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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Dec 06. 2021

엄마는 늘 나를 기다리고...

 엄마의 전자기기 활용능력은 기대 이상이다.

 스마트폰도 최신폰만 쓰고 인스타그램에 일상도 종종 올리며 티비나 네비의 인공지능과 대화도 자연스럽게 나눈다. 엄마가 디지털 기기에 부담 없어하고 최신 경향에 흡수되는 것이 자랑스럽다. 

 은퇴를 한 엄마는 쉬면서 좋은 곳이란 좋은 곳은 다 다니며 사진을 잔뜩 찍어 항상 휴대폰 용량을 오버했다. 카톡 프로필 사진도 자주 바꾼다. 인터넷 쇼핑도 어느 순간 혼자 터득하더니 내가 엄마 대신 주문해줄 때보다 훨씬 많은 주문을 다양하게 한다. 그런데 오배송이 되거나, 어머님 본인의 구매의사 취소로 교환, 반품 등을 해야 할 때면 꼭 나의 손길이 필요하기에 여전히 심심찮게 나를 찾는다. 그리고 엄마가 나를 찾는 시간은 희한하게 내가 폰으로 거래처나 손님과 중요한 응대를 하거나 운전하고 있을 때이다. 마치 징크스처럼. 그리고 내가 좀 여유 있는 날 엄마에게 말을 걸면 엄마 역시 등산 중이거나 쇼핑 중이라 바쁘다.


 그래서 엄마의 메시지에 종종 답변을 못한다. 핑계지만. 고객 응대는 즉각 즉각, 친구들 메시지도 바로 못하면 정중한 사과와 함께 꼭 답변을 하면서. 그러니까 엄마 메시지는 언제 답변을 할 수 있냐면, 내가 엄마에게 무슨 용건이 생겼을 때, 그제야 지난 메시지에 대한 답변을 덧붙여서 내 할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괜찮다. 엄마가 내 답변이 느리다고 삐치겠는가, 화를 내겠는가. 다만, 내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걱정을 하는데 카톡의 숫자 1이 지워지고 '읽씹'만 했다면, 얘가 무슨 일이 난 건 아니구나, 바빠서 답을 못했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카톡과 같은 메신저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던 시절에 엄마와 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나의 20대 때였는데 엄마가 처음 컴퓨터를 사용하며 컴퓨터 타자 연습을 하는 대신 나에게 매일 이메일을 써주었다. 그때도 나는 참 바쁜 척을 했다. 엄마가 메일을 2~3통을 쓰면 나는 한 통의 답장을 썼다. 그때도 내가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라 누가 내 코 베어 가는 줄도 모르고 전력질주밖에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아직 엄마 손이 많이 그리울 20대라서 엄마에게 메일이 오면 참 좋았는데, 그때도 읽을 때만 좋고 답장은 밀린 숙제처럼 어쩌다 하나씩 했던 것이다. 그 메일을 오랜만에 들어가서 보는데, 엄마는 대답 없는 내 메일에 "왜 답이 없니?" "흥, 재미없어 답장 좀 보내봐" 하는 답변을 여러 번 보냈었다. 엄마가 슈퍼 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오늘은 손님이 많이 없네, 에고 심심해." 라거나 "오늘은 비가 와서 장사가 안 되네"라는 내용도 있었다. 아직 완벽한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해서 여전히 엄마 카드를 써대는 두 딸 때문에 장사가 잘 되어야만 했던 엄마의 상황이 지금 보면 못내 속상하다.

 누군가와 주고받은 카톡의 내용을 처음으로 돌아가 쭉 들여다보는 건 연애 초반이나 그러는 일이지만, 오랜만에 엄마와의 대화를 들여다보니 참 나는 중간에 잘라먹은 말도 많고 대답 없는 것도 많고 대답도 죄다 단답형이다. 고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는 갖은 이모티콘을 다 붙여서 알랑방구를 뀌면서.


 엄마의 매일 아침은 딸들을 위한 기도를 하며 시작된다.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다. 외할머니도 매일 저녁 식구들을 위한 기도를 빼먹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아침에 눈 뜨면 스케줄 확인부터 하고 사무실에 가서 힘껏 일을 한 다음, 여유가 있으면 귀여운 개들과 놀고, 귀여운 개들 밥을 주고, 귀여운 개들 춥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간식 주고 집에 들어와서 내 잠자리 따뜻하게 만들어놓고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부모님 생각 한 번도 안 한 날도 부지기수인 것이다.


 다행이다.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봐서. 아직 답변을 할 기회가 있어서. 생각난 김에 엄마에게 빚졌던 답변을 하나씩 해볼까 싶다.

 심지어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죽을 뻔 한 회사 살리느라 올초에 집에 한 번 내려가고 한 번도 못 내려갔다. 거의 1년을 엄마 아빠를 못 본 것이다. 중국에서 유학할 적에도 4개월에 한 번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태어나서 이렇게 엄마 아빠와 오래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미뤄뒀던 '엄마 숙제'를 하나씩 해야겠다.


 생각 난 김에 엄마랑 진짜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하려고 폰을 켰는데 아무래도 잘 못하겠어서 엄마에게 물어보았더니 엄마가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엄마의 얼굴을 보자, 내가 그간 답변이 늦었던 것은 어쩌면 엄마보다 더딘 폰 활용 능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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