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싸, 재미난마을 이야기
by 늘보
'서울에 집 있고 차 있으면 부자다.'
한남대교를 지나는 지하철 안에서 서울의 밤 풍경을 보며 생각했었다. 심야에도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불빛과 환하게 밝혀진 고층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달동네에 터를 잡고 이민자 생활을 시작할 무렵이다.
꿈과 희망이 있는 애니메이션이면 좋겠건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주인공인 영화는 다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반전도 진한 감동도 소재가 빈약하기 때문에.
'이민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시간을 거꾸로 되감아 본다. 한 30여 년 전쯤 논밭이 대부분인 시골마을 풍경이 보인다. 이 촌 마을에서 200km 정도 떨어진 비교적 큰 도시로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가족이 이사를 간 것도 아니고 혼자 자취를 시작했다. 이민자로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곳에서 처음 문화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살았던 동네가 정말로 작디작고, 현대 문명과는 한참 뒤떨어진 곳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자란 마을은 고작 4층짜리 건물이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베이커리, 커피숍, 패스트푸트점, 쇼핑몰이 있을 리 없었다. 극장이라는 곳도 연극이란 것도 모두 처음 접했다. 한 가지 불편하고 어색했던 것이 있었으니, 이발소가 없다는 것. 미용실에서 젊은 누나들이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물을 때마다 어떻게 답할지가 곤혹스러웠다. 이민자의 도시화 적응이 이제 막 시작된 시기였다.
전역 후에는 더 큰 도시인 서울로 이민을 결심했다. 어깨에 아주 간단한 배낭 하나 둘러메고. 비교적 큰 도시로 여겼던 지난 터전은 어느새 작은 소도시로 전락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서울은 모든 면에서 스케일이 달랐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오히려 밤이 더 화려한 도시였다(서울 원주민들에겐 웃긴 이야기이겠지만). 더 큰 도시에서 산다는 게 성공이나 행복을 말하는 건 아니다. 고향 친구를 만나면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촌놈 출세했네!" 딱 그 정도일 뿐이다.
대학 입학을 앞둔 시점 IMF가 터졌다. 많은 집들이 그랬듯 우리 집도 휘청였고, 대학을 포기하고 바로 극단에 입단했다. 제대 후 더 큰 무대를 향해 서울에서 또 이민자의 삶을 시작했다. 크고 작은 무대에 오르다 이른 나이에 배우의 꿈을 접고, 칩거와 무기력에 빠져있던 나는 방송통신대에 입학 원서를 냈다. 졸업장을 받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징그러웠다.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다.
배우 다음으로 선택한 일은 광고, 전혀 새로운 영역의 일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핸디캡이 높았다. 20대 후반부터 슬그머니 찾아온 위염과 원형탈모를 모른 체하며, 이를 악물고 개척지를 일궈 갔다. 거주지는 조금씩 평지로 내려왔고, 집은 조금씩 가로로 늘어났다.
이민자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느리게만 진행되는 것 같았던 변화의 속도가 서른 번의 해가 바뀌고 나니 확연히 달라져 있는 게 보인다. 삶의 태도에도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변해야만 적응하고, 적응해야만 정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미처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게 되었고, 반대로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씩 대체되기 시작했다. 식생활부터 취향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다. 홍어를 먹지 않은지 15년도 넘었다. 그런데도 명절에 고향을 찾으면 식구들은 여전히 홍어를 권하곤 한다.
아주 가끔 다시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 서울이 아닌 뉴욕으로 갔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뉴욕에서도 지금처럼 개척지를 일구고 정착하고 있을까? 거리의 부랑자가 되었을까? 다큐의 마지막 엔딩은 뉴욕 타임스퀘어 빌딩 앞에 선 또 다른 이민자의 모습이 그려지길 바란다. 언제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껏처럼 뉴욕에서 이민자에게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장면으로 막을 내렸으면 한다.
by 동그리
[장면 1 – 1990년, 중학교 1학년 내 방]
카세트테이프가 삐걱거리며 돌아간다.
방 안에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Step by Step”이 가득 울려 퍼진다.
(클로즈업) 가사집 대신 노트에 삐뚤빼뚤 적힌 영어 단어들.
“I, my, me, mine… You, your, you, yours.”
주인공(나)은 영어책을 덮고, 음악에 맞춰 입술을 움직인다.
나레이션(나)
“단수와 복수는 헷갈렸지만, 노래 가사는 줄줄 외웠다.
그때의 나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세상의 전부였다.”
[장면 2 – 하굣길]
노을빛 골목길. 친구와 함께 걷던 주인공 앞에 중3 오빠들 무리가 나타난다.
카메라는 천천히 그들의 키, 낮은 목소리, 웃음을 따라간다.
주인공의 시선이 잠시 머문다.
다음 날, 친구가 예쁜 편지봉투를 건넨다.
“이거, 혁이 오빠가 주래.”
주인공의 손에 편지가 놓인다.
(심장이 쿵, 쿵, 쿵. 사운드가 점점 커진다.)
[장면 3 – 주인공의 방]
책상 위에 펼쳐진 러브레터.
“네가 걸어가는 모습에 반했다. 너와 사귀고 싶다.”
주인공의 볼이 빨갛게 물든다.
배경음악: “Step by Step” (잔잔하게 피아노 버전)
나레이션(나)
“태어나 처음 받은 러브레터. 그날부터 우리의 1일이 시작됐다.”
[장면 4 – 거실, 저녁]
주인공이 엄마에게 편지를 내민다.
엄마는 잠시 깜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곧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얘가, 벌써......’
얼마 후, 엄마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다 같이 놀게 해 준다.
거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카메라는 천천히 엄마의 따뜻한 미소를 잡는다.
[장면 5 – 책상 서랍]
시간이 흐르며 편지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짧은 글씨, 서로를 향한 다정한 말과 응원.
하지만, 화면은 점점 어두워지고, 조명은 은은하게 줄어든다.
나레이션(나)
“오빠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우리의 이야기는 끝났다.”
[마지막 장면] 크리스마스.
오빠가 건네는 하얀 앙고라 장갑.
카메라는 장갑을 클로즈업한다.
뽀송뽀송한 털이 바람에 흩날리고, 화면 가득 따스한 빛이 비친다.
[장면 6 – 현재, 중년의 나]
조용한 집, 거실 소파.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시 흘러나오는 “Step by Step”
눈앞에 스크린처럼 과거가 지나간다.
주인공은 펜을 들어 편지를 쓴다.
편지 나레이션(나)
“오빠, 안녕.
오빠라고 불러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33년이라니, 세월이 참 빠르지?
이제는 둘째가 우리가 만났던 그 나이가 되었더라.
우리가 어느새 그때의 부모님 나이가 되었다는 게 아직도 가끔 낯설게 느껴져.
요즘은 오빠 건강이 늘 걱정이야. 그래도 주말마다 부지런히 산에
오르며 몸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몰라.
무엇보다 내 곁에 이렇게 있어줘서 고맙고, 다행이고, 그래.
오늘 저녁은 오빠가 좋아하는 돈까스와 맥주를 준비해 둘게.
이따 보자.”
카메라는 주인공의 얼굴을 비추며 천천히 멀어진다.
음악은 다시 원곡으로 이어진다.
-THE END
by 백호
「서울의 대표적인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와 첫 친선 축구 경기에서 우리 학교가 0:2로 지고 있었는데, 제가 3골을 몰아넣어 역전했던 강렬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올가을에도 양교 친선 축구 경기가 열릴 예정이에요.」
- 인터넷 강사 신문에 실린 백호의 인터뷰 중 일부
서울 북쪽 강북구에는 대안 초·중등학교인 삼각산재미난학교, 서쪽 마포구에는 성미산학교가 있다. 도시형 대안학교를 대표하는 두 학교다.
두 학교가 교류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운동 경기. 그중에서도 모두가 함께 즐기고 응원할 수 있는 축구다.
2019년, 두 학교는 첫 친선 축구 경기를 치렀다. 재미난학교의 원정 경기, 마포로 향했다. 아이들의 경기가 주축이고, 이벤트 경기로 어른들의 시합도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다른 학교와의 대결을 계기로 더 열심히 연습했고, 어른들도 설레는 마음으로 긴장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아이들 경기가 끝나고 어른들의 차례가 되었다.
백호는 달리기가 빠르고, 순발력이 좋으며, 운동 감각이 있다. 주 사용 손은 왼손이지만, 발은 오른발이다. 왼발까지 주발이었다면 더 특별했을지 모르지만, 괜찮다. 백호의 주 포지션은 공격수. 특히 왼쪽 측면 공격수(레프트 윙어)를 좋아한다. 측면에서 빠르게 치고 들어가 전방으로 공을 연결하거나, 대각선으로 드리블해 직접 슛을 하는 플레이를 즐기기 때문이다.
경기 전, 챙겨 온 축구화로 갈아 신고 끈을 바짝 조인다. 발목을 돌려 풀고, 무릎과 허리, 어깨, 목까지 차례로 풀어준다. 다리를 짧게, 길게 뻗으며 근육을 늘린다. 준비는 끝났다.
“재미난 파이팅!”
손을 모아 외치고, 전반전이 시작됐다.
재미난과 성미산 응원석이 번갈아 함성을 외친다.
“재미난!!” “성미산!!”
성미산학교에는 ‘제라드’라는 별칭을 가진 교사가 있었다. 얼마나 축구를 좋아하면 그런 별명이 붙었을까.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백호이고, 축구는 내가 하는 것이다.
전반 초반, 우리 팀은 경직된 모습으로 밀리고 있었다. 성미산의 패스 호흡은 매끄러웠고, 몇 차례 위협적인 슈팅이 이어졌다. 다행히 골대를 살짝 벗어나거나 골키퍼의 슈퍼 세이브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분위기를 바꾸는 방아쇠, 경기의 흐름을 뒤집는 승부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전은 성미산의 기세로 흘렀다. 결국 한 골을 내주고, 곧바로 추가 실점까지 허용했다. 스코어는 0:2. 응원석에서도 아쉬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삐― 전반 종료.
하프타임,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0:2를 2:2로 만들자.’
승부사가 나설 시간이었다.
후반전이 시작됐다. 응원석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68cm, 410g의 축구공에만 집중했다. 이제 우리 팀도 호흡을 맞춰 성미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백호, 패스받아요!”
등을 지고 패스를 받아낸 나는, 성미산 수비수를 제치고 골대 방향으로 드리블했다. 반 박자 빠른 중거리 슛. 낮게 깔린 공이 골문 옆을 파고들며 골망을 흔들었다.
“골인!!!”
1:2. 첫 골이 터지자 몸이 풀렸고, 긴장감도 사라졌다.
‘이제 1골 더.’
기세가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패스를 이어가던 우리 팀은 오른쪽에서 크로스를 올렸고, 공이 땅에 닿기 전 나는 발리슛을 날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슛. 그대로 골문을 갈랐다.
2:2 동점. 응원석이 들썩였다. 하지만 나는 차분하게 두 손을 들어 인사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에게 무승부는 없었다. 성미산이 우리 진영으로 밀고 들어왔을 때, 나는 공을 빼앗았다. 순간적인 폭발력으로 폭풍 드리블, 곧장 상대 진영으로 치고 들어갔다.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 슛하는 척으로 골키퍼의 균형을 무너뜨린 뒤, 반대편 골대로 가볍게 밀어 넣었다.
삐― 골인!
온몸이 전율했다. 3:2 역전.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리며 동료들과 하이파이브, 응원석과 함께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그날을 시작으로 재미난학교와 성미산학교의 축구 더비가 열렸다. 다음 해는 재미난학교 홈에서, 코로나19 이후에는 다시 성미산학교 홈에서 이어졌다.
아직은 백호의 존재감에 성미산이 고전 중이다. 재미난학교가 전적에서 앞서 있다.
즐기지만, 승부를 모른 척할 수 없는
승부사. 백호
by 완자
-해남-
"어제까지 있던 멍멍이 못 봤어요, 아부지?"
"무슨 강아지말이냐? 거기 닭들하고 있지 않냐?"
‘이상하다. 분명 멍멍이가 꼬꼬하고 같이 있었는데...’
꼬마는 닭장 앞에 있던 멍멍이가 없어진 것에 대해 아버지는 모른다고만 일관하는 것이 못내 수상했지만 혹시나 싶어 좀 더 멀리까지 나가 멍멍이를 찾아보기로 한다.
-강남-
"한국 ‘맥더널’은 햄버거 크기가 너무 작네. 미국에서는 이거 두 배 크기는 되는데 말이야."
미국으로 이민 간 작은 아버지가 잠깐 한국에 나오셨다. 작은아버지는 꼬마를 동네에 생긴 맥도널드 햄버거 집에 데려갔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맥도날드 매장이라는 타이틀과 본격적인 미국식 햄버거집이라는 이슈로 꽤 유명세를 탔다. 햄버거집이 2층으로 되어있는 것도 여태까지 먹던 그 앞 백화점 1층에서 팔던 햄버거, 감자튀김과 전혀 달랐던 맛도 초등학생 꼬마는 낯설지만 그저 '맛있다.'라고만 느꼈다.
-서울-
이번 달도 빠듯하다. 쌀에 물을 최대한 많이 넣고 양으로 승부한다. 중요한 것은 때때마다 찾아오는 허기짐을 달래주는 것. 질을 따질 때가 아니다. 반찬은 김 한 가지. 김 한 장으로 한 끼는 거뜬하다. 구질구질하다고 느낄 틈조차 없다. 이것 또한 꿈을 향해 내닫는 과정일 뿐이니까. 오늘 익힌 동작을 복기해 본다.
"해남이, 한 줄 앞으로 와 봐."
처음에는 항상 맨 뒷줄 가장자리로 밀려나 연습이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줄 한 줄 앞으로 이동한다. 반복, 연습,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한 줄씩 앞으로 이동해 중앙까지 자리 잡았지만 왠지 모를 허무함과 무력감이 덮치곤 한다. 이런 하루하루가 모이면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도쿄-
실업률이 높은 시기에 굳이 외국인에게 비자를 내주면서까지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한 재능 또는 배짱이 필요하다. 반에서 가장 빛났던 친구가 연이어 취업에 고배를 마시는 것을 보며 애가 타기 시작한다. 졸업과 동시에 학생비자도 끝이 난다. 비자 기간이 점점 나를 옥죄어 온다. 열심히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다녀본다. 결코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시기에 귀국을 결정한다.
"조금만 더 버텨보지 그래. 취업준비 중이면 비자도 조금 연장된다던데."
갑작스러운 결정에 황당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룸메이트는 달래듯 강남에게 말했다. 강남은 고개를 내저었다. 한국에 돌아간들 취업이 되는 것도 아닌데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상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거꾸로 그녀를 설득해 본다. 마지막으로 쓸만한 가전과 가구 등을 건네고 귀국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해남의 혜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연기는 이제 신물이 났고 새롭게 공부를 해보기로 결심한다. 영어도 취미로 해보고 싶은데 어디 영어 동아리 같은 건 없나 싶어 이곳저곳 살펴본다. 역시 글로벌시대에는 영어인가. 영어동아리는 어디도 들어갈 틈이 없다. 아쉬운 대로 일본어 동아리라도 들어가 볼까 싶어 문을 두드린다.
-강남의 혜화-
귀국해 입사한 회사에서는 비교적 정해진 일본어만 사용하다 보니 점점 쉬운 단어도 잊혀 가는 것 같다.
‘어디 일본인과 하는 회화수업은 없나?’ 검색해 본다.
‘여기는 인원이 생각보다 많은데…’
극 I성향인 강남은 잠시 주춤하지만 일단 수업에는 참여해 보기로 한다. 수업 전 설명을 들어보니 1부 수업은 한국인이 문법설명을 하고, 2부 수업은 일본인의 회화수업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마침 한국인 선생님이 부족한데 기초반의 1부 수업을 맡아준다면 2부 수업 회비는 면제라는 귀에 확 꽂히는 제안을 받는다.
"해볼게요!"
-해남과 강남-
‘선생님한테 좋은 인상을 남기려면 질문을 해야지.’
손을 번쩍번쩍 들고 질문을 해대는 해남.
'아니, 저분은 왜 이렇게 질문이 많아?'
'목소리는 또 왜 이렇게 큰 거야?'
미운 듯 밉지 않고 다시 미운 그는 강남이 만난 사람 중 가장 이상한 사람이었다.
-외계-
계-문-강-목-과-속-종이 전혀 다른 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곳은 외계이다. 특징도 장단점도 취미도 취향도 모두 다르다. 해남도 강남도, 해남과 강남 사이에 나타난 여유로운 아이도. 서로 다른 줄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딱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재미나게 살고 싶다는 마음가짐이랄까.
그래서 돌고 돌아 이곳 '재미난 마을'에 오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by 진달래
북한산 아래 나지막이 들어선, 요즘은 보기 힘든 5층 짜리 아파트. 내가 사는 103동의 공동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 벚꽃나무들이 파아란 하늘과 맞닿아 줄지어 늘어서 있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며 봄기운을 느껴본다.
‘다행히 미세먼지도 나쁘지 않군. 걸을 만하겠는데’
고무줄 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한겨울 빼고 늘 쓰고 다니는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썼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자 스쿠터가 한대 지나쳤다. 자세히 보니 106동에 사는 모모의 남편 낙타가 아들 인우를 태우고 있었다.
“어디 다녀와요?”
“마트요” 낙타가 속도를 줄이며 답했다.
“모모는요?”
“집에 있어요”
그들을 지나쳐 다시 걷는다. 106동에는 헌과 찬 두 아들의 엄마 쪼코도 살고 있다. 그녀와 나는 독서모임을 같이 하고 있다. 며칠 전 까만 비닐봉지를 무겁게 들고 오는 그녀를 아파트 어귀에서 만났다.
“사과를 아주 싸게 샀어. 두어 개 줄까?”
“괜찮아~ 얼마 전에 산 게 아직 집에 좀 있어”
우린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웃사촌으로 살고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모모, 맥주를 좋아하는 쪼코, 막걸리를 좋아하는 나. 금요일 저녁 가끔씩 서로의 집에서 소소한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아파트를 나서서 골목길로 접어들면 토마토부동산 간판이 보인다. 수민엄마 토마토의 부동산 사무실. 그녀의 사무실은 마치 카페 같다. 천장의 조명도, 벽에 걸린 사진도, 길쭉한 우드테이블도, 의자도 소파도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엣지 있다. 마침 손님이 없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토마토가 반갑게 맞이한다. 따뜻한 차 한 잔 받아 들고 소파에 앉아서, 사지도 않을 거면서 괜찮은 부동산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우리의 동갑내기 딸들의 최근 정보도 나눈다. 운영이 잘되냐는 내 물음에 늘 힘들다고 하지만 개업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무실이 반짝이고 있는 걸 보면 그녀는 능력 있는 공인중개사임에 틀림없다.
토마토부동산을 나와, 아이들이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하는 편의점을 지나면 소나무 군락지인 솔밭공원이 나온다. 이 아담한 공원을 지날 때는 많은 동네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제일 자주 만나는 사람은 디노다. 내가 잘 못 보고 그냥 지나치면 언제나 디노가 먼저 “진달래~” 하고 살며시 불러준다. 디노와 풍경 부부는 나의 텃밭지기이다. 솔밭을 지나 둘레길을 30분 정도 걸으면 구청에서 운영하는 마을텃밭이 나오는데, 우리는 이 텃밭을 한 고랑씩 분양받아서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 주말 아침 나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잡초를 뽑고 있으면, 그들 부부는 항상 함께 와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일을 한다. 디노와 풍경은 언제나 그렇게 고요해 보인다.
얼마 전엔 손을 잡고 걸어가는 호수와 산 부부를 보았다. 해도 덜 진 초저녁,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많은 공원에서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그들을 보고 잘못 본 것인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았다. 그냥 지나치려다 아는 척을 하니,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를 속으로 삼키며, 눈 지그시 내려감과 가던 길을 재촉했었다.
솔밭공원을 벗어나면 단독주택과 이삼 층 정도의 빌라들 사이로 제법 큰길이 나 있다. 자동차와 사람이 같이 다녀서 조심해야 한다. 건물들의 높이가 낮아서 고개를 들면 북한산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자동차만 안 다니면 금상첨화인데 하며, 하늘도 한번 올려다보고, 담장너머로 흘러내린 능소화와 장미넝쿨도 구경하며 걷는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재미난학교 교사였던 수리가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가 더러 있다. 요가와 명상을 좋아하는 그녀는 걸을 때도 포행을 하는 듯 언제나 천천히 바른 자세로 한보한보 내딛는다. 그래서 아는 척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준다.
걷다 보니 어느새 동녘의 언니 아침이 운영하는 치킨집 앞이다. 오늘은 누가 단 두 개뿐인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나 고개를 디밀어 가게 안을 들여다본다. 아니나 다를까 미소와 호린, 동녘이 치킨을 앞에 두고 하얀 거품 가득한 생맥주 잔을 기울이고 있다. 문을 살짝 열고 인사를 하니, 한 잔 하고 가라고 야단이다. 난 얼마 전 단식을 했고 지금은 보식기간이라 술도 고기도, 떡도 빵도 먹을 수 없다고 하니, 그녀들은 왜 그런 피곤한 걸 했냐며 짓궂게 나무란다. 나는 들은 척 만 척 아주 좋으니 한번 해보라며 권하는데, 서로가 각자의 이야기만 해댄다. 그러다 한바탕 웃고 나중에 다시 보자며 고소한 치킨 냄새를 뒤로 하고 나온다.
조금만 더 걸어 올라가면 오늘 나의 목적지 재미난 카페가 나온다.
마을공유공간 재미난 카페에는 책 읽기 모임, 독서토론모임, 와인모임, 저녁밥모임도 있고, 바느질 모임, 뜨개질 모임 등 여러 가지 모임이 있다. 있다가 사라지는 모임도 있고, 또 새로운 모임이 생겨나기도 한다. 강사를 초빙해서 마을강좌를 열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이 오가며 소통하는 곳이며, 솜씨 좋은 사람들이 만든 수제품의 거래나 공동구매가 이루어지는 마을 장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쓸모가 다한 서로의 살림살이를 나눔 하며 비우고, 또 나눔 받아 채우는 곳이다.
나는 여기서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아침 8시에 아이들 같은 반 엄마들과 독서토론 모임을 한다. 오늘은 영화를 보러 왔다. 한 달에 한 번씩 용사와 칸타가 여는 ‘영마살’이라는 영화모임. 영화마을살이의 줄임말.
오늘은 김재환 감독의 다큐영화 [오지게 재밌게 나이 듦 - 칠곡 가시나들]을 볼 예정이다. 칠곡에 사는 여든이 넘은 일곱 명의 까막눈 할머니들이 글을 배워서 시를 써가는 내용이라고 한다. 칠곡이 고향인 눈꽃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다. 나도 그 옆에 조용히 앉는다.
그날 본 영화 속 칠곡 할머니들의 투박한 사투리 속에 숨겨진 여린 소녀 같은 모습과 거친 삶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시들은 잔잔한 감동으로 아직까지 내 가슴에 남아있다. 30년쯤 후 나도 우리 재미난 마을 친구들과 함께 감동 한 스푼 녹아든 영화 한 편 만들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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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마을은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삼각산재미난 학교의 학부모, 교사, 졸업생, 졸업부모들 그리고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게 살기를 원하는 그 일대에 사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공동체이다. 이 속에 들어오면 실명이 아니라 별칭을 지어서 쓴다. 별칭을 부르는 것은 과거의 나를 내려놓고 새로 시작하는 의미, 마을구성원상호 간 나이, 성별, 사회적 직위에 상관없는 평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낙타, 모모, 쪼코, 토마토, 디노, 풍경, 산, 호수, 수리, 동녘, 아침, 미소, 호린, 용사, 칸타, 눈꽃은 모두 재미난 마을에서 함께 웃고, 때론 함께 울며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나의 마을지기들이다.
by 쪼코
내가 주인공인 영화는 역사 판타지 장르입니다. 역사 영화에서 흔히 다루는 전쟁 이야기는 아니고요. 판타지이지만 마법 이야기도 아닙니다. 나는 <모든 것의 새벽> 저자가 파헤친 인류의 선사 시대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의 새벽>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이 책에서 인류의 선사 시대를 다루는데요. 상식처럼 알고 있는 여러 가지를 반증합니다. 시작은 인류의 새벽이 홉스의 말처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상태가 아니었다고요. 루소의 주장처럼 순진무구한 무지의 상태도 아니고요. 놀랍지 않나요? 나는 놀랍고 흥미로웠어요. 이 책을 읽고, 여러 사람과 마구마구 나누고 싶었지만 900쪽에 가까운 벽돌책이라 쉽지 않을 듯합니다. 책의 내용에 기반한 영화를 만든다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요?
영화는 숲 속 깊은 곳, 거대한 나무가 우뚝 선 곳에 작은 집들로 시작합니다. 버섯으로 지은 집, 나무껍질로 덮은 집, 돌과 흙을 쌓아 올린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입니다. 건축 재료는 다양하고, 단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집의 크기는 엇비슷합니다. 나는 마을의 평범한 주민 1인데,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마을 한가운데는 커다란 나무와 신전이 있는데, 신전엔 신녀뿐 아니라 몸이 불편하거나 독특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삽니다. 그들은 때때로 번뜩이는 영감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곤 해요. 유용하다기보다 신비로운 통찰이 들어 있어요. 이들이 죽으면 영원한 잠의식(장례)을 치뤄요. 화려한 물건들과 함께 땅 깊은 곳에 묻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엔 없는 의식입니다.
이곳의 하루는 규칙적이지만 자유롭습니다. 아침과 낮의 일부는 공동체를 위해 쓰고, 남은 시간은 오직 나를 위해 사용합니다. 춤추고 노래하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의 주제는 왕과 이웃, 형제자매, 이웃과의 다툼과 해결 방법, 사냥과 채집, 농사 등 다양합니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잘못은 무고죄인데요. 누구든 없는 죄를 만들다 걸리면 큰 벌을 받습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어서 어떤 벌이 적당한지 한참을 의논한 일이 있었어요.
참, 이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짓긴 짓는데 놀이에 가깝습니다. 땅에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는 강제 노동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땅을 길들여 작물을 심는 대신, 숲과 강, 계절의 변화를 읽으며 이동하고 채집합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사냥이나 채집을 못하는 신전의 사람들까지도 먹고 지내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동시간이 현대인의 1/3에 불과해요.
마을 사람들은 원할 때 어느 곳으로든 이동할 수 있고, 권력에 불복종할 수 있으며, 누구든 생산방법과 정치시스템을 구성할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마을과 마을, 부족과 부족 사이에는 환대의 네트워크가 넓게 펼쳐져 있어요. 방문객을 맞이하고, 서로의 지식을 나누며, 필요할 때 서로를 보호하고 돕습니다. 이런 네트워크망이 있으니 현재에 불복종하고 떠날 수 있겠지요.
마을과 마을, 부족과 부족이 큰 규모로 모여야 할 때가 있는데, 그 시기에는 위계를 둡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이들이 언제나 자유로운 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왕과 귀족, 군대를 구성합니다. 권력은 엄격하게 작동합니다. 하지만 왕노릇을 잘못하면 다시 소규모로 헤어질 때 무리를 구성할 수 없기 때문에 고정된 실질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기보다 왕의 역할을 하는 배우에 가까워요. 고정된 권력인 아닌 게지요.
영화는 화려하지 않지만 도발적입니다. 인류의 기원이 고정된, 하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메시지를 전해요. 선사 시대의 사피엔스가 현대의 사피엔스와 마찬가지로 고등의 사고를 통해 자신의 삶을 신중한 선택으로 채워나가는 존재였음을 그려내지요. 영화를 보면서 자유의 평등이 가져올 미래를 한계 없이 상상해 보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