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싸, 재미난마을 이야기
by 늘보
오전 11시 즈음. 4월이나 5월. 창가를 통해 비춰오는 부드러운 질감의 햇살. 테이블에 놓인 에스프레소 한 잔. 진하게 응축된 커피를 홀짝이는 짧은 시간. 이 시간과 계절이 마련해 주는 카페의 분위기는 이때가 지나가면 또 내년을 기다려야만 한다.
오전이 주는 나른함, 얼굴을 감싸는 햇볕의 따뜻함, 창가 너머로 천천히 움직이는 듯한 길거리의 풍경들. 에스프레소 잔 위에 떠 있는 크레마는 햇살을 포개 놓은 듯 부드러운 봄기운을 듬뿍 머금고 있다. 금세 바닥이 드러나는 에스프레소 한 잔은 오랜 시간을 머물지 않고, 자리를 일어날 수 있도록 섬세함을 더한다.
얇고 가벼워진 바람은 문고리를 붙잡고 버티듯 아직 쌀쌀함을 전하지만, 이에 질세라 곧 무더 위로 환승 준비를 마친 햇볕은 따뜻하게 주위를 감싸고돈다. 그래서 봄은 스치듯 왔다 간다. 봄이 잠시만 머물 듯 카페도 스치듯 머물고 지나가야, 이 분위기를 진정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카페는 주변에 있는 작고 아담한 카페, 개성 있는 카페면 어디든 상관없다. 봄은 어디에 있든 구석구석 찾아가니까. 카페 문을 열면 딸랑이는 풍경 소리가 나고, 커피를 분쇄할 때 나는 왜왱~ 소리,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추출할 때 나는 우웅~ 소리가 뒤섞이며, 한가로운 오전의 소박한 일상을 채운다.
창이 넓어 햇볕이 쏟아지고, 테이블은 예닐곱 개 정도,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듬성듬성 보이고, 카페지기의 취향이 담긴 독특한 소품들이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는 카페. 단층이기도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2층이기도,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기도, 원두 자루가 한쪽에 쌓여있기도, 흔히 만나기 어려운 전문 서적과 낡은 책들이 꽂혀있기도, 모두 그런대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처럼 카페 공간과 한데 어우러져 재미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봄이 더해지면 동화책의 한 페이지를 살짝 열어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카페는 혼자서도 둘이서도 좋다. 셋이면 봄과 에스프레소와 햇살을 만끽하기가 조금 부산해진다. 약속 시간에 5분 정도 늦는 친구를 느긋하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창가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앉으면 저절로 봄기운이 스며들고, 봄의 정령을 가득 담은 햇살이 창가에 어른거리다 테이블에도 앉았다가 이내 에스프레소 잔에도 슬며시 발을 담근다.
에스프레소냐 드립이냐를 두고 망설일 수 있겠지만, 창가에 앉아 봄을 맞이하는 커피는 에스프레소여야만 한다. 푸릇푸릇한 새싹이 솟아나는 봄처럼, 커피의 향과 맛이 아주 작은 에스프레소 한 잔에 모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짧은 여운을 남기고 금세 사라지는 봄처럼, 에스프레소도 역시 그러하다.
몽당연필처럼 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리 닳도록 사용한 적도 없는데, 뭉툭하게 짜리 몽땅 해져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잔할 시기도 점차 짧아지고 있다. 비를 피하고, 황사를 피하고, 화창한 주말 카페 창가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즐기기도 쉽지 않아지고 있다. 오전 11시 즈음은 더욱 그렇다. 흔한 듯 흔치 않은 봄이 되고 있다.
4월에 한 번, 늦지 않은 5월에 한 번, 이렇게 두 번 카페를 찾아 에스프레소를 마셔야겠다. 창가에 앉아 완연한 봄 햇살을 맞으며, 살짝 다녀간 흔적 정도만 남기겠다. 그리고 내년에 돌아오는 봄을 기대하며, 아담한 카페를 찾아 기다리고 있겠다.
by 동그리
“무슨 소리지? 참새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아침부터 창밖이 소란스럽다. 아침 햇살을 맞이하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앞집 담벼락 위를 느긋하게 걷던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도 나도 순간 얼음.
“안녕!”
몇 초의 정적. 녀석은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도도하고 우아하게 담벼락을 뛰어내려 사라졌다.
넌 이제부터 ‘노랭이’다.
날씨가 좋다. 빨래가 잘 마를 날씨다. 이런 날엔 옥상에서 말려야 제맛이지.
1층에서 세탁한 빨래를 바구니에 담고, 한 손으로는 동동이를 안아 든다.
영차, 영차. 계단을 오른다.
처음엔 버둥거리던 녀석도 이제는 내려놓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가파른 계단이 걱정됐는데, 역시나 무서워한다. 6.7kg 동동이, 반올림해서 칠동동.
7kg 아령이라고 생각하자. 올라올 땐 오른팔, 내려갈 땐 왼팔. 번갈아 들어가며 계단을 오르내린다.
옥상에 올라오니 햇볕이 좋다. 살짝 쌀쌀한 바람도 좋다. 멀리 보이는 산도, 앞집의 소나무도 푸른 기운이 가득하다.
젖은 수건을 힘껏 털어 건조대에 널고, 기지개를 쭉 펴본다. “아이고, 시원하다.”
층마다 청소를 끝내고, 커피 한잔 내려 4층으로 올라왔다.
‘커피머신을 4층으로 옮길까? 음, 이참에 새로 하나 들일까?’
장바구니에 고이 모셔둔 나의 물욕이 팔팔 끓어오른다.
‘어? 때마침 할인 중이네? 생일 선물로 받은 돈에 쿠폰도 쓰고, 내 비상금까지 보태면? 안 살 이유가 없잖아? 내 몸의 70%는 물이 아니고, 커피라고!’
휴대폰 화면에 뜨는 메시지. “결제하시겠습니까?”
“네! 그럼요. 하고 말고요!”
집 정리를 마친 뒤,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나의 소중한 텃밭에도 들러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심었나 구경하고, 나는 무엇을 심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텃밭 교육에서 강사가 말했었다. “욕심부려 많이 심지 마세요. 간격을 넉넉히 두고 심어야 잘 자랍니다.”
‘어떻게 아셨지? 나, 많이 심을 생각이었는데.’
내친김에 솔밭공원까지 내려와 한 바퀴 돌고, 여대 앞 즉석떡볶이집에서 떡볶이 일 인분과 김밥 한 줄을 사 먹었다.
지나다니며 눈여겨봤던 꽃가게에 들러 상추 모종 열 개와 당귀 모종 한 개도 샀다.
고추 모종과 루꼴라 모종은 언제 나오는지 물어보고, 다시 또 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오르락내리락 계단집’ 앞 작은 땅에 상추 모종과 당귀 모종을 심었다.
텃밭이라 부르기엔 조금 아쉽지만, 호미로 땅을 뒤엎고 퇴비를 섞어 주었으니, 이곳도 나의 소중한 텃밭이다.
올해는 상추는 사 먹지 말라고, 내가 직접 주겠다고 지인들에게 호언장담했는데, 잘 자라겠지?
물을 듬뿍 주고, 옥상에 널어둔 빨래를 걷으러 올라갔다. 햇볕에 바짝 마른 수건이 뽀송하다.
아직은 낯선 공간. 현관문을 열면 낯선 동네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교통이 전보다 불편해지고, 동동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지만,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쌓일수록, 이곳이 점점 더 좋아진다.
by 백호
삼각산(三角山)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세 봉우리가 세 개의 뿔의 모양으로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우이령을 기준으로 도봉산까지 아우르는 북한산국립공원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삼각산 이름만 들어도 변화무쌍함이 떠오른다.
4·19 사거리처럼 가까운 곳에서 삼각산을 보면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장엄함을 뽐낸다. 파주시나 고양시처럼 멀리서 바라보면, 감히 넘볼 수 없는 천연의 철벽 요새 같다. 서북쪽에서 보면 돌산과 짙은 숲이 어우러져 거친 기운을 풍기고, 비와 안개가 드리운 삼각산은 그 자체로 신비롭고 영험하다.
재미있는 건 삼각산이 내 생활 반경 속에 있었다는 점이다.
사는 곳은 서쪽 구파발, 해 뜨는 삼각산을 매일 볼 수 있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동쪽 강북구, 이름도 삼각산재미난학교다.
자연스럽게 ‘삼각산을 넘어 출퇴근하기’라는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늘 생각했고 꼭 해보고 싶었다.
‘출근? 퇴근? 삼각산을 넘어가 보자.’
그래서 지금보다 젊었을 때 실천해 보았다.
그날은 금요일, 수업이 끝나면 바로 퇴근할 수 있는 날이었다. 산을 넘기에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등산화는 아침부터 신고 있었다. 늦가을이라 해가 빨리 지니 서둘러야 했다.
출발하려 하니 아이들이 물었다.
“백호, 어디 가?”
“저기, 삼각산 넘어 집에 가려고.”
가방을 짊어지고 호기롭게 산으로 들어섰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자주 가던 코스는 백련사–진달래능선–대동문. 하지만 오늘은 혼자였고, 빨리 넘어가야 했기에 아카데미하우스탐방지원센터–대동문–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하산하는 10.4km 코스를 정했다. (아카데미하우스 쪽은 짧지만 가파르고 험하다.)
나는 서둘렀다. 해가 지기 전에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그러다 길을 잘못 들어 등산로에서 벗어나 버렸다. 지도를 확인하니 꽤 많이 빗나가 있었다. 되돌아오느라 30분 이상 지체되었고 산속에서 어둠을 , 맞을까 긴장이 몰려왔다. 다시 뛰어오르며 대동문까지 올라가 상황을 보기로 했다.
휴, 다행히 대동문에서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는 1시간 정도. 계속 가기로 했다. 북한산성 쪽은 어두워도 갈 수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단풍 든 산속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고,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으며 무사히 하산했다.
탐방지원센터에서 집까지는 3.3km. 오늘의 목표가 ‘산을 넘어 집까지 걷는 것’이었기에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 터벅터벅 걸으며 방금 넘어온 삼각산을 돌아봤다.
“누가 산 넘어 퇴근을 하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다리는 아팠지만, 드디어 삼각산을 넘어 퇴근했다.
집에 도착해 꽃송이에게 “삼각산 넘어왔어요.”라고 말하니,
“미쳤어?”라고 하진 않았지만 어이없는 눈빛과 깊은 한숨이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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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삼각산.
혼자 백운대에서 떠오르는 해를 본 적도 있다.
은율이가 처음 백운대에 오를 때 함께했고,
학교 동료들과 겨울 백운대에 올랐으며,
아이들과 둘레길을 걸었다.
나를 품어주는 三角山을 벗 삼아 살아간다.
by 완자
대학생 때였을까?
임백천 씨가 하는 라디오에서 'Hotel California’가 나오고 있었다. 노래가 끝난 후 그가 말하길 지명을 호텔에 붙였을 뿐인데 노래 제목에 분위기가 있다며, 우리나라 지명에도 한번 붙이면 어떨까라며 그가 붙인 지명은 'Hotel Pyeongtaek’
그 임팩트가 얼마나 강했던지 30여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호텔 평택이라.
호텔 평택이든, 호텔 광명이든 (왜 모두 경기도인가...) 물론 5성급, 6성급이면 더 좋겠지만 비즈니스호텔이어도 좋다. 풀빌라, 에어비앤비 어떤 형태도 반갑다. 반듯하게 정돈된 하지만 왜 모든 모서리를 그렇게 판판하게 펴서 안으로 집어넣었는지 모를. 온 힘을 다 주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했는가 싶은 침대시트가 떠오른다.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는 것인지 배냇저고리에 쌓인 아기 시절의 편안함을 느껴라 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꽉 조여진 침대시트도 사랑한다. 어떤 호텔은 냉장고 전원을 꺼 두기도 하던데 그럴 땐 여행의 흥이 다소 깨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키를 받아 들고 문을 여는 순간 느끼는 여행의 설렘과 처음 온 곳에서 느끼는 낯섦과 엉킨 감정은 다른 공간에서는 느끼기 어렵기도 하다.
빳빳한 침대 시트 위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여러 개의 베개를 하나씩 살펴본다. 어려운 수수께끼처럼 매번 그 여러 개의 베개 중 단 한 개도 내 목높이에 딱 맞는 것은 없지만 높이든 형태든 마음에 드는 한 개를 정가운데 놓고 또 하나는 애착인형처럼 옆에 두고 나머지는 가장자리로 밀어낸다. 시킬 일은 없지만 룸서비스 메뉴도 한번 훑어본다. 메뉴와 가격대를 살펴보고 살포시 덮어둔다. 티비도 한번 틀어봐야지. 외국에 가서도 꼭 티비를 한 번씩 틀어 본다. 하나도 알지 못하는 언어로 나오는 그 나라의 방송을 유심히 본다. 역시 하나도 모르겠다며 전원을 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이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여행이며 살랑이는 감정이며 기분 좋은 긴장감을 포함한 과정이다.
조도도 한번 점검해야겠지. 이 공간에는 형광등이 주는 생활감은 없다. 자, 어떤 곳의 주황불빛을 남길 것인가. 침대 헤드에 작은 핀 라이트가 있다면 베스트. 각도 조절까지 된다면 금상첨화다. 온도와 습도는 세밀하게 조정해 보지만 항상 마음 같지 않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묘미. 내 집같이 마음에 딱 맞을 수는 없다.
아이가 다섯 살이던 어느 날. 퇴근 후 친정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는 어제 아빠랑 싸워서 아빠가 있는 집에 가는 게 싫은데 어쩌지?"
아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럼 우리 둘이 호텔 가요!"
엄마와 아빠가 싸웠다는 슬픔보다 호텔에 가는 즐거움이 월등히 컸던 아이의 감정이 비단 5살 꼬마만의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말에 귀가 살짝 팔랑거렸으니까. 그래, 이렇게 좋은 알리바이가 생겼으니 다음에 남편과 싸우면 화려하게 그리고 명분 있게 호텔나들이를 해봐야겠다.
by 진달래
새벽 5시, 딸아이는 옆에서 아직 고이 잠들어 있다. 주방으로 가서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을 한 잔 받아 마신 후, 내 방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얼마 전 마을의 글쓰기 모임에 합류해서 생활 글쓰기를 시작했다. 모임에서 올려준 소재 중 한 가지를 뽑았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려본다.
딸은 재미난학교(대안학교)에서 초등과정을 보내고, 오는 3월이면 집 근처의 공립 일반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요즘 아이는 자신에게 다가 올 중학교 생활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재미난학교의 중등과정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던 나는, 얼마 못 가서 실망할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 초치는 소리를 하곤 하지만, 딸에게는 얼마 전 등록한 수학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입학을 앞두고 책가방과 노트, 필통, 형광펜 같은 문구류를 쇼핑하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설렘 그 자체인 것 같다.
어제는 중학교 예비소집일이었다. 예비소집 안내문에는 오전 8시 45분까지 임시반 교실로 올 것과 10여 권의 교과서를 넣을 수 있는 가방을 준비할 것, 그리고 단정한 복장 및 두발을 당부하고 있었다. 몇 번을 꼼꼼하게 읽고 나서
“엄마, 단정한 복장이라는 데 뭘 입고 가야 해? 두발이 뭔가 했더니, 머리모양을 말하는 거구나, 머리 두, 모발 할 때 발....” 전날부터 시끄러웠다.
늦잠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겨울방학, 아이는 늘 8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난다. 하지만 그 전날 밤엔 꼭 7시까지 깨워달라는 말을 남기고 잠이 들더니, 아침에 “승원아, 일어나~”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서 씻으러 갔다.
방학이라 항상 내가 먼저 출근했는데, 어제 아침엔 딸이 먼저 나섰다. 머리는 단정하게 묶었고, 옷은 늘 입던 대로 맨투맨티와 청바지 위에 지난가을 당근에서 구매한 검은색 패딩을 걸쳤다. 교과서를 담을, 평소 메고 다니던 검정색 백팩을 장착한 채, “엄마~, 갔다 올게”를 외치며 늦지 않으려고 잽싸게 집을 나서는 딸을 보며, 나는 잘 다녀오라며 활짝 웃어주었다.
저녁에 퇴근해서 오니 학교에서 받아온 교과서를 주방의 둥근 식탁 위에 늘어놓고는 책 표지가 너무 예쁘다며, 특히 음악책이 제일 예쁘다며 보여주었다. 자신이 아는 대중가요도 많이 실려있다고 하며 흥얼거리기도 했다.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최대한 예쁜 글씨로 써 내려가다가, 엄마가 작성해야 할 것도 있다며 설거지하고 있는 내게 들이밀었다.
중학교 가는 것을 이렇게 기쁘게 받아들이는 아이가 2025년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싶다.
“엄마, 교실에 칠판이 세 개나 있었어. 그냥 분필 칠판 하나, 그리고 화이트보드, 또 하나는 전자 칠판, 운동장에는 잔디가 깔려 있었는데 생각보다 크지는 않더라” 평소 수다스러운 아이가 아닌데, 꽤나 많은 말을 토해냈다.
밤에 자려고 누웠더니 딸아이가 자기 방에서 같이 자자고 쪼르르 달려왔다. 6학년이 되면서부터 잠자리를 분리했는데, 틈만 나면 아직도 나 아니면 아빠와 같이 자기를 시도한다. 자기 전 혼자서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좀 하려고 했던 내가 “그냥 자”라고 하니, “엄마, 얼마 안 남았어. 사춘기 오면 이것도 끝이야. 불러줄 때 와야지” 하며 엄포를 놓는다. 그 엄포는 정말로 내게 그대로 딱 적중하여, 나는 중형 선고를 앞둔 죄인처럼 바로 딸의 방으로 소환되었다.
같이 침대에 누워, 많이 컸지만 아직은 여릿여릿한 아이를 한껏 끌어안아 본다. 엉덩이도
주물러보고, 등도 쓰다듬어보고, 머리카락도 만져본다. 딸이 소곤댄다.
“엄마, 내가 재미난 중등 안 가서 속상하지? 미안해..... 근데 나는 재미난 중등도 좋지만 일반학교도 너무 가보고 싶었어”
아이가 멋쩍은 듯 내뱉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지만, 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맞장구를 쳤다.
“아니, 네가 일반학교 가서 나도 좋아. 반모임도 안 가고, 학교 청소도 안 가고, 도서관마법사 모임도 안 가고, 얼마나 좋냐? 엄마에게 자유를 줘서 고마워~”
“힝~ 나는 엄마가 반모임에 가고, 도서관마법사 활동도 하고, 아빠가 학교청소 가고 하는
게 참 좋았는데....., 앞으로도 엄마는 마을에서 계속 재밌게 지내는 거야.”
이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언제 잠이 들어버렸을까. 휴대폰 알람소리에 부스스 일어났다.
이른 아침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나의 작은 서재와 딸아이가 고이 잠든 방이 있고, 매일 저녁 나와 남편, 딸 세 사람의 작은 소란이 일어나는 거실과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둥근 식탁을 품은 주방이 있는, 재미난 마을 속 자그마한 우리 집이 오늘 아침 한없이 편안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by 쪼코
국민학교 3학년 때인가. 자고 있는데, 마을 삼촌들이 들어와 나를 들쳐 업습니다. "형수, 텔레비젼 가지고 나갈까?" 잠결이지만 긴박한 상황은 느껴집니다. "아니, 지현이 책을 가지고 나가." 선택이었습니다. 나와 책. 마련한 지 얼마 안 되는, 무려 칼라 텔레비젼을 버리고. 책 몇 권과 사람만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마을 나즈막한 언덕 위에 할머니의 함바집. 그리로 갔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급하게 선별했을, 각자에게 가장 소중하다 여겨진 짐이 여기저기 쌓여 있습니다. 내 책도요. 밖을 내려다보니 은행 앞 큰 도로엔 보트가 다닙니다. 온 마을이 물에 잠겼습니다. ‘남한'에 큰 비가 내려 '북한'에서 쌀이며 천이며 보내줬던 '그 해'였어요. 책은 이렇게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읽는 나-는 이렇게 선택되었습니다.
책 외판원이 집집마다 다니며 전집을 팔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섯 식구가 옴닥옴닥 모여 살던 단칸방에 내 책이 절반이었죠. 책상 아래, 그렇게 책상 아래가 좋았어요. 움크리고 들어가 내 책을 다 읽고 나면 새 책을 들였다는 양장점 현이 오빠네로, 앞 집 민서네로, 주인집 회인이네로 다니며 책을 읽었습니다. 동화책, 위인전, 과학책, 역사책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우리 집 애들은 도통 안 읽는데 지현이라도 읽어 다행이네-라는 푸념을 에너지 삼아, 마을 모든 집을 도서관 삼아 자랐습니다.
읽기는 자연스럽게 쓰기로 이어졌습니다. 나의 경우는 그랬어요. 크고 작은 백일장에 참가했고, 종종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고1 작문 시간이었어요. 주어진 문장으로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제가 있었어요. 문장은 마을 외양간에 화재가 났다,였어요. 대부분 학생들이 화재에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한다는 류의 글을 썼는데, 나는 외양간의 소에 꽂혔죠. 불을 피하지 못하고 죽어갔을 소의 운명에요. 어설프지만 인간 중심적인 축산업에 대한 비판과 모든 생명이 동등하다는 내용을 썼어요.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죠. 일단 지나치게 성의 있는 분량에요. 원고지 2장 정도, 다소 형식적인 과제였는데 20장 넘게 써서 제출했거든요. 졸업 전 내 소설을 교지에 꼭 실고 싶다는 말씀으로 칭찬을 대신하셨습니다. 이후 원고 청탁은 없었어요. 재능 쪽이라기보다 성실함을 칭찬하신 건가 봐요. 그래도 난 3년 동안 이런저런 글을 구상하느라 설레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곤 잊었네요. 스무 살의 난 바빴어요. 정말 바빴어요. 불을 안고 살았어요.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 말고 다른 건 상상해 보지 않았던 나는 잊혀졌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를 보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을 받아 첫 소설을 썼다는데 나는 줄곧 쥐고 있던 계시를 시간에 가둔 모양입니다. 물론 애초에 그런 게 없었을 수도 있고요.
서른. 공교롭게 딱 서른이었어요. 난 선배들에게 얹혀 논술 책을 한 권 출판했어요. 마흔.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역사책도 한 권 썼고(출판사 사정으로 출판이 되진 못했어요). 회사 앱에 독서 교육 관련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마을 글쓰기 소모임에도 참가하고요. 그 과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에게 쓰는 재능이 없다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에게 '써야 할 것 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싶은, 나를 확인했습니다. 돌아보니, 난 세상에서 고립될 때마다 쓰기로 나를 세웠고, 소통을 시도했고, 다른 삶을 상상했더라고요. 나는 아무래도 쓰지 않는 쪽보다 ‘쓰는 나’가 좋습니다. 가만 앉아 타닥타닥 한 줄 문장을 쓰고 그 문장으로 문단을 엮어 마침내 한 장의 글을 완성하는 시간을 견디는 내가 좋습니다. 실을 꼬고 천을 짜 옷을 지은 양 내 글을 어루만지는 순간이 참말로 좋습니다.
그래서겠죠. "설령 당신이 가진 것이 '경량급' 소재고 그 양이 한정적이라고 해도 조합 방식의 매직만 깨친다면 그야말로 얼마든지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 위로와 응원이 됩니다. " "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한 세계를 "알아보는 눈"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 졌어요. 나를 관통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이 쌓여 있는 "창고"를 만들고 싶어 졌고요.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균형 있게 양립하"라는 조언과 "어떤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아무래도 세계가 부글부글 끓어서 바짝 졸아"든다는 경계를 꼭 기억하면서 말이죠.
어릴 적 나의 창고를 만들던 책상 아래, 읽는 ‘나’와 쓰는 ‘나’가 있는-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있을 약간의 재능과 성실함으로 매직을 깨치러요. 그리고 이 글은 뭐랄까. 낯간지럽지만 나만의 출사표인 셈입니다.
고마워요,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