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 하는 아이가 살아남는 법

by 온도

초등학교 3학년의 학교생활은 그리 즐겁지않았다.

내 짝은 얼굴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도시락 반찬도 늘 근사한 친구였는데, 매우심술맞았다.

내가 수줍고 말이 별로 없어서인지 공부를 잘 못해서인지 아니면

도시락 반찬이 매일 똑같아서였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애는 나를 매일 괴롭혔다.

우리가 함께 쓰는 책상의 경계선은 이미 내 쪽으로 한참 밀려 있었고,

내 팔이 조금이라도 그 선을 넘으면 그애는 내 팔을 세게 꼬집어댔다.

선생님에게 이르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하고 침묵으로 버티던 시간.

내게 학교는 점점 가기 싫은 곳이 되어갔다.

엄마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몇 번 말했을지도 모른다.

크게 호소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 그 말들이 조용히 쌓였던 것 같다.


어느 오후, 엄마가 갑자기 학교에 오셨다.

원래 키가 크고 늘씬한 엄마는 정장으로 쫙 빼입으시고

예쁘게 화장하고 스프레이로 고정한

멋진 헤어스타일을 뽐내며 학교에 오셨다.

선생님과 짧은 면담을 마친 뒤 내 자리로 오셨다.

엄마는 내 주변 아이들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고,

그때 내 짝은 정말 착하고 고분고분해졌다.

정말 이상하게도 말이다.

그날, 내 앞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말했다.

“너 그렇게 괴롭하더니, 엄마 오니까 착한 척하네.”

그 말을 듣고야 알았다.

다들 알고 있었구나. 내가 괴롭힘당하고 있었던 걸.

그날 이후로 짝은 나를 훨씬 덜 괴롭혔다.

그애는 나도 괴롭히면 찾아와 보호해줄 엄마가 있다는걸

그때서야 알았던 걸까 아니면

그냥 단지 어른의 존재 앞에서 스스로 눌린걸까.

.

4학년부터 방과후에 할 일이 없어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나는 의외로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매일매일 학원에 가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학교에 없던 친구들도 미술학원엔 생겼다.

시대회, 도대회, 전국대회까지 많은 그림대회에 참가해서 상을 탔다.

매주 월요일 전교생 조회시간에 이름이 불려 교단에 올라

상을 타는 단골학생이 되었고

학교 친구들은 내 얼굴은 몰라도 내 이름은 알고있었다.

수줍고 내성적이던 성격은 점점 자신감을 얻어갔고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후로 중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고서도 이 일이 가끔 생각났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내가 잘 지내서 다행이라고 여기셨지만

나는 사람은 참 부조리한 존재임 깨달아버렸다.

미약한 권위나 지위, 나이 앞에서도 눈빛도, 말투도, 태도도 바뀐다.

수줍고 말 못 하는 사람에게는 잔인해지고,

자신감 있고 당당한 사람 앞에서는 조심스러워진다.

그건 어른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어린이 때도 이미, 우리는 그 본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말하지 못했던 순간들, 무기력하게 넘긴 날들,

그리고 아주 뜻밖의 구조로 겨우 건너온 기억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있고

유년시절은 결코 웃음소리로 이어진 날들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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