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서울로 상경한 지 약 3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서울살이 3년을 1톤 트럭 한 대에 싣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정확히 1년 뒤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겠다는 서글픈 마음까지 가슴에 싣고서.
분명 나도 살았던 집이었지만 내 방이었던 공간을 도로 되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치 비좁은 골목에 몸을 욱여넣어 통과하는 듯한 난이도였다. 다시 돌아올 줄 모르고 샀던 가구들 때문에 더욱 그랬다. 방에 있어야 할 서랍장은 세탁실로 옮겨졌고, 침대 프레임 위에 올라갈 매트리스는 기존의 매트리스 위에 이중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하면서까지 고향을 찾아온 건,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02.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보니, 수중에 사업자금이라고 할 만한 돈이 충분하지 않았다. 모으는 건 고사하고 이제부터라도 나가는 돈을 줄여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끊은 게 자취방의 월세였던 것이다.
03. 사업은 모아둔 돈을 쓰고, 벌리는 돈은 재투자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한 번에 거액이 들어오는 매출이 있지 않은 이상, 쫌쫌따리로 들어오는 돈들은 잠깐 모였다가 다시 어딘가로 흘러가게 되었다. 흐르고 흘러서 다시 내게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또 다른 과정.
04. 빠른 시일 내에 가장 크게 재투자하고 싶은 건, 공장 계약이다.
현재, 내가 운영하는 밀키트 사업의 업종은 '즉석식품제조가공업'이다. 일반 식당에서 직접 밀키트를 제조,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마켓컬리나 쿠팡, 백화점 입점 등이 어려운 상황이다.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를 해야 하는 제약이 있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제약이 없는 '식품제조가공업'으로 업종을 변경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러려면 자체 생산 공장이 필요했다. 그리고 얼마 뒤, 공장 계약을 준비하기 위해 부동산 문을 두드렸다.
가장 처음에 본 매물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20평대 소규모 공장이었다. 예상보다 권리금도 월세도 전부 저렴한 편이었다. 흠이라고 할 만한 게 몇 가지 보이기는 했지만, 당장 계약하고 싶을 만큼 충분히 이상적인 매물이었다. 아직 매물을 1개밖에 않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이상적인데 저렴하기까지 한 매물을 계약할 여유자금이 내게는 없었다. 서러웠다.
하지만 더 비참했던 건 따로 있었다. 공장을 계약할 수 없었던 더 냉혹한 현실. 여유자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공장을 계약할 만큼 사업이 아직 크지 않다는 것. 계약하더라도 공장이 쉬는 날이 더 많을 거라는 것.
05. 공장 계약은 아무나 못하겠구나 싶었다. 두 가지 경우에 공장 계약을 통해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 하나는 매출이 잘 일어나고 사업 규모가 커져서 그걸 생산할 공간이 더 필요할 때. 즉, 어쩔 수 없이 사업을 확장할 수밖에 없는 경우다. 또 다른 하나는 매출이 잘 일어나지 않더라도 사업 규모를 일단 키워서 어떻게든 매출로 이어지게 만들 '깡다구'가 있을 때. 이건, 타고나거나 확신이 있거나 아니면 미쳤거나.
06. 사업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잘 될 수밖에 없는 아이템과 팀원, 마케팅 전략, 판매 채널 등등 모든 무기가 준비됐을 때 시작할 수도 있다. 반면에 그저 깡으로, 독기로, 믿음만으로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맨땅에 헤딩하면서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리고 기둥을 세우고 결국엔 우뚝 솟아나는 성공신화도 들려온다.
이 모든 경우의 공통점에는 '자기 신뢰'라는 게 보인다. 나에게 어떤 좋은 재료가 있는지 알고, 그걸 잘 활용할 수 있겠다는 자기 신뢰. 그러고 보면 사업을 하려면 '자기 신뢰'를 갖고 있는 사람만이 사업할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07. 사업자금이 없어서 내게 사업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돈으로 어떻게든 시작하고 보니 어느덧 1년을 채워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해양수산부가 주최하는 행사에 초청받기도 했다.
다음 스텝은 사업확장이다. 내가 할 일은 이제부터 둘 중 하나다.
매출을 크게 일으키거나, 깡다구를 제대로 키우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