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싸, 재미난마을 이야기
by 늘보
조각조각. 하늘에서 내려다본 메마른 갈라진 땅. 바위. 어쩌면 동굴벽화. 깨진 유리창 같기도. 이 그림은 뭔가 난해하고, 음울해 보이고, 불안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한참 동안을 응시했다. 발 디딜 틈 없는 관람객들 사이로 유독 이 그림 주변만 한산했다. 특별한 이유랄 것 없이 무심코 시선이 갔고,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한참을 보다가 그래도 계속 보게 되자 결심을 한 듯 생각했다.
‘그래 오늘은 이 그림이다. 이 그림을 만나기 위해 1시간 반을 기다린 거다!’
그림을 천천히 전체에서 일부분으로 분리해서 보기 시작했다. 시선이 잘 가지 않는 가장 아랫부분과 모서리부터. 아주 작게 언덕 같아 보이는 곡선이 보이고, 그 아래로 벌판같이 펼쳐진 휑한 땅이 보인다. 전체 그림의 ‘십 분의 이’ 정도에 해당하는 이 아랫부분이 언덕과 벌판이 맞는다면, 나머지 전체를 꽉 채운 부분은 아마도 하늘일 것이다. 그리고 벌판의 한가운데에서 홀로 구부정하게 솟아 있는 저것은 나무일 수밖에 없다. 의문스러운 건,
‘하늘이 갈라진 땅처럼 조각나 보일 수가 있나?’였다.
추리하듯 숨겨진 이야기를 더 끄집어내기 위해 계속 그림을 응시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한 채로. 몇 분 정도가 흘렀을까? 꽃봉오리가 하나 보이더니, 여기저기서 꽃봉오리처럼 보이는 것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꽃봉오리들은 저 나무에서 열린 꽃봉오리들인가? 꽃봉오리를 타고 이어진 선들을 따라가 보니 가운데 솟아 있는 나무로 모두 연결되었다.
‘아! 갈라진 땅처럼 하늘이 조각나 보이던 이유는 나뭇가지의 틈새 뒤로 하늘이 보였기 때문이구나!’
전체적인 그림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그림은 넓은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 그림이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세찬 바람에 헝클어지듯 심하게 휘청이고, 하늘에는 어두운 폭풍이 가득 몰려오고 있다. 그래서 비구름을 잔뜩 머금고 있는 것처럼, 하늘이 온통 흰색과 회색 물감으로 뒤덮여 있다. 대지를 한바탕 휩쓸고 갈 태세를 하고.
그리고 그림에서 몹시도 불안한 심리상태의 에곤 실레가 보였다. 그는 허허벌판에 홀로 선 나무, 휘청이는 앙상한 나뭇가지, 곧 덮쳐올 폭풍우 앞에서 숨을 곳 없이 고립된 인간. 외롭고 불안정한 그의 내면이 이렇게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시구절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나뭇잎 파리가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에도 꽃봉오리가 열릴 수 있나?’
꽃봉오리에 의문이 생기자, 또 다른 해석이 전개되었다. 반전이었다. 꽃봉오리는 간절한 몸부림의 상징 같았다. 참혹한 환경에서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고 싶지 않은 에곤 실레의 강렬한 의지, 아주 깊은 곳에서 삶의 끈을 부여잡고자 하는 내면의 갈망 같았다. 감탄이 나왔다. 약간 격앙된 마음으로 작품명을 확인했다. 작품의 이름은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나무(겨울나무)' 그림을 통해서 에곤 실레의 내면과 맞닿은 느낌이었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오늘 또 하나 찾았다. 나의 인생 그림.
by 동그리
남편과 나는 언젠가 집을 짓겠다는 공통된 바람을 가지고 있다.(언젠가는)
매주 화요일 밤 9시 55분, EBS에서 방송되는 ‘건축탐구-집’은 우리가 유일하게 함께 보는 프로그램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던 집은 큰 양옥집 옆에 덧붙여진 작은 집이었다.
작은 방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고, 그 앞에는 좁은 부엌이 있었다.
화장실은 집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었다.
여름이면 마당 수돗가에 빨간 다라이에 물을 받아 동생과 놀곤 했다. 마당이 제법 넓었던 것 같다.
주인집에서 키우던 토끼에게 주려고 동생과 함께 마당의 토끼풀을 뽑아 주곤 했다.
하지만 캄캄한 밤이 되면 화장실 가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 시절 유행했던 무서운 이야기,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어린 동생을 어떻게든 구슬려 함께 가려고 별별 이야기를 다 늘어놓았고, 동생이 먼저 들어가 버릴까 봐 끊임없이 말을 걸곤 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내 방과 침대가 생긴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엄마와 함께 서문시장에 침대보를 사러 갔을 때, 꽃무늬와 줄무늬 침대보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장실이 집 안에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옆집에는 나보다 한두 살 어린 남매가 살았는데, 따뜻한 날이면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서로 오가며 놀았다.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은 주택을 지으셨다.
엄마의 바람대로 주방은 넓어졌고, 모든 방도 조금씩 더 넓어졌다.
거실에는 음주가무를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소망대로 노래방 기기도 놓였다. 종종 아버지 친구분들이 놀려 오시면 노래를 부르셨다.(주택이었으니 망정이지.)
그렇게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주택에서 살았고,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주택 관리를 힘들어하셨던 엄마는 다시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다.
그리고 나는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쭉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아파트 생활이 익숙하지만, 언제나 마당 있는 집을 꿈꾼다. ‘건축탐구-집’을 볼 때마다 탄성을 지른다.
“어쩜 저렇게 집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예상치 못한 공간, 구조, 풍경을 볼 때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와! 대박! 너무 좋겠다! 너무 멋진 거 아냐! 우리도 집 짓자! 나는 주방이 넓었으면 좋겠어. 방은 각자 작게 잠만 잘 수 있게 만들고,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작업실도 만들고, 창을 삼면으로 내자. 나무들이 보이게 말이야. 마당에 솥을 걸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해. 난 곰탕을 펄펄 끓이고 싶거든. 그리고 작은 텃밭도 필요해.”
방송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끊임없는 나의 요구에 남편은 조용히 고개를 흔든다. TV를 잘 보지 않던 둘째 아이도 궁금했는지 슬쩍 다가와 함께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지난 회차까지 찾아보며 함께 요구사항을 외친다.
“아, 맞다. 나는 살구나무와 감나무는 꼭 심을 거야. 무화과나무도!”
by 백호
날씨가 무척 덥다.
더운 것을 넘어, 뜨겁다.
이런 여름에도 시원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찾아보면 쇼핑몰, 서점, 도서관, 마트, 공공시설 무더위 쉼터… 그중 나는 도서관을 택했다. 도서관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며, 각종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으니까.
요즘 도서관에서는 ‘상주 작가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활발하다. 내가 사는 곳의 청소년문화도서관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중 상주 작가와 함께 하는 ‘디어 마이 금쪽이’라는 포토에세이 수업 개설 소식을 꽃송이가 링크로 보내주었다.
나는 평소에 ‘소년의 일상, 모습, 배움, 작품 등’을 사진으로 담고, 그 안에 이야기를 더해 하나의 (책과 같은 형식으로 인쇄된) 결과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이번 수업이 그 생각을 실물로 실현할 기회가 되고 시작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도서관 홈페이지의 ‘신청하기’ 버튼을 망설임 없이 눌렀고, 정원 내에 들었다는 안내 문구가 화면에 떴다.
무사히 신청이 완료.
상주 작가와의 첫 만남.
그분은 제주에 거주하며 청소년 자녀를 둔 여행 작가였다.
첫 수업에서 작가님은 이렇게 말했다.
“사진 하나를 고르고, 그 사진의 이야기를 써 보세요. 예쁜 사진일 필요도, 꼭 인물 사진일 필요도 없습니다.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가 있으면 돼요.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이야기예요.”
그날 이후, 수업마다 ‘우리말 사용’ 미션이 주어졌고 나는 오래 전의 한 장면을 꺼내 들었다.
『어느 날, 유치원 하원을 마친 오후였다.
“은율아, 아빠 저녁 준비할 테니까 은율이는 놀고 있어.”
“응.”
은율이는 혼자서도 잘 논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나는 주방에서 무쇠솥밥과 누룽지, 그리고 은율이가 좋아하는 보쌈을 준비하고 있었다.
“은율아, 저녁 먹자.”
그 순간 보인 은율이의 모습은… 꽃잠인지, 나비잠인지.
그저 웃기고, 귀엽고,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은율아, 오늘도 너의 하루를 오롯이 최선을 다해 살았구나.’
나는 너를 위해 저녁을 정성껏 준비했지만,
그루잠 말고 꽃잠을 자렴.
내일 아침에는 개운하게 일어나길. 알겠지?』
그 장면은 내 포토에세이의 한 페이지가 되었고 그날의 공기와 온기까지도 책 속에 담겼다.
여섯 번의 수업 동안, 포토에세이에 담을 사진과 글을 작성하고, 마지막 시간에 작가님과 함께 퇴고를 거쳤다. 그리고 마침내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제목은 「라일락 한 줌, 풀빛 푸른 아이」
도서관은 출간 기념회와 전시까지 준비해 주었다.
기념회 날, 내 자리 위에 놓인 ‘이성진 작가님’이라는 명패가 놓여 있었다. 작가라는 단어가 많이 어색했지만,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배려가 고마웠다. 진짜 작가가 된 듯한 기분에 어깨가 절로 펴졌다. 낭독회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함께 수업한 분들과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첫 포토에세이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고, 도서관을 오가는 사람들이 전시된 내 사진과 글을 본다는 사실이 얼굴을 조금 달아오르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하다.
소년의 하루와 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건 분명 나의 ‘작품’이니까.
+
집에 돌아와 소년에게 포토에세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어, 풀빛 푸른 아이네.”
“누군데?”
“나지. 이은율.”
“아빠가 은율이에게 주는 선물이야.”
소년은 책을 받아 들고, 그 자리에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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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져가서 선생님 포함해서 5명 보여주면 좋겠다.”
“왜? 싫어.”
“자랑 좀 하면 좋겠는데. 그럼 은율이가 갖고 싶어라 하는 터닝메카드 갓 피닉스 사줄게.”라고 했더니 씩 웃으면서 “선생님 1명 포함해서 4명만.”
“(ㅋㅋㅋ) 알겠어.”라고 협상을 마쳤다. 그리고 오늘 아침 책가방에 넣어 갔다.
by 완자
무릇 어른이란 크고 풍성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터인데 나이만 한 살 한 살 먹어갈 뿐. 나의 마음의 각도는 예각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취향의 범위도 매우 좁아서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도 그 작가의 소설은 좋아하지만 에세이는 싫어한다던지 반대로 에세이는 좋은데 소설은 싫다던지, 작가의 초기 소설은 좋아하지만 후기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던지 설명하기도 모호한 기준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아주 순화하고 한 껏 덧칠한 표현으로는 '예민하다.'가 있다.
말하자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좋아하지 않지만 에세이는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의 '챌린지(번역본 :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라는 에세이를 보면 그가 마흔이 넘어서 스노보드에 빠져 이를 마스터해 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저씨가 되고 나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배우고, 그리고 잘하게 되는 기회가 극단적으로 줄어든다. 오히려 예전에는 할 수 있었던 것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어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오늘은 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 너무나도 기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50을 앞두고 피아노를 배우기로 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나의 친구들이 모두 빠짐없이 피아노를 배운다는 사실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째서 모두 피아노를 배우는가? 피아노로 자유곡을 한 곡씩 쳐야만 천국의 문이라도 통과하는 것인걸가?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엄마가 학원이 싫다면 이웃집에 가서 배우라면서 지정한 곳이 내가 좋아하지 않은 아주머니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이유 모두 내 아이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뒷목을 잡고 이미 바닥에 쓰러졌을 이유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창이던 스키 시즌이 끝나고 폐장날짜가 가까워오자 스키장별 폐장하는 날짜를 알아보며 아직 닫지 않은 스키장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겨울의 끝자락을 끝까지 붙잡으며 연습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며 나이에 관계없이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열정이란 참으로 귀한 감정이라며 감탄했었다. 그런 열정의 300분의 1을 끌어와 피아노 학원을 알아보았다. 나를 위한 학원이라는 곳에 등록한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런 연유로 요즘의 나는 '얼음연못'이라는 곡을 연습하고 있다. 요즘이라고 썼지만 고작 2번 레슨을 받았다. 2번의 레슨으로 퍽이나 장황한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이 양손 치기를 처음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즉, 깨달은 바가 두 배 있었다는 이야기. 수업 내내 눈이 악보를 보는 속도, 뇌가 실행되는 속도, 손이 이를 받아들여 치는 속도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심지어 세 가지 속도가 모두 느린데 이 셋의 느린 속도의 정도가 각기 다르다 보니 미칠 노릇이었다. 눈으로 악보는 보고 있으나 머릿속에 계이름은 떠오르지 않고 손가락 숫자가 쓰여 있으나 그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역시 무엇이든 어려서 배우는 것이 습득이 빠르다는 점과 늦으면 늦은 대로 무엇이든 배우려는 마음이란 소중하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연주 희망곡은 2개를 써냈다. 사실 종이에 쓰면서도 이 곡을 도대체 언제 마스터할 수 있는 것인가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해졌다. 얼음연못의 가장자리에서 이토록 허우적대고 있으니 말이다. 연습실을 문이 닳도록 다니면 그리고 집에서 빵을 먹을 시간을 대신해 연습한다면 언젠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상상해 보았다. 그땐 좀 더 각도를 넓힌 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길 바라면서 다시 꽝꽝 얼어붙은 얼음연못가로 떠나본다.
by 진달래
여유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수 있는 여유, 그리고 편안한 자세로 나의 공간에서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여유. 지난두 달 동안 샬럿브론테의 소설 [제인에어]와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제인과 지안이라는 두 명의 어린 여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으며 그 친구들에게 푹 빠져보는 호사를 누렸다.
마을의 몇몇 엄마들과 세계문학전집 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중심으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정해서 읽고, 다 읽고 나면 간단하게 단체 소통방에 감상을 남긴다. 그리고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 한 번씩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읽기는 각자의 몫이므로 기본적으로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각자의 속도로 읽어나가면 된다. 내가 읽고 있다는 것만 알리고, 읽은 후 간단한 감상을 나누는 아주 느슨하고 가벼운 모임이다.
나는 이 모임의 첫 책으로 [제인에어]를 골랐다. 이 책은 나를 고전의 세계로 이끌어준 첫 책이다.
내가 갓난아기였을 적, 우리 엄마는 한 푼 두 푼 아껴 쓰며 모은 돈을 제법 솔솔한 이자를 주겠다는 이웃의 큰손 아줌마에게 빌려주고 떼인 적이 있었다. 그분은 이곳저곳 많은 빚을 내서 쓰고는 돈을 갚지 못하여 결국은 빚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엄마는 아버지 더러 뭐라도 쓸만한 것을 집어오라며 그 집에 보냈는데, 아버지는 그 집 책장의 책을 모두 가져왔다고 했다. 그래서 어릴 적 우리 집엔 가난한 살림살이에 어울리지 않게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한 당시 부잣집에 장식용으로 꽂혀있곤 했던 양장본 전집책들이 꽤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부활, 적과 흑, 개선문, 여자의 일생,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죄와 벌 같은 책들이 기억난다. 나의 인생책 제인에어도 그 사이에 끼여 있었다. 활자중독 아버지는 집에 있는 이 책들을 평생을 두고 읽고 또 읽으셨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이었다. 일을 쉬는 날에는 늘 책을 끼고 사셨던 아버지는 그날도 책을 읽고 계셨다. 마침 [제인에어]를 읽고 있던 아버지에게 내가 무슨 책이냐고 물었고, 아버지는 고아가 된 여자아이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이야기인데 재미있으니 한번 읽어보라고 하셨다.
세로줄의 작은 글자에 책은 낡고 누렇게 바래었다. 그리고 많이 두꺼웠다. 지금까지 읽었던 소공녀, 소공자, 장발장 같은 것들과는 다른 차원의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어엿한 청소년이었으므로 얼마 후 이 책들에 도전했고, 그 첫 책은 아버지가 추천해 준 [제인에어]가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 제인에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 뭔가 내가 훌쩍 자란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고, 나도 이런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아무도 모르게 키워갔다.
이런 인연이 있었던 [제인에어]를 40여 년 잊고 지내다가 최근 두 달에 걸쳐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 음미하며 다시 읽었나갔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제인에어가 깨어남을 느꼈고, 열넷 사춘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인에어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집스럽지만 정의롭고, 남의 눈치나 보며 비굴해지지 않고,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하는 말을 솔직하게 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제인에어가 너무도 멋지게 보였다. 그래서 그녀처럼 살고 싶었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자 했던 것 같다. 나에게 비굴함이 아닌 조금의 당당함이라도 있다면, 누군가를 편견 없이 대하고자 하는 자세가 있다면,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려 하지 않는 정직함이 있다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제인에어를 닮아가고자 한 내 노력의 결실이 아닌가 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내가 제인에어와 재회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 사이에 보게 되었다. 이미 여러 지인들의 강력 추천을 받은 바 있어 아껴둔 소중한 선물을 꺼내 보듯이 펼쳐보았다.
드라마 속 이지안을 보며, 소설 속의 제인에어가 여러 번 오버랩되었다. 19세기 영국과 21세기 한국이라는 200년을 뛰어넘는 시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둘 사이에는 묘하게 연결되는 끈이 있었다.
삼만 년을 산 것같이 인생이 지겨운 스물한 살 지안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자신만큼이나 삶이 지겨워 보이는 직장 상사 박동훈 부장의 적나라한 생활을 담은 소리들. 목소리, 숨소리, 발자국 소리, 자동차 소리......
그 소리들은 열여덟의 외로운 고아 소녀 제인에게 사랑의 충만함을 채워주는 손필드 대저택의 주인이자 그녀의 고용주였던 로체스터씨의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과 결은 다르지만 어딘가 닮아있었다. 그건 바로 그 소리들이 외롭고 막막한 삶을 버텨내고 있는 내 어린 친구들에게 위로가 되는 소리, 황량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소리, 희망과 기다림을 만드는 소리였기 때문이리라.
악덕대부업자 광일은 동훈과 몸싸움을 하며
“우리 아버지, 그년이 죽였다고!”
악을 썼다. 순간 정적.
이어폰으로 이 상황을 듣던 지안은 이제 끝이구나... 절망한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동훈의 외침.
“나 같아도 죽여, 내 식구 패는 새끼들은.... 다 죽여-!”
순간 지안은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며 통곡한다.
이 드라마 또한 놓친 대사는 다시 돌려보기 하면서 아주 천천히 보았다. 너무도 인간적인 동훈에게 풍덩 빠지고, 지쳐있는 지안의 상처와 치유에 한 몸이 되었다. 정희의 실연에 함께 울고, 유라와 기훈의 좌절과 도전을 유쾌하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한 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후계동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의 모습에서 푸근한 정이 솟아났다. 이렇게 인생책에 이어 나의 인생 드라마가 탄생하였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고아 소녀가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삶을 이끌어낸 제인에어를 지금까지 품고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지안의 아저씨 동훈처럼, 동훈의 어린 친구 지안처럼 헛헛해하는 누군가에게 주먹 살짝 들어 “파이팅!”하며 힘을 주고,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냐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라고 위로를 건네며 그렇게 마을 속에서 느슨하게 살아가고 싶다.
드라마가 끝난 후 대본집을 빌려다 보았다. 드라마를 다시 보는 듯했다. 조만간 이 드라마를 한번 더 볼 생각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by 쪼코
흑백 요리사를 흥미롭게 시청했습니다. 최종회까지 야무지게 챙겨 봤어요. 모든 미션이 재미있었지만, 그중 패자부활전-편의점 편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나폴리 맛피아, 아니 권성준 셰프는 시종일관 당당함으로 배틀 식 인터뷰를 했는데, 딱 요즘 청년, 넷플릭스 인재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음식맛을 보지 못해 그런가 초반엔 난 그의 당당한 ‘말'이 좀 헛헛했어요. 편의점 미션 때도 편의점을 잘 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엔 전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재료 선택부터요. 많은 요리사가 라면을 선택했는데, 그는 연세우유생크림빵과 맛밤을 담더라고요. 와우. 한때 연세우유생크림빵은 품절대란으로 구하기 힘들었잖아요. 유명 빵집에 버금가는 생크림이라고 소문이 돌아서요. 맛밤이야 말해 뭐해요. 밤 100퍼센트!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고급진 재료이지 싶어요. 드디어 완성된 디저트, 밤 티라미슈. 편의점 재료로 밤 티라미슈라. 감탄을 했고만요. 냉장고 앞에 철퍼덕 앉아 초코바를 먹던 그의 모습에 내가 괜히 뿌듯했어요.
편의점 미션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또 있습니다. 조은주 셰프. 내게 편의점 미션의 한 축은 그녀였어요. 난 그녀가 있었기에 편의점 미션 서사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편의점을 뛰어다니며 발사믹 식초를 찾더라고요. 우왕좌왕. 웃음이 터졌어요. ‘우리 세대’라는 삘이 강력하게 왔거든요. 아니나 달라 편의점에 가지 않는다는 인터뷰. 직전 미션에서 좋게 말하면 부드러운, 나쁘게 말하자면 우유부단한 리더십 때문에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는데 순간 다 풀어졌어요.
반갑다, 친구야~
‘우리 세대’에게 편의점은 낯선 가게에요. 예전엔 요즘 편의점 자리에 구멍가게가 있었어요. 어느 동네에 가든 ‘미니 슈퍼 마켓’이라는 모순적 간판을 종종 볼 수 있었지요. 구멍가게 사장님은 옆 집 할머니 거나 앞 집 아저씨 거나 했어요. 직접적인 왕래는 없더라도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였고요. 반면 편의점은 번화가나 동네 큰 길가에 가야 있었고, 비쌌죠. 편의점 직원은 NPC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랬어요.
‘제가 사실은 편의점에 가지 않아요.'라는 조은주 셰프의 말이 훨훨 날아 구멍가게의 추억으로, 다시 날아 책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에 닿습니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은 사라져 가는 구멍가게의 이야기와 그림을 남긴 책이에요. 작가 이미경은 20년 동안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 돌아다니며 그렸습니다. 이 책은 작업 20년을 기념하여 그동안 그린 수백 개의 구멍가게 작품 중 80여 점을 엄선해 엮었어요.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펜화와 어울어진 책. 현재이면서 과거인 시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묘한 책이었습니다. 미니슈퍼마켓같은?
그래요. 우리 세대는 편의점이 아닌 구멍가게가 있는 골목에서 자랐어요. 성인이 된 후에도 우다다다 생긴 편의점이 낯설었어요. 아주 급할 때 말고는 잘 가지 않다가 발길을 튼 건 수입맥주 할인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큰 역할을 했죠. 아, 편의점에 사람이 있구나. 20대 취준생 알바 이야기, 50대 생계형 알바 이야기, 참참참(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 세트, 옥수수차. 덕분에 NPC같았던 편의점 직원에게 마음 담은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도 나폴리 맛피아 세대 청년들처럼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요. 그래도 집 앞 편의점 사장님이 얼굴을 알아보실 정도는 가요. 짧은 대화도 나누는데 우리 집 아이들이 편의점을 구멍가게처럼 드나들고 있다는 것도 사장님 덕분에 알았어요.
조은주 셰프에게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과 <불편한 편의점>을 권하고 싶어요. 구멍가게와 편의점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경연으로 고단했던 마음을 힐링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편의점 친밀도 높이기는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