플레이트를 주문했습니다. 먹다 보니 갑자기 맥주가 당겨서 맥주도 주문해서 마셨어요. 따끈한 햇볕이 활짝 열린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가게에는 저와 언니 둘뿐이고, 주문한 와인과 맥주는 모두 사랑스러운 맛이었으니 더 바랄 게 없는 휴식이었습니다.


7월 말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S 언니는 회사 속 각종 어려움과 분노에 맞닥뜨려져 가며 열심히 고군분투 중이었는데, 뮌헨의 제로 도사쥬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처음으로 휴식 같은 휴식을 취해보는 것 같다고 했어요. 처음 느껴보는 휴식 같은 쉼에 제가 함께할 수 있다니 또 좋았달까요. 저희는 제로 도사쥬에 걸려 있는 자체 제작 티까지 야무지게 하나씩 구매*해서는 아델의 콘서트가 열릴 Messe München으로 출발합니다.


MAKE WINE GRAPE AGAIN! 이 문구를 보고 안 살 수는 없던 MD 티셔츠


듣기로는 이 Messe München이라는 스타디움은 7만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가봤던 가장 대규모의 공연은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박효신의 콘서트였는데, 이마저 2만 석이 안 되는 규모이니 아델의 콘서트에 몰릴 인파에 비하면 소박한 규모였던 셈이죠. 7만 명이 넘게 모이는 콘서트는 어떤 걸까? 속으로 상상하면서 공연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선 아델의 노래를 불안한 음정으로 떼창하는 예비 관중들의 소음으로 시끌벅적했습니다. 역시 떼창 퀄리티는 한국 사람 못 쫓아가는구나 싶었어요.


아델의 공연이 열리는 곳은 갖가지 이벤트와 먹을거리 마실거리들이 가득한 ‘Adele World’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칵테일도 팔고 맥주도 팔고, 심지어 음료를 주문하면 아델의 얼굴이 프린트된 까맣고 하얀 컵에 담아줬어요. €3를 받기는 했지만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컵이었습니다.


€3 보증금을 받고 음료를 담아 내어주었던 Adele 사진이 프린트된 컵


그래서 아델의 콘서트는 어땠냐고요? 먼저 콘서트 시작에 앞서 30분 정도 딜레이가 되는 사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가던 하늘을 먼저 떠올려야겠군요. Hello로 공연의 포문을 열던 아델의 묵직한 중저음과, 전광판을 수놓은 총천연색의 그래픽도요. 공연을 보기 한 달 전쯤 한국에서 벌써 설레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 인터뷰 당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콘서트를 진행 중이던 아델은 뮌헨에서 이어질 대규모 콘서트가 끝나면 ‘큰 휴식’을 갖고 싶다고 언급했더라고요. 또 유명해지기 이전의 모든 게 그립다**고도요. 은퇴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동안 아델의 음악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이번에 하는 뮌헨의 큰 콘서트 관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몹시도 다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어요. 이렇게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에서, 또 전성기에 비해 훨씬 몸이 말라진 상황에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요. 공연을 보는 내내 그 걱정들은 모두 기우였음을 알게 됩니다. 특히 밥 딜런의 노래가 원곡인 〈Make You Feel My Love〉를 부를 때나, 가장 많이 알려진 곡 중 하나인 〈When We Were Young〉을 부를 때요. 〈When We Were Young〉을 부르기 시작할 때는 전광판에 아델의 아기 때부터 유년기, 가수로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모습들까지의 사진들이 필름 컷으로 이어 붙여지듯 펼쳐졌는데, 그걸 아델의 노래와 함께 보고 있노라니 눈에 눈물이 천천히 들어찼습니다. 역사적인 데뷔곡인 〈Rolling in the Deep〉을 마지막 곡으로 택한 아델은 “See you, München”, 가볍게 인사하고 깔끔하게 퇴장했습니다. 하늘에서 수십만 개 콘페티가 떨어지고, 불꽃놀이가 수놓아지고- 7만여 명의 관중이 노래의 후주가 끝날 때까지 환호하도록 남겨두고서요.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는 〈When We Were Young〉 무대 중 일부


공연 중간엔 비가 잠시 내린 적도 있었어요. 비가 두 번째 내릴 때는 아델이 다음 노래를 시작하기 전 토크 타임이었는데, 그때 아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Bring that rain. 'Cause now is the fucking time anyway. Bring on that rain. Bring that drama. I'm a Diva. Take me up. This is Skyfall.”(내리라고 해요. 어쨌든 지금이 때란 말이죠. 비 내리라고 해요. 극적으로 만들죠, 뭐. 저는 디바니까요. 다음 곡 Skyfall입니다. | 의역이라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웅장한 전주가 흘러나오고, 디바 그 자체인 아델의 당당한 걸음걸이와 묵직하고 중후한 중저음을 들으며 저는 왠지 모를 전율을 느꼈습니다. 스스로 디바라 칭해도 전혀 과하거나 이상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것. 스스로의 위치에 대해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자신감과 당당함. 아델의 노래도, 아델 월드로 꾸민 7만여 명이 운집할 수 있는 커다란 스타디움도 멋졌지만 왠지 가장 뇌리에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은 건 바로 그 장면이었어요.


디바로서의 면모를 한껏 보여준 아델의 멘트


S 언니와 저는 아델 콘서트에서 얻어온 감흥에 취해 힘들지 않게 숙소로 돌아왔고, 숙소 앞에 있는 맥줏집에서 맥주를 받아 마시다가 아델 콘서트에서 받아온 €3짜리 MD 컵에 남은 맥주를 탈탈 털어 가지고 나와선 우버 이츠로 시킨 쌀국수를 가지고 방으로 올라갑니다. 독일에서 쌀국수는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는 것 같아요. 마부르크의 캐시 온리 가게에서 쌀국수를 먹고 바로 다음날 연이어 먹은 쌀국수였지만, 다른 결로 맛이 있어 놀라면서 먹었습니다. 너네 음식이나 잘 해봐…… 그런 생각을 조금 하면서도요.


뮌헨 이틀 차인 여행 6일 차는 날씨 요정이 따라붙었다고 믿을 만큼 좋았던 이번 여행 중 가장 궂은 날씨를 자랑했던 날이었습니다. 커다랗고 예쁘게 조성되어 있어 한여름의 뮌헨을 만끽하기 좋다고 들었던 영국 정원이라는 데서 와인 홀짝이며 수다 떨고 보내려고 계획한 적도 있었지만, 그 옵션은 흐려진 하늘 앞에 저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에서 빠르게 사라졌어요. 언니는 독일에 온 지 1개월 남짓 되었지만 학센 같은 독일 전통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먹을 수야 있었겠지만, 보통 학센은 2인 이상이 왔을 때 시켜야 다 먹을 수 있는 분량으로 나오니까요.


언니와 저는 근처 슈나이더 브로이하우스(Weisses Bräuhaus im Tal)라는 식당에서 학센과 맥주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합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일요일에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거리의 인구 밀도는 문을 연 가게 위주로 급격한 차이를 보였어요. 저희가 가기로 한 슈나이더 어쩌고는 문을 열었기에 사람이 드글드글했습니다. 설마 저게 웨이팅? 했던 게 웨이팅 줄이 맞더라고요. 안에는 독일 전통 의상 같은 걸 입고 있는 청년들도 있었고, 전통 의상에 더해 악기까지 가지고 와 연주를 하는 장년층도 있었어요. 들리는 음계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노래가 연주되는 걸 들으며, 연주하는 독일 할아버지들을 훔쳐보며 대기 줄이 사라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줄은 빠르게 줄어들더군요.


악기를 가지고 와서 연주를 하시는 장년층 손님과 전통 복장을 입고 온 다른 테이블의 청년층 손님


문제는 주문에 있었습니다. 주문하기가 까다로운 건 프랑스도 그렇다고 들었지만, 주문하기까지 제가 겪어본 중 가장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어요. S 언니와 제가 앉은 테이블이 조금 구석진 곳이었고(저희만큼 구석진 데 앉은 유럽 가족 테이블도 있어서 인종차별은 아니었습니다), 가게는 너무나도 넓고, 꽉 들어찬 손님들에 비해 서버가 모자란 것 같았습니다. 맥주 500cc짜리 컵을 12잔씩 차력 쇼하듯 나르는 서버 언니(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동생인 것 같아요)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20분이 넘게 주문을 못 하고 앉아 있는 건 꽤나 곤욕이더라고요. 어렵사리 눈을 마주쳐서 테이블에 앉은 지 30분이 되기 전에 주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소시지와 학센을 주문했어요. 주문하기까지 억겁의 시간이 걸린 것만 같았는데 막상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데까지는 큰 기다림이 필요 없더군요. 음식은 10분 내외로 모두 서빙되었습니다. 소시지 모둠과 맥주를 마시는데 그 첫입이 하- 어찌나 그렇게 맛있던지요. 색이 미색인 것부터 갈색빛이 도는 것까지 여러 종류였는데, 옅은 색으로 갈수록 맛이 더 좋아지고 육질이 부드러웠습니다. 학센의 겉껍질은 아주 빠삭빠삭하게 구워져 있었고, 속살 중 다리 살은 아주 야들야들하고 쫀득했어요. 과연 맛집이로군, 언니와 저는 감탄을 하며 학센과 소시지를 먹어치웠습니다.


맛집답게 맛이 있었던 학센과 소시지 모둠


4시 50분경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야 하는 S 언니에게는 뮌헨에서 보낼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어요. 남는 시간에는 시샤 바에 들어가 물담배 타임을 잠깐 가져주고, 언니는 역으로 기차를 타러 떠났습니다. 언니가 떠나고 홀로 남은 저에게는 바로 다음 행선지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뮌헨에 하루 더 머물기로 했었기에, 숙소로 가야 하는 것이었어요. 호텔스닷컴에서 아파트형 숙소를 예약해 두었는데, 이때부터 이번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믿고 싶은 비극의 서막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복선은 있었어요. 저도 감지한 복선이었습니다. 저는 뮌헨 중앙역과 가까운 중심지 쪽에 숙소를 잡았어요. 위치도 몇 번이나 확인했더랬습니다. 왜냐면 그 아파트형 호텔은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East 지점도 있었거든요. 그쪽으로는 사실 숙소를 잡을 이유가 없었죠. 다음날 바로 중앙역에서 베를린에 가는 기차를 타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메일이 자꾸 East 지점에서 오는 거예요? 좀 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East 쪽에 먼저 숙소가 생기고, 중심지엔 좀 나중에 생겼기 때문에 원조 격(?)인 East 점에서 메일이 그냥 오는 건가보다 생각하기로 했어요. 호텔스닷컴에서 너무 분명히 City 지점으로 예약해 둔 정보가 보였으니까요.


숙소까지 한참을, 거의 20분 가까이를 수트케이스를 질질 끌고 비를 맞아 가면서 도착했습니다. 일말의 불안을 채 벗어던지지 못한 채로요. 숙소 1층에 있는 현관문을 열려면 패스 코드가 필요했고, 그건 이미 메일로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패스 코드를 어떻게 입력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어요. 온갖 방법으로, 갖은 경우의 수를 다 썼는데도요. 당황한 저는 숙소 측에 메일을 보냅니다. 나 여기 왔고, 패스 코드 입력했는데 안 먹힌다고, 그리고 나 City 쪽 예약했는데 East 지점에서 메일이 자꾸 와서 이상하다고요. 조금 뒤에 답장이 오더라고요. “너 East에 예약했어.”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 지구가 저를 내팽개친 느낌이 들었어요. 곧장 호텔스닷컴 예약 내역을 캡처해서 보냅니다. 내 예약 내역을 봐라, City로 예약돼 있지 않느냐 했더니 또 한 십여 분 뒤에 내일 아침 그쪽 매니저가 환불 건으로 연락을 할 거랍니다. 뭐 오늘은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말 한마디 없었어요. 그러면 나는 오늘은 새로 숙소를 구하라는 거냐, 아니면 너네가 예약을 잘못 잡아둔 East 지점이라도 가면 되는 거냐고 묻고는 한참을 문 앞에서 기다렸지만 답장은 도착하지 않았어요. 더 지체할 수는 없었던 것이, 이미 그 앞에서 서성인 지 1시간이 지났고 때는 저녁이라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뮌헨에 오기로 했던 건 아델의 콘서트가 가장 메인이었지만, 약 7년 전 처음 독일 여행을 왔을 때 들렀던 뮌헨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았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에어비앤비에 묵었었는데, 호스트가 집 근처 맛있는 식당이라며 추천해 준 곳이 있었어요. La Kaz라는 이름을 가진 식당이었고, 당시 타파스류의 음식을 주로 했던 곳으로 기억하는데 약간 어둑한 조도와 너무 맛있는 음식에 서버의 친절함까지 더해져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식당으로 기억하고 있던 곳이었어요. 여행 전에 설레는 마음으로 구글 맵에 검색했는데 La Kaz가 아직 있더라고요! 경쟁력 없는 업장은 2년 내지는 3년 안에 모두 망하는 시점이라, 일단 몇 년이 지나고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La Kaz의 위용은 입증이 된 셈이었습니다. 문제의 그 아파트형 숙소에서는 또 약 15분 거리였어요. 한참을 또 수트케이스를 끌고 팔에 느껴지는 통증에 무감해지려 노력하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도를 내리밟아갑니다.


고양이가 그려진 까만 간판. La Kaz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예전에 보던 것보다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였어요. 머리를 묶은 남자 직원분이 친절하게 수트케이스를 계단 위로 들어 올려 주시고 자리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저는 로제 와인 한 잔과 크로켓을 주문했어요. 금세 서빙된 와인과 요리는 근사했습니다. 기억하던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어요. 약간 아쉬웠던 저는 메인 요리를 추천받습니다. 고민하던 메뉴를 읊었더니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설명하던 서버가 사실 난 이 메뉴를 추천하고 싶다고 한 메뉴를 짚어 주더라고요. 누들 어쩌고였는데, 누들을 마치 주먹밥처럼 동그랗게 치즈랑 이것저것 섞어서 말아 둔 걸 샐러드와 함께 내어주는 그런 요리였어요. 독일이니까, 리슬링 한 잔을 시켜서 메뉴가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아아, 그 메뉴는 정말 대단한 메뉴였어요. 올리브유와 적절한 소금으로 간을 한 샐러드가 일단 기가 막혔고, 파마산 치즈가 녹아내리는 그 누들 볼의 식감과 맛도 엄청났습니다. 리슬링 한 입, 누들볼 한 입, 샐러드 한 입 이렇게 먹으면서 기쁜 마음에 감탄하면서 접시를 치워 갔습니다. 양이 많아서 좀 남기게 됐고, 서버분께 부탁해서 남은 걸 포장해서 가져가겠다고 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식사였어요.


직원 추천으로 시켰던 누들 볼, 그리고 여전히 아늑하고 따뜻한 La Kaz의 내부


좋은 기억은 차라리 묻어 둘 때가 더 괜찮은 경우가 많잖아요. 좋았다가 다음 기억을 쌓으려 했을 때 그 기억이 안 좋으면 처음 만든 좋은 기억마저 퇴색되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까요. 이번의 La Kaz는 그야말로 좋은 갱신이었습니다. 식사 중에 급하게 예약한 또 다른 숙소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엔 저를 오후 내내 괴롭힌 그 문제의 아파트형 숙소가 준 불쾌함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La Kaz에서의 좋은 기억이 유지되고 있어서였어요.


급하게 검색해서 온 것치고 너무 훌륭했던 뮌헨 숙소


놀랍게도 5분이 채 안 되는 검색 끝에 예약한 하루짜리 숙소는 이보다 더 근사할 수 없는, 제 마음에 쏙 드는 숙소였습니다. 심지어 취사도 가능했어요. 숙소에 도착해 기쁜 마음으로 짐을 풀고 숙소의 사진을 찍으면서 저는 또다시 인생의 진리를 체감합니다. 인생엔 늘 좋은 것도 늘 나쁜 것도 없으며, 때론 기대 없이 행한 어떤 일이 생각 이상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걸요. 허겁지겁 험난하기만 했던 오후 뒤에 찾아온 반가운 기억 갱신과 뜻밖의 선물 같은 숙소의 기운에 힘입어 저는 산뜻하게 잠에 듭니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01/09/24

임우유 드림.




* 제로 도사쥬 사장님이 MD로 직접 제작한 이 티셔츠 뒷면에 적힌 이 문구를 보고 아니 살 수 없었습니다. “MAKE WINE GRAPE AGAIN”. 트럼프가 대선 때 내걸었던 슬로건인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연상케 하는 아주 위트 있는 문구가 아니겠어요?

** 인터뷰 원문: “I want a big break after all this and I think I want to do other creative things just for a little while.” / “I miss everything about before I was famous, I think probably being anonymous the m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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