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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Sep 21. 2021

엄마가 나처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엄마가 나처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우리 집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이모가 한 명 있다. 내가 어릴 적 경남 마산에 부림 백화점이라는 곳이 있었다. 당시의 나름 핫플레이스였다. 이모는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그곳에서 병풍 판매를 해서 '사업에 성공한 아가씨'가 되었다. 80년대였으니 지금보다 훨씬 흔치 않은 일이었다. 가끔 놀러 가면 이모가 부림 백화점에서 아무 인형이나 막 집어 나에게 '이게 이쁘나? 저게 맘에 드나?' 라며 권했다. 가격도 보지 않고 말이다. 

 30대에 방 세 칸짜리 집을 구매한 이모는 작은 이모와 작은 외삼촌을 데리고 살았다. 바깥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인터폰으로 받을 수 있고 안방에 화장실이 달린 고급 아파트를 나는 처음 보았다. 이모 집에 놀러 갔던 날 안방의 화장실이 너무 신기해서 화장실에 비치된 발판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나에게 이모는 "너는 오늘 거기서 잘래?"라며 놀렸다. 

 성공했던 이모는 40대가 되어 돌연 불가에 귀의했고 스님이 되어 지금은 경남 사천에 멋집 절을 지어 원 없이 기도하며 산다. 이제는 이모라고도 부르면 안 되는 스님.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지만 예전부터 소림사와 같은 절도 좋았고 이모가 스님이 되고 난 후로 더욱 절이 좋아졌다. 지금은 60대가 넘었지만 스님 이모는 피부가 반들반들하고 눈은 초롱초롱하다. 절에 남는 갖가지 음식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퍼주며 사는 이모의 모습이 풍요로워 보인다.

 이모의 삶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우리 엄마가 이모와 같이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엄마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결혼생활을 하며 사람의 관계에서 얻는 위로는, 그만큼의 희생과 스트레스를 감안했을 때 얻어지는 것 같다. 엄마가 아빠와 사는 일, 엄마가 우리를 키우며 사는 일이 꼭 그랬다. 만일 엄마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엄마도 나름 참 멋진 여성이 되었을 텐데.


 부모님의 30대에서 50대는 온전히 두 딸을 위해 쓰였다. 그 시간 동안 부모님이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넉넉지 않았던 살림이었기 때문에 모든 선택은 포기를 동반했는데 주로 포기를 하는 건 부모님 쪽이었다. 잠을 포기하고 갖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우리를 위해 휴일을 반납했다. 20살이 되어 나와 동생이 집을 떠났지만 거의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집에서 돈을 타다 썼다. 이때 가져간 돈은 어릴 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하다. 

 중국으로 유학 다녀온 나는 중국어가 유창해졌다. 영국으로 유학 다녀온 동생은 영어가 유창해졌다. 엄마는 어릴 적 자신도 하마터면 독일의 간호사로 파견될 기회가 있을 뻔했다고. 그랬다면 엄마도 독일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 당시 엄마가 독일을 갔다면 고생깨나 했을 테지만 엄마에겐 유창한 독일어와 함께 우리 가족 대신 다른 인생이 생겼을 텐데. 이렇게 고생스러울 줄 알았더라면 어린 날의 엄마는 같은 선택을 했을까? 


 동생과 내가 더 이상 집에서 돈을 타 가지 않을 때가 되자 엄마도 일을 그만두고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찾기 시작했다. 매일 산에 올라가고 쇼핑도 실컷 하러 다니고 요리도 매일 열심히 한다. 요즘은 엄마가 영어 공부를 한다. 꾸준히 한지 5년 정도 되었다. 엄마의 영어공부 방법이 썩 선진적이지는 않아서 입은 잘 못 떼어도 그간 단어 수를 얼마나 외웠는지 간단한 독해는 곧잘 한다. 평생 자식 잘 되기를 바라며 우리 자매의 성적에 신경을 곧잘 세웠던 엄마의 성적 압박에, '그렇게 공부가 좋으면 엄마가 하지',라고 많이 생각했는데. 진짜 엄마는 공부가 좋았던 거였다. 때가 되니 엄마의 공부를 찾아서 하고 있다. 

 우리가 언제 갖고 싶은 거 한 번 미루고 살았나. 마음에 드는 차를 사고, 애플 생태계를 구축하고, 실컷 먹고 여행하고. 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쉬고. 이 평화가 깨어질까 봐 엄마는 내심 결혼해서 엄마의 고생을 대물림하지 않길 바라는 것 같다. 


 나는 부모님 집에 가면 엄마한테 먹고 싶은 것을 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평소에 나 스스로도 집밥을 곧잘 챙겨 먹기 때문에 엄마 밥에 대한 특별한 집착도 없거니와, 오랜만에 간 딸을 손님처럼 여겨서 엄마가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일 하는 것이 그저 싫다. 아니다, 솔직해지겠다. 가사일보다 장사를 더 많이 했던 엄마의 밥상보다 내가 밀키트로 조리한 음식이 나을 때가 있다. 대신 엄마를 데리고 나가 유행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호텔 뷔페를 데리고 가서 평소에 엄마가 못 먹던 메뉴를 먹는다. 세상에 아직 가보지 못한 맛있는 집이 얼마나 많은데. 최근에는 엄마가 양갈비와 수제버거집을 가보고 무척 만족했다. 어릴 적 엄마가 나를 데리고 나가서 이런 음식 저런 음식 처음 먹여 주었던 것처럼 정보력이 빠른 내가 엄마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많아졌다. 내가 이리 커 버렸다.


 엄마가 글을 써 보겠다고 하면 글공부를 조금 한 내가 윤문을 해주고, 그림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그림을 전공한 동생이 조언을 해준다. 엄마는 독립적으로 잘 살고 있는 딸들의 인생에 만족한다고 하고 우리는 엄마의 지금 모습이 보기 좋다. 더 이상 엄마는 자식과 가족들을 위해 본인의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것도 물려주지 말고 다 써버리라고 했는데 진짜로 다 써버릴 기세다. 하하 상관없다. 열심히 일해서 엄마가 갖고 싶다고 하는 거, 하고 싶다고 하는 거, 기력 왕성하고 누릴 수 있을 때 더 많이 해 주고 싶다. 이렇게 온 가족이 온전한 자신으로서 살고 서로를 응원해주는 지금이 엄마와 우리 인생의 절정기가 아닐까 싶다. 엄마가 건강할 때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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