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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08. 2022

아빠는 나 없으면 어떻게 살까

 아빠가 은퇴 후에도 자꾸만 자격증을 따려한다. 이번엔 화물종사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하셨다. 아빠의 도전에 큰 박수를 보내는 바이지만 아빠가 일을 벌일 때마다 나도 함께 바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신청부터 등록, 온라인 수강, 그리고 자격증 발급까지. 요즘은 온라인을 거치지 않고 하는 일이 드물고 그럴 때마다 아빠는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이번처럼 신청이나 발급을 부탁하는 건 양반이다. 전에는 자격증 이름도 모른 채 무작정 나에게 ‘요양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생각보다 관련 자격증의 협회도 많고 기관도 많아 한참 헤매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아빠의 부탁이 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클릭 몇 번만 하면 아빠보다 훨씬 더 쉽고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므로 나는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편이다. 부모님이 나의 모든 것을 알아보며 키우신 것에 비하면, 어쩌다 있는 이런 일을 귀찮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귀찮은 척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돕는다고 해도 부모님은 나에게 부탁하는 일이 미안하신가 보다. 아빠 엄마 둘이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애쓰다가 정 안되면 그때 나에게 물어보는 거다. 나에게 맡기면 내가 너무 빨리 처리를 해서 허탈해하면서도, 다음번에 또 혼자 끙끙 앓고 나서야 이야기한다. 아빠 엄마가 무작정 나에게 다 물어본다면 나도 지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렇게 얘기를 안 하고 있다가 고생 다 하고 나서야 나를 찾는 것도 속상하다.      


 이번엔 화물종사자격증을 신청했던 아빠가 1차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합격자 온라인 수강’이라는 것을 들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었던가 보다. 아빠는 나에게 직접 말도 못 하고, 엄마가 아빠 대신 사진 한 장을 보내왔는데, 안내지에 분홍 형광펜으로 중요 부분을 체크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었다. 희한하게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해서 아이디 비번을 넣는 것이 아니고, 휴대폰으로 본인 인증을 해서 로그인을 하는 것이었는데, 컴퓨터가 아닌 모바일로 하니 화면이 안내문과 달라 좀 헷갈렸던가 보다. 아빠에게 휴대폰 본인인증을 할 테니 인증번호를 달라고 했더니 이런 번호가 왔다.   

  

<02-527-****>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렸다. 인증번호를 보낸 곳의 발신번호를 보내준 것이다. 인증번호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온라인 수강을 혼자 하겠다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다음 달에 내가 집에 내려갈 때 하겠다고 하니 그럴 여유는 없다고 했다. 나는 다시 차근히 엄마와 영상통화를 걸어 아빠 폰 모니터 화면을 보는 식으로 일을 진행시켰다. 그런데 아이디와 비번이 없으니 매번 뭘 볼 때마다 아빠에게 휴대폰 본인인증을 해달라고 해야 했기에 아빠의 아이핀을 대신 신청했다. 아빠에게 아이핀을 인증하겠다고 얘기하고 인증번호를 요청했다. 이번엔 인증번호를 잘 전달해 주셨다. 아이핀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개인정보이니 아빠에게 전송을 해 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아빠가, 

 “딸이 아이핀으로 뭘 하라고 하는데 휴대폰으로 해야 하는 건가?” 

 라며 걱정을 하기 시작하더라는 거다. 나는 당장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아빠 개인정보인데, 내가 아이핀을 이용해서 사이트 가입을 할 수도 있는 거고 결제를 할 수도 있는 거라 그냥 알려 드린 거예요. 아빠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요.”     


 나도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불편한 것들이 늘고 있다. 컴퓨터를 처음 배울 때부터 함께 했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서비스를 종료함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 엣지에 익숙해져야 했고, 다음 서비스는 카카오톡 계정을 연결을 해야 사용할 수 있게 바뀌었고, 휴대폰도 철철이 업그레이드를 해 주어야 하는데 미묘하게 변하는 작은 변화들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 또 바뀌었어. 이전 게 편한데.”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40대가 되어서야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50대가 되어서야 스마트폰을 처음 만지게 된 부모님이, 변하는 흐름에 따라가기는 얼마나 버거웠을까. 나름 아빠 엄마도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가려고 유튜브도 보고 카톡 이모티콘도 쓰는 것이 보이지만 젊은 우리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20살이 되어 처음 집 떠나 유학을 가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들이 이런 것들이다. 집의 인터넷 가입기간이 끝나면 변경은 어쩌지. 티비와 비디오의 연결이 안 되면 누가 손 봐줄까. 실수로 냉장고, 냉동실의 온도조절 버튼을 잘못 누르면 제자리로 돌릴 수 있을까... 하지만 나 없이도 부모님은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내가 집을 떠난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큰 탈 없이 잘 지내고 계시다.

 다만 내가 더 많이 연락하고 물어봐서 별일은 없는지, 부모님이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싶어 하시는 건 아닌지 자주 물어봐야겠다.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너 키울 때 얼마나 손이 많이 갔는데’ 하며 막 물어보면 될 텐데. 다 큰 딸이 바쁠까 봐, 귀찮을까 봐 조심조심 말을 가리는 부모님이 더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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