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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사람의 세 가지 장점은 어떻게 되나요?

1부: 아싸, 재미난마을 이야기

by B급 사피엔스

유유자적할 유.

by 늘보


인생이 어느 정도는 이름 따라간다지만, 이 친구는 이름을 빼다 박았다. 유유자적할 유. 아이만큼은 여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을 지었건만, 여유로움을 초월하여 한세월 한량 같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그랬다. 한량 같은 어린아이라니, 그 황당함과 기막힘에 헛웃음만 나왔다.


중학생이 된 지금도 한결같이 변치 않고 한량스럽기 그지없다. 특이한 건 음식을 먹을 때는 빛의 속도로 해치운다. 엄마는 아이에게 음식을 드링킹하지 말라고 이르곤 한다. 또 어딘가를 갈 때면 한없이 느적 거리다 마지막에 후다닥 뛰쳐나가는 스타일인데, 필요한 준비물을 제대로 챙겼을 리가 없지 않겠나? 집을 떠나고 잠시 뒤 교통카드며 준비물이며 다시 챙기러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런 친구에게도 참으로 좋은 점들은 있으니, 3가지만 꼽아보자면 이렇겠다.


이 친구는 애교가 많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딸딸딸 노래를 불러서 그런지 남자아이인데도 딸아이처럼 애교가 만점이다. 외할머니도 손녀처럼 애교쟁이라 한다. 특히 약간 찔리는 일이 있을 때면 집에서 키우는 반려묘 흉내를 내며, 손을 앞으로 모으고, 까치발을 하며, 동그란 얼굴을 방긋 웃으며 들이미는데, 이럴 때면 뒤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 표정도 가지각색인데, 거울을 보며 연구하는 것인지 절묘한 타이밍에 절묘한 표정을 지으며 점수를 딴다. 엄마나 아빠를 부를 때도 이 친구만의 애칭으로 부르는데, 작명도 그렇고, 부를 때 뉘앙스도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김정은도 두려워한다는 중 2면, 귀여움과는 거리가 2만 리는 떨어져 있을 법도 한데, 아직도 애교가 줄줄 흐른다. 참 교육의 산실인 삼각산재미난학교(실제 존재하는 학교 이름이다)에서도 그러는지는 궁금하다.


또 반짝거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나를 놀라게 만든다. 진심으로 나는 이따금씩 아이에게서 천재 같은 면모를 발견하곤 한다. 일종의 임기응변인지 순간의 말빨인지, 암튼 이런 류의 아이디어가 번뜩일 때가 있다. 글도 재미있게 쓰는 편인데, 사실 글을 잘 쓴다기보다는 현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시각이 참신한 것 같다. 그림은 별로인데, 그림의 스타일은 나름대로 괜춤하다고 하면 감이 좀 오려나?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아낌없는 칭찬과 더불어 지체 없이 지갑을 열고 용돈을 쥐여준다. 아이 엄마는 이런 모습을 보며 혀를 쯧쯧 차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떤 순간에 뜻밖의 보상이 주어지는지 몸으로 읽히게 된다면, 기발하고 재밌는 아이디어들이 좀 더 자연스럽게 발현될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생일선물로 뜻깊은 선물을 찾던 중 아이 이름으로 후원금을 내고, 어려운 이웃에게 빵을 만들어 나눠주는 기부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자원봉사자분들은 몇 시간째 계속 서서 400개나 되는 빵을 만들고 포장을 하는데, 어린아이가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열심히 하는 게 기특하다고 칭찬했다.


‘이게 뭐 힘들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나는, 프로그램이 끝나고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는 와이프를 보며, 그때서야 아이가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팠다고 했다. 그래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빵을 드린다고 하니 기분도 좋고, 힘들어도 참고했다고 말했다. 이 말에 또 나는 지체 없이 지갑을 열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엄마를 닳아 그런지 주변을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같다.


그래, 한량같이 너무 유유자적해서 걱정이지만, 애교도 많고, 가끔 아이디어도 반짝이고, 주변을 도울 줄도 알면 됐지,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셔~ Yu Yu Yu Yu Yu~!






남편은 계획이 다 있구나!

by 동그리


“한이 엄마, 좋겠다. 남편이 엄청 꼼꼼하시더라. 내가 일정에 맞춰 필요한 서류나 해야 할 일을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벌써 정리 다 해서 문자로 보내셨더라고. 나도 여기서 일 잘한다고 소문났는데, 한이 아빠는 더해. 내가 따로 알려줄 게 없더라.”

큰아이 친구 엄마이자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동네 언니가 말했다.

“아, 한 달 전부터 뭔가 적고 있던데 그거였나 봐요. 어련히 알아서 잘 알려주실 텐데, 이 사람이 먼저 보냈나 봐요.”


그렇다. 남편은 미리 계획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타입이다.

손 없는 날이라 이사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우리는 여섯 군데에서 견적을 받았다. 그중 한 업체 직원이 집을 둘러보며 말했다.

“남편분이 엄청 꼼꼼하시네요. 이사 가는 곳이 층별로 사다리차를 써야 한다고 하시던데, 기본적으로 포함된 서비스까지 하나하나 확인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꼼꼼하게 따지시면 다른 업체에서는 오히려 이사 비용을 더 높게 부를 수도 있어요. 저희야 괜찮지만, 다른 곳에서는 조심하세요.”

하지만, 그 직원이 마지막으로 방문한 업체 직원이었고, 그가 제시한 금액이 가장 비쌌다.


이번 이사는 층별로 짐을 배치해야 더 수월하게 진행되는 구조였다.

남편은 며칠을 고민하며 짐을 어떻게 빼고 넣을지 계획하더니, 종이에 배치도를 그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성에 차지 않았는지 컴퓨터로 깔끔하게 다시 정리해서 만들고,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 도면을 이삿짐 직원에게 보내겠다는 남편. 나는 서둘러 말렸다.

“그러지 마, 싫어할 거야. 보지도 않을걸? 너무 꼼꼼하면 부담스러워. 나 같아도 그래. 그냥 말로 설명해. 바쁜데 누가 도면까지 들여다보겠어. 절대 보내지마.”


남편은 확인하고 기록하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밴 사람이다.

직업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다. 다행인 건, 그렇게 꼼꼼하면서도 가족들에게까지 똑같이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물론, 그렇다고 내가 순순히 따를 사람도 아니긴 하지만.


남편은 아이들 일정까지도 꼼꼼히 챙긴다. 지금은 재수 중인 첫째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스스로 일정 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곤 했다. 무조건 챙겨주는 게 아니라, “이건 이렇게 정리해 보면 어때?”하고 힌트를 주거나, “일의 순서를 정하듯 공부도 순서를 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하며 스스로 생각하게끔 이끌어주었다. (물론 야단도 함께)


둘째는 지금 ‘삼각산재미난학교’라는 대안교육기관에 다니고 있다.

보다 자유로운 교육 환경이라 남편의 꼼꼼함이 개입될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둘째는 자기 할 일을 잘 챙기는 편이다.

보고 자란 게 있어서인지, 아니면 형이 야단맞는 모습을 옆에서 본 영향인지, 눈치껏 알아서 한다.


남편의 꼼꼼함이 때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실수를 줄이고 일을 매끄럽게 만드는 데는 큰 장점이다.

사실, 나는 편하다.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꼼꼼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도 아침부터 남편은 바쁘다. 출장 준비에, 차량 주소지 이전 문제까지,

큰아이의 휴대폰엔 아빠 이름 대신 ‘철저한 마루파파’라고 저장돼 있다.

딱이다. 정말 딱!






가장 가까이에서 발견한 빛.

by 백호


갓난아기였던 아기백호가 지금은 소년이 되었다.

뒤집기를 하고 옹알이를 하고 두 발로 일어서다 넘어져 눈 주위에 멍이 들고, 욕실에서 미끄러져 머리가 찢어지고, 걷고 뛸 때는 책상에 부딪쳐 이마를 꼬매는 등, 아이가 성장하며 겪을 수 있는 일들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나는 커 가는 아기백호를 보며 꽃송이와 백호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걱정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컸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습을 닮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모습에 대해 ‘왜 저러지? 이해가 안 돼.’가 아니라 ‘나도 똑같았어. 그래서 너를 이해할 수 있어.’라고 전환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아기백호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장점에 대해서는 격려하고 칭찬하며 스스로 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기백호를 양육하는 방향이(었)다.


아기백호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성실하다. 그리고 몰입하고 연습을 많이 한다. 또 타고난 운동 감각이 뛰어나다.


아래의 글을 보면 아기백호의 장점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2020년 2월 9일

졸려서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이 들락 말락 하고 있는데, 아기백호가 나를 잠깐 보고 가는 걸 실눈을 뜨고 봤다. 아기백호는 가면서 기타를 꺼내 기타 줄을 몇 번 튕기나 싶더니 방을 나갔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아기백호는 다시 방으로 와서 살그머니 침대로 올라와 내 머리맡에 본인이 챙겨 먹는 포도맛 젤리를 살포시 두고 갔다. 함께 장 보러 가면 자주 고르는 먹을거리 두 가지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내 생각으로는 자장가로 기타를 쳐 주었다. 나는 잠이 완벽하게 들지 않았기에 이 과정을 다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아기백호 행동에 잠이 깨서 일어나 아기백호한테 기타 쳐 주고 젤리 가져다줘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안아주었다. 아기백호는 머쓱했는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꽃송이에게 이야기하니, 젤리를 아빠 준다고 가져간 거라고 알려주었다. 오늘도 생각지도 못한, 잠이 달아날 만큼 기분 좋은 순간을 만났다.


+ 난 젤리나 사탕, 비타민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 비타민 먹을 때 식구들 것도 꼭 챙겨서 준다. 난 고맙다고 인사하고 먹는 척만 하고… 다시 비타민 통에 넣어 놓는다. 가족과 나누고 친구들과도 나눌 수 있는 아기백호로 커 가길.


2023년 5월 23일

처음으로 달리기를 해 보려고 마음을 먹은 날,

산으로 달리기를 하러 간다고 하니 아기백호도 함께 뛰겠다며 따라나섰다. 집부터 뛰어갈 건데 괜찮냐고 물어보니 할 수 있다고 했다.

수많은 계단을 뛰어 올라가느라 다리 근육이 딴딴해지고 숨이 차올랐는데, 아기백호도 안 쉬고 따라왔다. 북한산 칼바위 등산로 쪽으로 조성된 둘레길과 등산로를 약 30분 동안 2km를 조금 넘게 달렸다. 아기백호도 내 옆에서 계속 뛰었다.

아기백호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이렇게 커서 달리기 친구로 함께 뛴 것이 매우 뿌듯했다. 다음에도 같이 뛸 수 있겠냐고 묻자, “뛸 수 있어.”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오늘, 곰곰이 생각해 봤다. (사실 예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기는 하다.)

일단 아기백호는 나의 어린 시절보다 훨씬 건강하고 알차다. 식습관 면에서도, 체력적인 면에서도. 그래서 참 많이 감사하다.


나도 어린 시절 많이 뛰어놀았다. 달리기도 잘했다. 하지만 난 운동감각이 뛰어난지도 몰랐고, 잘하는 지도 몰랐다. 지금은 안다. 운동을 배우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감각적으로 배우고 빠르게 배운다는 것을. 그런데 아기백호를 보니 잘한다. 달리기, 순발력, 근력, 지구력 등 운동감각이 균형 있게 발달하고 있다.


그래서 아기백호에게 표현해 잘한다. 아기백호가 잘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이야기해 주고, 조금 과장해서 칭찬을 하기도 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은 아기백호가 커 가면서 건강한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빠로서 “넌 이걸 잘하니깐 더 열심히 해.”가 아니라,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아빠로 옆에 있고 싶다. 달리기를 할 때 아기백호가 내 옆에 있어 주는 것처럼.


아기백호가 생활하는 모습, 여행에서의 모습을 담임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늘 전력 질주하는 은율.”


그렇다. 현재에 집중하며 지금 아기백호가 할 수 있는 것에 온 힘을 다한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보며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 것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배워 가고, 경험치를 쌓아 갈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 아기백호를 보내 주시고 키워 주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합니다.


2023년 12월 10일

얼마 전 아기백호는 학교에서 새 도감을 빌려 와 몇 번을 훑어봤다. 내용은 많으니까 새 세밀화와 이름, 멸종위기종 몇 급, 천연기념물 여부를 몇 번 확인하는 것을 봤다.

그러면서 “아빠, 원앙이 천연기념물이래.”

“정말? 우이천에 많이 있는데.”

나와 아기백호는 천연기념물이라면 개체 수가 많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의아했다.


며칠 전에는 생태 선생님과 중랑천으로 탐조를 갔는데, 호사비오리(멸종위기종 1급, 전 세계 1000여 마리밖에 없다고 한다)를 봤다며 자랑하며 설레는 모습이 ‘정말 무언가에 푹 빠져 좋아하는 모습’이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또 밖에 나갈 때마다 쌍안경을 들고나가는데,

“아빠, 맹금류를 본 것 같아. 높은 곳에서 빙빙 돌고 있었어.”

“아빠, 쉿~ 오색딱따구리 있어.”

“직박구리를 자세히 보니까 멋있어.”


아침에 일어나면 쌍안경을 들고 숲 쪽을 바라본다.ㅎ

그러더니 “아빠, 새 사진 찍고 싶어.”

“그래? 엄마 카메라로 찍어봐.”라고 하니, 쌍안경과 카메라까지 목에 걸고 나가 탐조를 했다.

ㅋ (목이 아프다고.ㅎ)


새 관찰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른다. 그래도 은율이는 무언가에 몰입하면 혼자서 해 나가는 모습이 참 좋다.


‘종이접기, 큐브 맞추기, 이제는 새 관찰.’

그래, 관찰하고 탐구하며 너의 새 도감을 한 번 만들어 봐도 좋을 것 같아. 이은율.


2024년 5월 25일

학교 나들이로 간 교통안전공원에서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와서 했던 말.

“아빠, 이제 두 발 자전거 탈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알았어. 아빠랑 같이 타러 가자.”


어제 여행에서 돌아왔고 오늘 오전에는 늦잠 자고 그림 그리며 놀았다. 오후에는 두 발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하니 알겠다며 자전거와 야구 글러브를 챙겨 나왔다.


은율이에게 자전거 출발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은율이 혼자서 해 보도록 난 벤치에 앉아 지켜봤다. 조금씩 나아질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격려하고 또 격려했다. 슬슬 감을 잡아가더니 자전거 타기 연습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안 돼서 스스로 두 발 자전거 타는 데 성공했다.


엄청 잘했다고 칭찬하고 안아주고, 막 웃고. 당연히 재미가 있을 테니 자전거를 계속 탔다. 그리고 요즘 새로 관심 갖고 시작한 건 캐치볼이다. 자전거 안 타는 쉬는 시간에는 캐치볼도 조금 했다. 이것도 계속하다 보면 더 잘 잡고 던질 것 같다.


나도 아빠가 자전거 타는 걸 알려줬다. 내가 느끼는 뿌듯한 마음을 아빠도 느꼈을까? 아마 그랬을 것 같다 또 처음에 생각만큼 잘 안 되었을 때 포기하거나. 짜증 내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재미난학교에서 잘 배웠나 보다.


두 발로 페달을 굴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은율이를 보며 상상을 했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가서 '한강라면'을 먹고 오는 모습을. 내가 기대하는 그림이다.


'은율아, 두 발 자전거 타는 거 재밌지? 앞으로도 조심히 안전하게 타기!! 알겠지?'


소년이 가진 장점은 이미 또렷하게 드러나 있다. 부모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은율이 스스로도 알고 소중히 간직하면 좋겠다. 그 장점을 키워 가며 더 풍성한 경험을 쌓아 갈 때, 소년이 자신만의 길을 주체적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 점과 단점들도 담담히 마주하고 채워가면서, 지금처럼 즐겁게 배우고 도전하며 자신만의 길을 단단하게 걸어가는 소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부모로서 나는 그 길 위에서 소년을 믿고 지지하고 싶다.






미점, 장소, 장처.

by 완자


베이글집에 심부름을 다녀온 아이는 우다다다 뛰어 들어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로 가뿐 숨을 내몰며 이야기한다.

"엄마, ㅎㅍㅅ에 새로운 빵이 나왔어요!"

숨 넘어갈만한 소재인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해서 나도 묻는다.

"뭐가 나왔는데?"

"올리브 치아바타!"

"오호! 다음에는 새로 나온 것 있으면 전화해. 같이 하나 사서 먹어보게."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씨익 웃더니

"그럴 줄 알고 하나 사 왔지. 이건 내 돈으로 샀어. 엄마 드릴게."


"네가 말하는 '내 돈'이라는 건 어디서 났니?"라고 묻는 것도 잊고 환호했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기특하다. 때때로 아니, 불과 오늘 아침에도 투닥거린 사이지만 가끔씩 이렇게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신비로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결코 내가 빵을 좋아해서는 아니다. 아마도.


아이의 용돈은 철저히 능력제에 기반한다. 가장 높은 금액을 뽐내는 항목은 '음식물쓰레기 버리기'이다. 무려 1회에 1천 원이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이래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항목이다. 아이가 주로 하는 집안일 항목은 아래 3가지 정도이다.


- 화장실 휴지 갈기 : 500원

- 일반쓰레기 버리기 : 300원

- 각종 심부름 (거리와 심부름 내용에 따라 차등지급) : 700원~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돈기록장에 내용을 기록하고 엄마의 사인을 받지 않는 경우에는 용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이렇게 철저하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주말이 되면 서로 휴지 갈기를 했네, 안 했네로 입씨름을 하다 보니 나온 궁여지책이랄까. 이런 룰이 존재함에도 아이는 용돈 기입장에 내용을 기록을 하지 않아 3주간 용돈을 한 푼도 못 받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주말마다 외할아버지가 주는 용돈으로 충분히 간식을 사 먹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행여 정산을 못 받을 수 있는 심부름이지만 슬쩍 부탁하면 큰 저항 없이 다녀온다. 빵집에 가서 빵을 사 오는 것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것도, 주문한 음식을 픽업하는 것도. 바람과 햇빛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치 퀘스트를 달성하듯 오프라인에서 게임하는 느낌으로 다녀오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은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외국인 4명이 길모퉁이에서 어딘가를 찾는 듯 서있었다고 한다. 지금 사는 곳은 관광지나 K-컬처가 연관된 장소는 주변에 전혀 없다. 아이는 이 사람들이 왜 이 동네에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들의 대화 중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KFC'하나였다. 그들이 있던 곳과 KFC는 크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이는 그들에게 다가가 잘 못하는 영어지만 나름의 조합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KFC? 퐐로미!"


나라면 절대로 그냥 지나쳤을 상황이다. 나에겐 영어도 낯선 사람도 모두 경계대상이다. 누군가 외국어는 기세라고 했지만 정말 기세만으로 영어를 하는 아이가 신기하기도 이상하기도 기특하기도 하다. (가끔 창피할 때도 있지만)

나랑 달라서 많이 싸우고 나랑 달라서 많이 웃게 되는 아이.

앞으로도 내 빵을 잘 부탁해!






지금 이대로 행복합니다.

by 진달래


별이네 지하실 전기를 봐주고 돌아온 남편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끄집어낸다.

캔맥주와 육포다. 별이네가 집에서 직접 만든 육포라며 본인이 더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침을 삼키며 먼저 육포를 찢어서 입에 넣은 후 오물거리며 짭조름하면서도 달큼한 그 맛을 음미하다가 맥주 한 캔을 따서 들이켰다. 캬. 맛있다.

전기기사이면서 손재주가 좋은 남편은 마을의 이 집 저 집 호출을 자주 받는다. 전기뿐 아니라 도어록, 수전, 재봉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해결하지는 못하면서 전문가에게 맡기기에는 애매한 일들이 생기면 남편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 남편도 뭔지 잘 몰라도 일단 출동을 한다. 대부분은 살짝 건드리면 해결되는 일들이 많다. 그래도 마을사람들은 고맙다며 집에 있는 이것저것들을 한가득 챙겨준다. 과일이며, 야채며, 빵, 술, 배달쿠폰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이 남자와 살면 평생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하겠지만.

우리 부부를 아는 마을 사람들은 내가 남편을 참 잘 만났다고들 한다. 나도 대놓고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인하지도 못한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내 말을 참 잘 들어주고 또 잘 따라준다.

딸아이를 부모의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공동육아어린이집과 대안학교에 나의 의지로 보냈으면서도, 위원장, 반대표, 청소 등 해야 하는 부모의 역할 대부분은 남편에게 돌아갔는데, 그 일들을 모두 투덜거리면서도 훌륭하게 잘해주었다.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두 번 이사를 했는데, 언제나 먼저 집을 알아보고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집을 계약하였다. 이사 당일 인터넷이며 가스 이전, 아파트 관리비 같은 문제를 모두 알아서 다 처리하는 덤도 있었다.


또 그는 청소를 좋아하고 집안 정리정돈을 잘한다.

남편은 아이가 초등 2학년 때 육아휴직을 6개월 썼는데,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집안이 항상 너무 깨끗해서 나는 이 남자를 계속 집에 들여 앉혀서 살림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평소에도 저녁을 먹고 나면 언제나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어 서랍에 넣는 일은 그의 몫이다. 주말이면 가구들의 위치를 옮겨놓고 그 사이사이 낀 먼지를 제거한다. 고장이 난 물건들은 스스로가 답답해서 내가 알기도 전에 먼저 해결해 둔다.

두 마리 반려묘의 캣타워와 화장실도 모두 재활용 목재를 이용해서 직접 만들어 주었고, 냥이들의 화장실 청소와 스크래처 정리, 사료와 모래 주문 등도 모두 그가 맡아서 하는 일이다.

친정엄마가 살아 계셨을 적 여든 넘은 엄마 혼자 살았던 부산의 친정집은 늘 두터운 먼지가 쌓여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나의 친정오빠들도 하지 않던 대청소를 방문할 때마다 거르지 않고 해 주었다. 깨끗해진 집안을 둘러보며 좋아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 가지 더, 그는 운전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것이다.

내가 솔로였을 적에 나는 연인들이 서로의 집에 데려다주고, 특히 어떤 모임이 끝나고 헤어질 때면 남자친구들이 나타나서 함께 가는 것이 참 부러웠다.

남편은 내가 상상 속에서 생각했던 호리호리하면서 깊고 맑은 눈을 가진 사람도,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도, 입담 좋은 달변가도 아니었지만, 딱 한 가지 내 마음을 꿰뚫은 것이 있으니, 바로 부르면 지체 없이 온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를 가야 하니 차를 좀 태워달라, 내지는 내가 어디에 있으니까 데리러 오라고 하면 단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고 언제나 기꺼이 해준다. 나라면 귀찮아서 택시를 타고 오라든지, 지하철을 이용하라든지 잔소리를 할 법 한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차키를 들고 차로 간다. 이건 아마도 타고난 천성인 듯하다.


사실 나는 연애를 할 줄 몰라서 결혼도 못할 줄 알았다. 그렇다고 나처럼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나이 찼다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그냥 막 결혼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결국 어딘가 있을 누군가를 계속 찾아 헤매며, 하지만 겉으로는 의연한 척 비혼을 얘기하며 세월을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속담이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멋짐, 근사함 뭐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꽤 있지만, 곰처럼 우직한 한 사람을 만났으니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이렇게 되뇐다.


“지금 이대로 행복합니다.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치타예찬.

by 쪼코


나의 남편은 치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 치타 말고, 타잔 옆 그 치타요. 20살 언저리. 그 시절부터 그는 그렇게 불렸습니다. 스물여덟에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을 했습니다. 친구보다는 멀고, 지인보다는 가까운 사이로 지낸 시간이 길었는데요. 내가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건 지켜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치타는 지적 호기심이 많은 친구입니다. 연애 시절, 놀이터 그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놀이터는 흙바닥이었는데 방금 온 비로 젖어 있었어요, 치타가 갑자기 손에 든 우산 끝으로 수학 문제 풀이를 하더라고요. 처음엔 당황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즐거웠습니다. 수학이 재밌다기보다 수학을 대하는 태도가 신선했습니다. 지금도 치타는 그대로입니다.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며 아이들과 토론을 벌이고, 철학책을 읽다가 질문을 던집니다. 중학생 큰아이는 종종 미간을 찡그리며 “아빠랑 얘기하면 끝이 없어!”라며 도망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도, 나도 압니다. 치타의 호기심이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넓히고, 배움의 장으로 만든다는 걸요.


치타는 상대가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하는 돌봄 선수입니다. 연애 시절, 내가 뜨개질 삼매경에 빠져있자 함께 목도리를 뜨겠다고 하더라고요. 그해 겨울 우리 둘은 카페에서, 맥주집에서 목도리를 함께 떴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목도리를 서로에게 선물했어요. 연애 기간이 짧았던 우리에게 인상 깊은 추억이에요. 그리고 그 목도리. 아직도 서랍에 보관 중입니다. 결혼 후에도 이 태도는 이어졌습니다. 치타의 돌봄력은 지금도 발휘 중입니다. 아이들의 욕구를 살피고, 그곳에서 출발하는. 육아의 정석-치타입니다.


또한 치타는 20년 동안 같은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책임감 있는 사람입니다. 힘들지 않을 리 없습니다. 직장인 치타는 언젠가부터 “젖은 낙엽론”을 자주 이야기하는데요. 바닥에 찰싹 붙어 쉽게 날아가지 않는 낙엽처럼, 버틴다는 말입니다. 농담처럼 흘려 말할 때도 있었고, 비장하게 내뱉을 때도 있어요. 그의 능력과 재주가 아까워 다른 제안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덕분입니다. 오르락내리락 감정기복이 있는 나를 진정시키며 안정적으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요. 한 번씩 “일을 그만하고 싶다”고 돌발적으로 내뱉는 내게 담담하게 대꾸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말은 짧지만, 그 안에는 치타의 책임감이 담겨 있습니다.


만난 지 30년, 함께 산 지 20년. 개구진 웃음으로 분위기를 풀고, 필요할 땐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로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 호기심으로 세상을 넓히고, 돌봄으로 마음을 채우고, 책임감으로 삶을 버티어 주는 사람. 내 옆지기 치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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