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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Sep 03. 2023

시골에서 만난 유기견, 식구가 되기까지

  길동이는 우리 집으로 쳐들어온 똥강아지였다. 말 그대로의 시골 믹스견. 그중 가장 인기가 없다는 블랙독. 시골로 이사 오고 난 후에 우리 집은 강아지 다섯 마리를 키우게 되었는데, 그중 길동이가 우리 식구가 된 운명이 가장 특별하다. 


 시골에 자리를 잡은 후 처음 맞는 가을이었다. 10월 말, 우리 사무실 마당에 놀고 있던 대형견들이 한쪽으로 몰려들었다.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마당으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 집 개들은 덩치가 크기 때문에 마당 울타리 아래에 난 조그만 구멍 정도야 막아놓지도 않았는데, 그리로 들어온 것이 분명한 낯선 개 한 마리가 눈을 꿈뻑꿈뻑하며 사무실 마당을 떡하니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다가가서, 

 “이리 와.”

 하고 손을 내미니 쪼르르 나에게로 다가왔다. 이빨 상태로 보아 5개월 정도 된 걸로 추정했고, 사람을 잘 따르는 걸로 봐서 사람 집에서 살던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강아지는 배가 고팠던지 우리가 건네주는 사료를 와그작와그작 잘 씹어 먹었다. 사무실 바로 앞은 차가 쌩쌩 다니는 4차선 국도라 사무실로 데려다가 누울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3kg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강아지였는데, 우리 집 25kg짜리들이 엉덩이 냄새를 맡다가 몸이 발랑 들려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저도 큰 개들 엉덩이 냄새를 맡아보고 덩치들 몸에 손을 짚고 일어서는 등 세상에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던 천진난만한 아기강아지였다. 우리는 근방에 검정 강아지를 잃어버린 사람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인터넷을 통해 올릴 수 있는 곳에는 다 올려놓았지만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후에, 군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도 영상을 올려 주인을 찾아보았지만 길동이의 주인은 결국 찾지 못했다.


 길동이를 데려다 키울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원래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던 나는 겨우 우리 집 대형견들에 정을 붙인 참이었다. 큰 개들과 작은 개들은 결이 다르다. 어떨 땐 같은 종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로 온 작은 강아지는 시도 때도 없이 왈왈 거리며 내가 가면 좋다고 덤벼 들었으나 나는 깨발랄한 어린 강아지를 처음 맞아 보았기에 자기를 만져달라고 배를 뒤집는 모습이 어색할 뿐이었다. 결정적으로 큰 개 두 마리가 개껌 때문에 싸움이 난 적이 있었는데, 길동이가 눈치를 보다가 떨어진 개껌만을 홀랑 들고 도망을 가는 것을 보았다. 어린 강아지가 뭘 알았을까. 하지만 그때 이후로 길동이는 확실히 나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원하지 않았던 강아지를 무턱대고 키울 생각은 없었다. 강아지 주인을 찾는 글은, 강아지 분양 글로 바뀌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지인들에게도 길에서 온 작은 강아지를 추천해 보았지만 아무도 검정 강아지를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얗고 털이 뽀송뽀송한 강아지를 원했다. 유기견 센터에 보내려고 하니, 주인을 찾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눈에 선했다. 밥 달라고 우리 집에 쳐들어온 이 강아지를, 내 손으로 사지에 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길 개로 자유롭게 살던 길동이는 갇혀 있던 게 답답했던지 틈만 나면 집을 나가버렸다. 다시 자유를 찾아 떠난다면 막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 네가 가고 싶은 곳 실컷 쏘다니며 자유롭게 살아라. 그렇지만 희한하게도 반나절만 지나면 또 처음 들어왔던 예의 그 개구멍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큰 개들은 길동이가 집 나갔다 돌아올 때마다 큰소리로 합창을 하며 길동이의 귀환을 알렸다. 밖에 나갔다 돌아온 길동이는 늘 허겁지겁 큰 개들의 물을 빼앗아 마셨다. 결국 어딜 가봐도 우리 집만 한 곳이 없었던 것일까. 길동이가 우리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중복해서 맞혀도 상관없는 각종 예방접종을 시기별로 해 주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산책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 목줄을 처음 매어 주었는데 어색하였던지 고장 난 강아지처럼 제대로 걷질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검둥아' 하고 아무렇게나 부르던 길동이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 같다고 하여 길동이라고 정식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길동이 뿐만 아니라, 큰 개들도 모조리 사무실 안에서 잠을 재워야 했다. 이가 가려웠던 길동이는 밥그릇을 물어뜯고, 가죽의자를 물어뜯고, 전선까지 물어뜯다가 종종 혼나곤 했다. 겨울을 나는 동안 길동이의 몸은 쑥쑥 자랐다. 3kg였던 강아지는 금세 5kg를 넘어 7kg까지 커졌다. 몸통과 네 다리가 몰라보게 쭈욱 길어졌다.  봄이 되자 성견이 된 길동이는 첫 생리를 하게 되었다. 사무실에는 길동이 빼고 모조리 수컷이라, 길동이 냄새를 맡고 난리가 났다. 한 놈은 밤새 하울링을 하고, 한 놈은 180cm 높이나 되는 철창의 지붕에 생긴 틈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길동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강아지를 집에 데려와서 사는 건 더더욱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나는 길동이를 베란다에 두고 키웠다. 길동이는 정말 얌전했다. 한 번 혼났던 적이 있었던 지라, 집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건들지 않았고 내리 잠만 자고 눈만 꿈뻑꿈뻑거렸다. 이가 가려울 까봐 개껌을 챙겨주고 몸보신을 하라고 황태국과 닭죽을 끓여 주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먹어본 맛이었던지 동공이 커진 길동이는 꿀떡꿀떡 잘도 받아먹었다. 집에서는 베란다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되는 줄 알았던지, 내가 아무리 오라고 해도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시골은 전천후 아무도 없는 텅 빈 시골길이 많다. 길동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 매우 날쌨던 길동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이동이라 해도 믿을 만큼 멀리 갔다가 내가 ‘길동아’ 하고 부르면 금방 뛰어 돌아왔다. 길동이는 처음부터 내 말만 들었다. 가장 먼저 길동이를 발견한 것도 나였고, 여럿이서 함께 길동이를 불러보면 늘 나에게만 오곤 했다. 역시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길동이에게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하루는 사무실에 열쇠수리하시는 아저씨가 왔다. 길동이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어? 맞는데? 맞는 것 같은데?”

 하시며, 읍내에서 왔다 갔다 하던 새끼 강아지에게 종종 밥을 주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아, 겨울에 얼어 죽었나 보다 생각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길동이가 그 시기에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아저씨가 그럼 분명하다며, 너무나 반가워하시며 이렇게 잘 살고 있을 줄 몰랐다며, 훌쩍 커버린 길동이를 보고 대견하다셨다. 나도 길동이의 과거가 정말 궁금했었다. 아저씨도 나도 기분이 좋아진 하루였다. 길동이가 그전부터 밥 빌어 먹으러 돌아다니던 개였다니. 찾는 주인도 없는 개라니. 어쩐지 유난히 말도 잘 듣고 얌전하고 눈치도 많이 본다 싶었다. 너도 쫓겨나지 않으려고 애썼던 거구나. 괜스레 짠해지고 마음이 더 아파져 그제야, 이제부터 너를 내가 지켜주겠노라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런 길동이와 함께 산 지 만 3년이 다 되어 간다. 길동이는 지금쯤 3살이 좀 넘은 것 같다. 우리는 언제나 단짝처럼 붙어 다닌다. 자동차 뒷공간을 아예 길동이 전용 좌석으로 만들어 주었고, 출근과 퇴근을 함께 하며 24시간 떨어지지 않고 함께 한다. 함께 복사꽃이 핀 복숭아꽃밭을 뛰어다니고, 황소개구리 소리에 뒷걸음치고, 뱀을 만나서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는 내 꽁무니를 미친 듯이 쫓아오던 길동이. 내가 하루종일 컴퓨터로 일을 하는 줄 아는지 일할 때면 기척 하나 없이 옆에서 조용히 잠만 자는 길동이. 약간 고양이 같은 습성이 있어서 내가 적당히 만져주면 스르르 빠져나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눈만 끔뻑거리다가 ‘길동아’ 하고 부르면 세상만사 귀찮은지 누운 채로 꼬리만 살랑살랑 흔드는 길동이. 사무실 가는 길에 샛길로 빠지면 길 잘못 들었다고 뒷좌석에서 삑삑 대고 난동을 부리는 나만의 개비게이션. 


 사람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데 개는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이것이 사람이 굳이 반려동물을 곁에 그것도 오래 둘 수 있는 이유인 것 같다. 

 어쩌면 길동이는,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함께 늙어갈지도 모른다. 나 하나 챙기기 바빠서 몰랐던 강아지 키우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 시골생활의 가장 큰 장점이다. 게다가 이곳은, 강아지와 함께 뛰어놀고 냄새 맡을 공간도 너무나 많다. 시골생활이 심심하거나 지겨울 틈이 없는 것에는 분명 우리 강아지들이 한몫을 한다.

 시골로 오니 인간이 아닌 것들에 눈이 뜨인다. 동물들과 함께 지내며 뇌를 쉬게 하고 산책을 당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벌레들과 고라니 똥과 너구리 발자국을 강아지의 시선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지구가 일찌감치 인간만을 위해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님을, 동물들과 두꺼비와 뱀과 함께 땅을 밟고 살아가는 것임을,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통해 다시금 새기게 된다.          






덩치 큰 오빠들 사이에서 늘 대장 노릇을 하는 대찬 길동이
매년 봄이면 복사꽃밭을 함께 누비는 나와 길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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