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싸, 재미난마을 이야기
by 늘보
"당신은 기도 내용이 뭐야?"
내가 성당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미사의 마지막 순서인 기도를 마치는데, 그날따라 와이프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 물었다.
"세계 평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와이프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장난치지 말고, 무슨 기도했어?" 나도 함께 웃으며 말했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했다니까" 다시 와이프가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찰싹 치며 물었다.
"장난치지 말고, 뭔데?" 진짜 궁금한 표정이었다.
"왜?" 나는 되물었다. '무슨 의도가 있나?' 아님 성당을 다닌 지 얼마 안 된 신입 미카엘이 무슨 기도를 하는지 정말 궁금했나 싶었다.
"그냥" 와이프는 별 뜻 없었다는 듯 대답했다.
"진짜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고. 헐벗고 기아에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서, 전쟁통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모두 평화롭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이 말을 들은 와이프의 표정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성당에서 마무리 기도를 한다는 것이 진짜로 믿어지지 않았나 보다.
'뭐 인생 대박 나게 해 주세요! 이럴 줄 알았나 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의 표정이라곤 일도 없는 와이프에게 계속 진짜임을 어필했다. 내가 원래 인류애에 관심이 많지 않냐는 둥,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알고 있지 않냐는 둥, 왜 군대 제대하고 무전여행 다녔을 때도 꽃동네에서 2주간 환자들 돌보며 자원봉사도 했었잖느냐는 둥, 과거 이력을 들먹이며 진정성을 어필하는 내게 와이프는 반신반의의 표정을 끝끝내 감추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때가 와이프 뱃속에 아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한참 전 이야기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냉담 중이기도 하지만, '세계 평화' 같은 거대 명제보다, 현실적으로 내가 몸으로 부대끼며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가치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숭고하고 중요한 가치들이 많고 많겠지만, 내게는 아주 소박하게도 '소수의견'이 자리 잡았다. 내게 소수의견은 문화이기도, 사람이기도, 새로운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소수의견은 말 그대로 주류가 아니므로 힘도 없고, 소외되기 일쑤이며, 반골 기질이라는 힐난을 받기도 한다.
어딘가에서 들었던 말인데, '변하려는 것과 머무르려는 것이 충돌해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는 이 문장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내게 변하려는 것은 소수의견이다. 다수의 보편적인 관습으로 형성된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는 소수의견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곧 문화 다양성은 소수의견이다.
소수의견을 조금씩 확장하다 보면 양성평등, 소외계층, 장애인, 성소수자, 다문화가정들의 모습도 보인다. 경제성 논리 또는 사회적 인식, 평판이라는 관습적 이유로 소수의견은 소외되거나 종종 부정당하기도 한다.
소수의견을 어디까지 귀담아듣고, 주류에 반영할 것인지 쉽지 않은 문제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조금 더 열린 귀로 듣기 시작하다 보면, 종국엔 모두가 바라는 세계 평화가 찾아오게 되지도 않을까? 다소 급작스러운 전개 같을 수도 있지만, 세계 평화는 모두에게 소중한 가치이기에, 여기에 기대 살짝 한발 담가 본다.
by 동그리
안녕하세요? 구청장님.
저는 올해 3월, 우이동으로 이사 왔어요.
집 주변에 산이 있고, 계곡이 흐르는 우이동이 저는 정말 좋아요.
그런데 더 반가운 일이 있었어요. 바로, 운 좋게 텃밭 분양을 받았다는 것!
산 아래 위치한 서울의 텃밭이라니, 얼마나 귀한 기회일까요?
이전 아파트 근처에도 텃밭이 있었지만, ‘누구나 텃밭’ 같은 공간은 아니었어요.
3월 말, 아이와 함께 감자와 상추를 제일 먼저 심었어요.
텃밭 농사는 처음이라 잘 자랄까 걱정도 됐지만, 감자와 상추는 무럭무럭 자랐어요.
6월 중순,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감자를 캐봤어요.
땅속에 숨어 있다 보니 잘 자라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걱정이 컸거든요.
(제가 초보 농사꾼이라서요.)
조심스럽게 호미로 흙을 파보니, 주먹만 하거나 그보다 조금 작은 감자들이 올망졸망 모습을 드러냈어요.
세상에, 감자가 이렇게 예쁠 수 있다니요!
기쁜 마음에 사진을 찍고, 지인들에게 자랑도 했어요.
주변에선 농사에 소질 있는 거 아니냐며, 내년에도 꼭 분양받아서 감자를 심어 달라는 말도 들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슬픈 소식을 들었어요. 그 텃밭 자리에 '파크 골프장'이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정말 그곳에 골프장이 필요한 걸까요? 이용할 분들이 얼마나 될지, 저는 의문이에요.
실제로 텃밭을 지나가며 등산이나 산책하시는 분들이 “이 텃밭 분양은 어떻게 받는 거예요?”하고 물으시는 경우가 경우가 많았어요.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뜻이겠죠.
우이동의 자랑, ‘누구나 텃밭’.
저는 이곳이 이사 와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이에요.
내년에 또 분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더 많은 분들이 이 소중한 공간에서 흙을 만지고, 계절을 느끼며, 텃밭의 즐거움을 누려보셨으면 좋겠어요.
텃밭을 오가는 길은 운동이 되고, 특히 어르신들께도 참 좋은 공간이 될 거예요.
이 소중한 텃밭이 사라지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 기쁨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어요.
9월까지만 텃밭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생처음 민원을 넣었다. 무슨 말을 적을까 고민하다, 처음 텃밭에서 느꼈던 감정을 적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텃밭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아쉬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이대로 사라지게 두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땅은 작은 땅 한 구석이었지만, 그곳에서 느낀 설렘과 기쁨은 너무나 컸기에 이 작은 땅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부디, 내년에도 분양받아 감자 농사를 지을 수 있기를.
by 백호
'세상을 위해서'라기까지는 거창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민주주의, 공정, 자유, 평등, 존중, 긍휼, 배려.. 공렴, 염치 등이다. 또 역사를 아는 것을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누구의 역사 관점인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생각한다.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 중 무엇이 우선일까. 가슴속에서 내 삶에 작은 파동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예전 것들을 들여다봐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불현듯 떠오른 건, 언제가 잠시 유행했던 사상 검증 테스트했던 결과 캡처본을 찾아봤더니 LFWO. '좌파, 폐미, 서민, 개방성' 영역으로 기울어져 있다. 뭐 대략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가 가슴속에서 파동을 일으킬 때 썼던 글을 찾아봤다.
2015년 10월 12일
역사_국정교과서로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나는 역사가 좋아서 한국사 능력 시험도 보고 그랬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 내 나라의 역사를 아는 것은 응당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직장 면접 과정에서 역사 관련 질문에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다. 나의 답변 요점은 이랬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국사(역사) 책에서 배우는 내용을 아는 것을 당연하다고 했다.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분은 내가 국가주의적 역사관을 가졌다며 면접장 분위기가 냉랭해졌었다.(이것으로 난 이 직장을 갈까 말까 하는 고민도 했었고)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내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역사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기술해야 하고 그것의 내용을 취합 선택하는 그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없고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써 내려간 역사',
'아래에서 위를 보며 힘겹게 써 지켜낸 역사',
'주관을 쓴 역사',
'사실을 쓴 역사',
'진실을 덮는 역사',
'진실을 밝히는 역사'를 우리가 '왜?'라는 질문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그 다양성을 존중하고 거짓이 아닌 올바른 역사를 배우고 싶다. <_국정교과서 반대합니다>
2016년 10월 25일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예매한 열차가 취소되었다. 반환하고 한 시간 늦은 열차로 다시 예매했다. 거대한 회사와 맞서 싸우고 계신 노조원들 그리고 불편함을 감당하고 지지하는 가족분들을 응원한다. <_여행 가는 날 아침 묵상>
2019년 10월 22일·
얼마 전 아파트 자치 회의 안건으로
1. 경비원 2명 감축 건
2. 지상 주차장 운영 폐쇄 건이 상정되어 입주민 투표가 진행되었다.
난 반대에 투표.(집에 나만 있었음) 투표 결과는 '반대'로 부결되었다. 입주민 대표자들이 생각하는 운영의 효율성이라는 것이 인력 감축을 첫 번째로 꼽는 그것이 불편했고 이에 따른 다른 대안도 매력적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투표용지를 못 받은 세대는 경비실에서 받으라는 방송 안내는 지독하게 냉정했고 싫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지상에 주차하지 않고 운행도 제한된다면 안전상으로 환영할 만하다. 아파트 환경도 더 쾌적해질 테고. 하지만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을 사용해야 할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기에 이 또한 마음을 내려놨다. 나는 안전에 더 신경 써야 할 테고. 투표 결과가 게시된 걸 보며 안심했고 그동안 마음 졸이셨고 힘드셨을 분들을 뵈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먼저 인사해야겠다. <_여행 가는 날 아침에>
이 글 첫머리에서 말했던 가치들이 내 삶에서 지켜지고 실현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는 '염치'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내가 염치 있게 살고 우리가 염치 있게 산다면 이 세상은 민주주의, 공정, 자유, 평등, 존중.. 공렴.. 이 살아있고 지켜지는 세상이지 않을까.
매우 부끄럽지만, 염치없게 사는 순간순간이 내게도 당연히 있고 그럴 때를 알고 부끄러워하고 싶다. 또 부끄러움으로 머뭇거리지 않고 용기 내 다시 염치를 찾아 나서기를 부단히 애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by 완자
아파트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동네 장학회의 후원 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주민센터에서 붙여 놓은 것을 보니 이상한 단체는 아닌 것 같고 한 달에 3만 원이라는 금액도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전화번호를 메모하고 담당자와 통화를 한 후 이체할 계좌번호를 받았다. 그래도 의심이 가시지는 않아 자동이체는 설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하게 시작된 후원이 10년 가까이 되어간다.
한 번은 후원 관련 서류를 우편으로 받은 적이 있다. 한 번도 오프라인 회의에 참석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후원회원명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후원자 숫자도 적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네 가게 사장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집 앞 파리바게* 사장님, 역 앞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 편의점 사장님, 동장님, 부녀회장님 등등 일반인이라고 표기할만한 사람은 정말 나 한 명뿐이었다.
아, 이래서 꼭 얼굴 좀 뵙자고 담당자분이 말하셨구나 싶었다.
종교를 물으면 가톨릭이라고 답은 하지만 열심히 성당을 다녔던 시기는 고등학교까지이다. 결혼식도 성당에서 혼인미사는 올렸지만 매주 미사를 참여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 마음의 부채에서 오는 부분과 그간 나의 행실도 딱히 칭찬받을 만하지 않다 보니 나보다 조금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자는 일종의 강박과 다소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
후원하던 단체 중 하나는 후원 아동이 성인이 되면 자동으로 후원이 종료된다고 했지만 아이가 21살이 되어도 후원이 계속되었다. 혹시나 내가 착각을 했나 싶어 단체에 전화를 해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들은 대답은 마침 후원종료연락을 드리려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영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기부나 후원을 하면서 염증에 가까운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남들에게도 선뜻 후원이나 기부에 대해 말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일을 쉬게 되니 후원단체를 살피게 된다. 여기는 좀 큰 단체니까 나 한 명 정도는 후원을 중단해도 괜찮지 않나? 싶다가도 후원을 받던 아동은 후원이 중단되면 새로운 후원자가 그 아동의 후원을 이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일 뒤로 다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동네장학회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이 있었다. 자신도 어려울 때는 후원을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후원물품을 전달하러 갔다가 마주했던 학생들의 열악한 환경이 떠올라 다시 마음을 돌렸다는 이야기였다.
모두 다 평등하게 잘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선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누고 싶은 마음조차 갖지 못할 만큼 팍팍한 삶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마음을 누그러뜨릴 여유가 생기는 순간이 함께하길 바란다. 내가 매달 내는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으로 생리대를 살 수 있고, 도시락을 먹을 수 있고, 우유라도 배달된다면, 또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양심이 뿌듯해지는 순간이 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
올해도 이번 달에 장학회 심의회가 열린다는 안내 문자가 왔다.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은 많고 금액은 정해져 있으니 학생들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이다. 앞으로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돼서 정말이지 이런 심사들이 열리지 않을 만큼 곳간도 마음도 모두 모두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by 진달래
‘이번 토요일에는 꼭 나가리라’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후, 백팩에 낡은 요가 매트를 잘라서 만든 깔개와 따뜻한 물 그리고 간식 몇 가지를 챙겨 넣고, 마지막으로 [윤석열 탄핵]이라는 문구가 적힌 야광봉을 넣었다. 오늘은 남편과 딸아이도 같이 나가기로 했다. 아랫집 쪼코네도 두 아들과 함께, 같이 가자고 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던 대통령이 지난주 구속이 취소되어 구치소를 유유히 걸어 나왔다. 구속 일수를 날로 계산하지 않고 시간으로 계산하는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초유의 계산법을 적용하여 판사는 그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검찰은 즉시항고를 포기했다. 대한민국의 법은 만인이 아니라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고 꼬집었던 고 노회찬의원의 말이 떠올랐다. 이건 만 명도 아닌 딱 한 명을 위한 법이구나. 도저히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지난 1월 공수처의 구속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관저를 요새화시켰을 때도, 왜 저자만이 법 위에 군림하며 경찰은 왜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하는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었다. 그리고 그냥 앉아서 분노만 하고 있을 수 없어 광장으로 나갔었다.
작년 12월 3일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이후, 매주 토요일이 되면 마을 커뮤니티 장터방에는 어김없이 재미난 마을 깃발의 위치를 알리는 메시지가 올라온다. 그러면 시간이 맞는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광화문행 전철을 탄다. 나도 시간이 될 때마다 참여를 했었다.
우리는 많은 집회 참가자들로 복잡할 것을 예상하여 종각역에서 미리 내려 광화문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가다 보니 한쪽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탄핵반대파들의 모습도 보였다. 답답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갈 길을 재촉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과 몇 번의 통화 끝에 재미난 마을 깃발을 찾아서 합류할 수 있었다.
아이들 대여섯 명 어른이 열 명 남짓, 아는 얼굴들이 두 줄로 나란히 앉아있었다.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우리도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변에는 연인, 친구, 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린아이들도, 어르신들도 많이 보였다. 서로 간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휴대폰 게임을 하기도 했다. 뜨개질을 하는 여성도 있었다.
대형화면을 통하여 사람들이 한 명씩 나와서 발언을 하는 모습이 나왔다. 비상계엄 이후 너무도 피곤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집회에 나오고 있다는 20대 여성 등 일반 시민들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의 대표, 국회의원, 그리고 단식을 하고 있는 윤석열탄핵 비상대책위 분들도 단상에 올라 발언을 했다. 발언 후에는 가수들의 신나는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그리고 중간중간 사회자가 구호를 선창 하면 우리도 따라 구호를 외쳤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수많은 깃발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나부끼고 있었다.
날이 저물고 앉아있기가 좀 힘들어질 때쯤 행진이 시작되었다. 응원봉을 흔들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수많은 인파가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촛불혁명에 이어 이번엔 빛의 혁명이라고 했다. K-팝에 이어 K-시위문화를 세계에 알리게 된, 응원봉으로 어둠을 밝힌 시위 행렬은 장엄 그 자체였다.
최루탄과 화염병, 짱돌이 난무하던 30여 년 전의 집회 현장을 경험했던 나는 이렇게 남녀노소가 어우러진 평화로운 집회가 가능하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느새 아빠보다 더 훌쩍 커버린 아랫집 중2 헌이가 마을 깃대를 부여잡고 흔들었다. 딸 승원이가 “윤석열을” 선창 하면 우리는 깃발을 따라 걸으며 “파면하라”를 외쳤다.
80년 5월 광주가 떠올랐고, 얼마 전 읽은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들, 피 흘리며 상처투성이가 되어 먼저 가신 그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행진을 할 수 있구나. 나는 ‘그 엄청난 희생의 대가로 누리는 이 아름다운 평화를 그렇게 어이없이 빼앗길 순 없지. 꼭 지켜내야 한다.’ 다짐하며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걸으며 목청껏 구호를 외쳤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회사 사무실에서 유튜브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귀 기울여 듣다가, 문형배 헌재소장대행이 마지막 이 주문을 읽어내렸을 때, 어찌나 기뻤던지 옆에서 같이 듣던 동료에게 하이파이브를 날렸다. 지난해 12월 3일부터 시작된 123일간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당연한 결과를 이렇게 기뻐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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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동안 김남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는 노래가 계속 입가에 맴돌았다. 참 많이 듣고 따라 부르던 노래였는데,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노랫말이 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유튜브 검색을 해서 들어보았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투쟁’, ‘동지’라는 단어들이 민주주의가 꽃 피고 생태와 상생이 화두가 된 이 시대에 낯설게 다가왔지만, 이 노래가 불리던 시절을 떠올리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노랫말처럼 서로 손 맞잡고 가면서 힘들면 끌어주고, 그래도 힘들면 쉬었다 가게 배려해 주고, 그리하여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그런 세상이길 바라본다.
by 쪼코
몇 해 전 새해 첫 영화로 이병헌 감독의 천만영화 극한직업을 보고, 겨울에 시청률 1퍼센트대였다는 멜로가 체질을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강렬했어요. 영화도 드라마도 재밌었지만, 개인이 한 해 동안 오갔을 냉온탕이 어떨까 싶었지요. 그리고 얼마 전부터 포탈에 뜨기 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 <닭강정>. 포스터 색감부터 심상치 않은데, 들여다보니 배우가 류승룡, 안재홍, 김유정. 감독이 이병헌이랍니다. 아무 후기도 찾아보지 않고, 가족들과 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웹툰 기반 드라마이고, 호불호가 갈려서 1편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던데, 나는 걸리는 거 하나 없이 데굴데굴 구르며 시청했어요.
드라마는 안재홍의 출근길에서 시작합니다. 도착한 곳은 ‘모두기계’. 류승룡, 안재홍, 김남희까지 총 3명의 직원이 있는 회사. 그들은 요란스럽게 아침 인사를 하고, 책상에 앉습니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첫 만남처럼. 그들은 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각자의 컴퓨터를 바라보고’만’ 있는데, 카메라는 한참을 그들을 비춰요. 나는 이 장면이 감독 이병헌이 샤무엘 바케트의 무대를 빌린 거라 확신합니다. 그들이 기다렸던 고도는 점심시간에 온다고 한 걸까요. 점심시간이 되자 살아나는 셋. 감독은 이 장면에서 안부를 묻던 블라디미르의 진심 어린 살뜰함, 에스트라공의 쓸쓸하고 처연한 그래서 등을 내주고 싶어지는 인간미를 없앴습니다. 이후 류승룡, 안재홍이 닭강정 김유정을 구하며 쌓아갈 연대의 서사에 양보하기 위해서였을 거라 나는 또 확신합니다.
세상을 위해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쓸쓸하고 처연한 인생이지만 우정과 환대로 살뜰하게 채울 가능성에 반짝이는 관계, 공간, 일. 이를 만들어갈 에너지가 있는 나. 판타지일 수도 있다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그것. 안재홍과 류승룡이 닭강정이 되어버린 김유정을 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그것. 지금, 여기에 머물 것인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고, 세상을 위해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