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싸, 재미난마을 이야기
by 늘보
나는 생일이 4개였다. 양력과 음력, 신분증 생일과 실제 생일. 이런 연유로 실제 생일을 기억하는 지인들은 거의 없었고, 드문드문 아무런 날도 아닌데, 영문모를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어떤 날은 깜짝 준비된 생일 파티에서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생일인 척 연기를 했던 적도 있었다. 근 반백년을 살아오면서 이런 불편함을 제거하려, 작년부터 헷갈리던 생일을 통폐합했다. 실제 생일을 신분증 생일로 음력은 양력으로! 이런 깔끔한 정리로 내 생일은 2달 정도가 빨라졌다. 어차피 일 년에 한 번 태어난 날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게 중요하지, 그 날짜가 언제든 어떠하리.
2회째 맞이하는 신규(?) 생일은 아직도 낯설다. 날짜가 근처에 임박했어도 가족이 먼저 말해주지 않으면, 생일이란 자각이 없다. 신규 생일날 무엇을 먹으려 어디를 갈까 와이프가 제안했다. 내 생일날 가족끼리 좋은(비싼) 곳을 가보지 못한 게 마음이 쓰였는지 의외로, 갑자기 웬 비싼 곳을 제안했다(내 생일날만 유독 우리 세 식구가 좋은 곳을 안 갔을 뿐, 평소 처가 식구랑 좋은 곳을 자주 가는 편이다. 참고로 엥겔지수도 높은 편).
흐음. 나름 비용 효용성을 따지며, ‘이 돈이면..??’ 계산하기를 시작. 아이는 회는 좋아하지만 해산물을 싫어하고, 와이프는 해산물은 좋아하지만 회를 싫어하고(기구한 가족의 입맛), 아무리 내 생일이라지만 1인당 100달러를 내고 가기엔 가성비가 너무 안 나온다. 그렇게 만족할 만한 아이템을 물색하던 중 모두가 만족할 만한 아이템이 있었으니, 바로 햄버거였다! 와이프는 생일날 무슨 버거킹이냐고 힐난에 눈빛을, 아이 역시 그래도 생일인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며 엄마와 공조했다.
“왜? 재밌잖아. 그리고 토핑 왕창 추가해서 내건 2만 원짜리 만들어 먹을 건데? 단품으로!”
그러면서 햄버거 왕인 버거킹을 생일에 먹는 게, 의미도 얼마나 좋냐며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아이도 내심 생파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사이드 메뉴도 맘껏 시켜 먹자던 말이 기대감을 한층 높였나 보다. 역시 아이들에게는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가 최고다. 싱글벙글 웃으며, 키오스크에 서서 아이가 먼저 주문했다.
“맘대로 추가해도 돼?”
한 번 더 엄빠를 번갈아보며 물었고, 고개를 끄덕이자, 빛의 속도로 모든 토핑 추가. 다음은 내 차례다. 나는 아이와 격이 다르게 모든 토핑을 두!번!씩! 추가했다. 그래도 2만 원을 못 넘기자 베이컨을 하나 더 추가해, 19,800원짜리 거대 버거킹 단품 햄버거를 완성했다. 와이프도 메뉴를 고르고, 콘 샐러드, 너겟, 어니언링, 치킨, 새우튀김까지 거침없이 골라 담았다.
이윽고 주문한 음식이 2개의 트레이에 나눠 담기고, 거대한 두께의 햄버거를 한입 왕창 베어 물며, 아이는 아주 신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 햄버거는 더 했다. 아주 웅장했다. 내 큰 입으로도 한입에 다 베어 물기 힘든 두께였으니!(초코파이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난 입이 큰 편이다)
'아~ 햄버거에서 고기 맛이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패티가 3장이 들어간 육즙이 느껴지는 햄버거의 이 맛! 치즈도 3장 들어간 꾸덕꾸덕한 풍미의 이 맛! 베이컨은 4장 들어간 환상적인 짭조름한 이 맛! 부른 배를 움켜쥐고 사이드 메뉴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버거킹 3인 식사 비용으로 7만 5백 원이 나왔다. 이른바 버거킹 생파 플렉스! 아낌없이 만족한 신규 2회째 생파였다.
Ps: #내돈내산 #버거킹ppI아님 (근데 이 정도면 버거킹에서 쿠폰 좀 안 주려나?)
by 동그리
‘베이지? 카키? 블랙? 카키색이 무난할 것 같은데? 음, 그래. 카키색이 예쁘네. 블랙도 괜찮은데? 햇볕을 가리려면 블랙이 나을지도...... 아니면 더워 보이려나? 그냥 밀짚모자로 할까? 갬성에는 그게 더 어울리는데. 아, 뭘로 하지!’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자. 호미도 담고, 아, 맞다! 팻말도 세워야지. ‘이 고랑은 내 고랑이다!’를 알릴 팻말도 추가! 씨를 뿌려 키울까, 아니면 모종을 사서 심을까? 고민되네. 안 되겠다. 텃밭 책도 한 권 사야겠다.
신중하게 고른 가볍고 방수까지 되는 넓은 챙의 카키색 모자, 소중한 모종을 심기 위한 호미, 텃밭 주인의 자부심을 담은 팻말, 그리고 초보자도 따라 하면 성공하는 텃밭 매뉴얼 책까지.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3월 22일부터 텃밭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신난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내 생일이다.
나는 흙 내음을 좋아한다.
비 온 뒤 촉촉한 공기 속에 퍼지는 흙냄새,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이 좋다.
손으로 움켜쥐면 서늘하다가, 힘을 주면 단단히 뭉쳐지며 촉촉한 감각이 전해진다.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 가면, 엄마를 따라 고추밭에 나갔다. 집에 가져갈 고추를 따고, 깻잎을 따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었다.
줄기에서 깻잎이 톡톡 떨어질 때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촉이 좋았고, 퍼져오는 고소한 향이 좋았다.
가을이면 고추밭 옆 커다란 호두나무 아래에서 떨어진 호두를 줍곤 했다. 하나라도 놓칠까 꼼꼼히 살피다 우연히 발견한 호두를 손에 꼭 쥐고 돌아왔다. 집 뒤에는 커다란 밤나무도 한 그루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밤보다 맛있는 밤은 먹어본 적이 없다.
어느 늦가을, 외할머니 댁에 갔을 때였다. 떨어진 밤을 친척들이 모두 주워가고 남은 게 없었다. 실망하는 내게 외할머니는 창고에서 낡은 망을 꺼내셨다.
‘집에 갈 때 가져가라’며 몰래 숨겨두셨던 밤 한 망.
내 텃밭 로망은 어릴 적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베란다에서 종종 상추를 심었는데, 아이들에게 물을 주게 하고, 먹을 때면 꼭 직접 따오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나의 텃밭.
오른쪽부터 상추, 로메인, 치커리, 루꼴라를 심고 가장자리에는 고추를 심을 예정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겠지. 식사 때마다 가족들과의 이야기도 풍성해질 테고, 건강도 챙기고, 생활비도 절약하고, 버킷리스트도 이루고.
이 정도면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사조다.
+텃밭 분양 성공에 지대한 공을 세운 ‘완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루꼴라와 고구마, 잊지 않을게. 고마워.”
by 백호
꽃송이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오락실 '펌프' 위에서 좀 뛰었다 하던데 내가 직접 본 적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백호는 소싯적에 학교가 파하고 오락실 가는 것보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스타크래프트 열풍이었던 20대 때에도 PC방 대신 농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지금도 스마트폰에는 게임 앱 하나 없다.
부모가 게임을 소 닭 보듯 하니 소년도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저만치 떨어져 있다. 가끔 친구 집에 놀러 가서 게임을 접하고 오면 부러운 듯 게임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소년이 말한다.
“나도 스마트폰 있으면 좋겠다. 엄마, 스마트폰 언제 사줄 거야?”
“(말이 안 되지만) 20살 되면 사줄게. 동희형(사촌)도 중3인데 없잖아.”
“음…. 빨리 20살 되면 좋겠다.”
꽃송이의 대답을 듣고 나면 부아가 치밀만도 한데 소년은 생떼를 부리거나 투덜투덜 대지 않는다.
며칠 전 수영하러 난나에 가서 소년이 툭 던진다.
“아빠, 나도 난나 숲 가고 싶어. 해담이도 가.”(난나 숲은 청소년 전용 공간이다)
“그래? 은율이도 게임하고 싶어?”
“응.”
‘부모가 게임을 하지 않으니깐 아이도 게임을 할 기회가 없네. 아이는 부모와 별개의 존재인데 게임을 하고 싶은 건 호기심이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거겠지?’라고 평소에 가지고 있던 내 생각을 소년이 꺼내어 주었다.
“은율아, 아빠랑 오락실 가자. 서울에 옛날 오락실이 있다고 하는 걸 인터넷에서 본 거 같아. 아빠가 찾아볼게. 학교 안 가는 토요일에 아빠랑 가자.”
“정말? 응. 좋아.”
소년이 수영하러 들어가자마자 스마트폰 검색창에 '서울 옛날 오락실'을 쓰고 돋보기 모양을 눌렀다. 「옛날 오락실. 그 시절 100원으로 오락을 할 수 있는 곳. 청량 오락실」
'우와. 100원이라니. 여기다. 여기 가야겠다.'
수영 끝나고 나온 소년에게 자랑스럽게 "은율아, 아빠가 오락실 찾았어. 지하철 타고 가면 되고 한 게임에 100원이래. 이번 주 토요일에 가자."
짜잔. 오락실 가는 토요일.
소년도 자기 용돈을 챙기고 나도 현금을 준비해서 지하철을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500m 정도 걷는 동안 소년의 발걸음은 기대와 설렘 그 자체였다. '콤퓨타 게임장, 지능계발'이라는 어색한 외래어 표기법과 복고 감성의 단어 조합이 우리를 반겼고 빼곡한 백열전구 불빛으로 치장한 '청량 오락실'로 걸어 들어갔다.
포장마차 빨간색, 파란색 _____의자와 짝을 맞춘 추억의 거대한 오락기들.
'1943, 라이덴, 철권, 스트리트 파이터, 테트리스, 스노우맨, 보글보글…. 그리고 펌프'
1000원짜리 5장만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동전을 교환했다. 그저 목표였을 뿐이다.
소년이 하고 싶은 건 비행기 게임.
'1943'를 2인용으로 시작. 게임을 안 해 봤으니 조이스틱 조작이나 버튼을 끊기지 않게 눌러야 하는 기술이 있을 리 만무했다. 1라운드가 끝나기 전에 비행기 3대는 공중에서 상대의 공격에 무참히 폭발했다. 소년의 당황한 표정에 웃음이 났지만 애써 안으로 삼키며 처음 해보는 그것 치고는 잘했다고 칭찬했다. 많이 해보면 실력은 는다며 우쭈쭈도 빼먹지 않았다. '라이덴'도 '1942'와 별반 다르지 않아 상대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100원짜리는 계속 오락기 뱃속에 들어갔다. 그래도 '보글보글'은 8라운드까지 도달했으니, 효능감도 있었고 효율도 높았다고 위안을 삼고 싶었다.(보글보글에 집중해야 했나?ㅋ)
주머니 속 동전 소리가 나지 않을 때 비로소 게임은 끝이 났다.
"은율아, 재밌었어? 아빠는 은율이랑 오니깐 좋더라고. 또 은율이랑 같이 게임을 하니깐 더 재밌었어. 고마워."
"응. 재밌었어. 또 오고 싶어."
"그래. 또 오자. 1년에 몇 번 올까?"
"2번."
"2번? 두 번은 너무 적지 않아? 4번은 와야 하지 않을까?"
"4번? 좋아 좋아."
내심 '한 달에 한 번은 와야 눈곱만큼이나마 실력이 늘지 않을까.' 했는데 소년은 일 년에 두 번만 와도 게임 실력이 늘 거로 생각했나 보다. 풋. 무슨 자신감인지.
어릴 적에는 500원어치 게임만 해도 많이 쓴 거 같았는데 소년과 5,000원어치를 넘길 만큼 게임을 했지만, 소비를 과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음에 아빠랑 5,000원어치 오락을 하고 편의점에서 튀김우동까지 먹으면 소년의 효능감은 더 커져 있지 않을까.
+ 글 속 아들을 '소년'이라는 애칭으로 불러 보았다.
++ 아쉽게도 (현재는) 200원으로 가격인상이 되었다.
by 완자
"너무 외로워서 잠이 안 와요."
매일 밤 들어가서 자라고 하면 어김없이 아이가 날리는 멘트이다. 아이는 올해 중2가 됐다.
"모두 외롭단다. 어서 좀 들어가서 잘래?"
"진짜로 잠이 하나도 안 와요. 누가 등 좀 긁어주면 좋겠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친정 신세를 졌다. 중학생인 지금도 신세는 진행형이다. 할머니는 손주가 어찌나 귀여운지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셨음에도 당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아이를 안고 업고를 반복하셨다. 짱구머리를 만든다고 시간을 재시면서 아이를 오른쪽으로 눕혔다가 왼쪽으로 눕혔다가를 반복하셨다. 덕분에 아이는 톡 튀어나온 이마와 완만한 럭비공 같은 예쁜 뒤통수를 갖게 되었다. 할머니는 아이가 잠들 때까지 옆에 같이 누워 등을 살살 긁어주셨다. 때문인지 아이는 혼자 잘 때가 되면 등을 긁어달라고 조르곤 한다.
아이가 커가면서 옆에서 자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아직 혼자 자고 싶지 않은 중2소년은 틈만 나면 온갖 이유를 붙여 엄마 아니면 아쉬운 대로 아빠라도 같이 자고 싶다는 어필을 한다. 아이 옆에서 등을 긁어주다 보면 내가 먼저 잠이 들다 보니 결국 혼자 재우는 일이 많다. 아이가 방에 들어가면 최대한 빨리 잠들게 하기 위해 새까만 어둠으로 밀어 넣듯 온 집 안 형광등을 다 끄고 작은 스탠드조명 한 개만 켜둔다. 라디오 볼륨도 최대한 작게. 그래도 당분간은 아이 방에서 중얼중얼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모른 척하는 것이 일상이다.
요즘은 나를 덮친 정체 모를 근육통과 예민함이 어우러져 푹 잠을 자기 어렵다. 그러던 와중에 잠옷바지에 구멍이 났다. 이 옷을 입고 축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생활하면 이렇게 큰 구멍이 날까 싶을 정도로 한쪽 무릎에 큰 구멍이 났다. 구멍 난 잠옷을 보는 내 마음에도 휑한 바람이 불어왔다. (갱년기인가?) 그때부터 시작된 새로운 잠옷 찾기는 나를 빠져나갈 수 없는 알고리즘의 늪으로 집어넣었다. 핸드폰화면을 열면 온갖 다른 잠옷들이 나타났다. 처음부터 승산이 전혀 없는 싸움이긴 했지만 수일간 저항 후 결국 세로 스트라이프무늬에 기하학적 무늬가 더해진 거기다 중간중간 사슴이 그려진 잠옷을 구매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대를 누가 하고 자냐고 했던 내가 굳이 옵션버튼을 한번 더 눌러 안대도 함께 구입했다. 사람은 극한의 지점에 다다르면 불가능 또는 반대의 영역에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모두 태연히 입장을 바꾼 채 내 바로 옆에 찰싹 달라붙는다. 사슴 무늬 잠옷에 안대라니 1년 전 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순간이다.
며칠 후 드디어 잠옷을 손에 넣었다. 보들보들하면서 차르르한 텐셀소재의 잠옷은 연일 바람이 불어대는 나의 마음까지 포근히 감싸주었다. 택배상자를 뜯고 잠옷을 입어보는 나를 보며 아이가 슬쩍 다가와 안대를 만지작거리며 한번 써봐도 되는지 묻는다. 아이는 안대가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같이 잘 수는 없지만 안대 정도는 양보할 수 있지. 안대는 네가 쓰라며 큰 인심 쓰는 척 아이에게 건넨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안대를 하고 나서는 외로움을 찾을 새도 없이 빨리 잠에 든다. 외롭다는 단어 뒤에는 아직은 혼자라는 허전함과 무서움 다소의 불안이 같이 하는 것이리라. 오늘도 커다란 고래상어인형을 안고 안대를 깊이 눌러쓰고 쿨쿨 자는 아이 얼굴을 보며 내 마음의 바람도 조금씩 잦아든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새들도 아가양도 그리고 안대의 사슴들도 다들 네 옆에서 잘 자고 있을 테니.
by 진달래
생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예닐곱 살 이후부터 딸아이는 일 년 중 제 생일이 최고의 날이 되었다. 7월이 생일인데 3월 즈음부터 생일 선물로 무엇을 해줄 것이냐고 연신 물어본다. 몇 해 전부터는 아예 무엇을 해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생일이 지나고 나면 내년 생일에는 또 무슨 선물을 받을지 그 생각으로 한참이나 즐거운 상상에 빠지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켕기는 일이 떠오른다.
나는 마흔둘이라는 늦은 나이에 딸아이를 낳고 너무 기쁘고 좋아서,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해마다 아이의 생일이 되면 좋은 곳에 얼마라도 기부를 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었다. 첫돌을 맞아서는 백만 원을 국제구호단체인 JTS에 기부를 했다. 그리고 해마다 10만 원씩이라도 좋은 곳에 기부를 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먹은 것처럼 잘 되지가 않았다. 핑계는 많았는데,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기부금들이 있었고, 또 비정기적으로 나의 후원이나 기부를 기다리는 다급한 곳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딸아이의 생일을 기념해서 따로 또 기부를 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다. 그래서 모른 척 눈 감고 넘어간 생일이 챙겨서 기부를 한 생일보다 많았다.
작년은 딸아이가 다니는 삼각산 재미난 학교가 개교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학교에서는 대안교육 포럼, 20주년 로고 만들기, 도서관잔치, 20주년 기념식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기획했다. 그리고 학교 게시판에 행사 기금 마련을 위한 [재미난 20주년 펀딩팀]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게시글을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딸의 건강하고 해맑은 모습이 떠올랐다. 코로나에 걸려서 그리고 독감에 걸려서 학교를 못 가게 되었을 때, 언제 학교 갈 수 있냐고 빨리 가면 안 되냐고 물어보던 아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즐겁게 해 준 재미난 학교가 새삼스러이 고마웠다. 나는 어릴 적 학교 가는 것이 참 재미가 없고 싫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 학교가 20주년에 더해 40주년 60주년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펀딩팀에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댓글을 남기며, 딸의 생일인 7월 26일을 기념하여 726,000원을 후원금 계좌에 입금을 했다.
그동안 이러저러한 사유로 지키지 못했던 몇 년 동안의 생일 기념 기부금을 한꺼번에 한 샘이 되었다. 역시나 기부는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을 더 기쁘게 한다. 한동안 누구에게 말은 못 하고 혼자서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더랬다. 최근에 내가 한 가장 만족스러운 소비였다.
사실 나는 최근 이삼 년 사이에 물건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것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 물건들의 끝이 자연과 동화되거나 골동품으로 남거나 하지 않고 지구의 어느 구석을 나뒹구는 쓰레기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아서 돈이 생기면 늘 무언가를 사려고 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옷, 액세서리, 신발, 가방, 화장품 같은 것들에 돈을 썼고, 결혼을 하고 나의 공간이 생기고부터는 그 공간을 채우는데 많은 돈을 썼다. 가구, 가전제품, 주방용품, 침구 등 기능이 좋고 예쁜 것들을 보면 늘 사고 싶어서 헐떡거렸다. 멋지게 꾸며진 집을 보면 나도 그런 집에 살고 싶었고,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구나 생각하며 종종걸음을 쳤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런 소비에는 끝이 없음을.
기업은 계속해서 나를 유혹하는 물건들을 만들어 낼 것이고, 나는 새것을 보면 내가 가진 낡은 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멀쩡해도 새로운 디자인으로 기능이 추가된 새것을 사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의 귀한 노동의 결과물을 더 이상 그런 곳에 헛되이 쓰지 않게 된 것이. 요즘은 어쩌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먼저 중고거래장터를 찾아보거나, 아름다운 가게나 굿윌스토어 같은 곳을 먼저 가본다.
이렇게 해서 남은 돈은 경험을 쌓고, 내면을 다지고, 건강을 챙기는 여러 활동들에 더 많이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딸의 생일 기념 기부금도 챙기게 되었다. 그 결과 내 삶의 질은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by 쪼코
나와 남편은 쇼핑을 잘못합니다. 둘이 살 땐 그래서 알뜰할 수 있었어요. 종종 쇼핑 시기를 놓쳤고, 어벌쩡 넘어갔습니다. 아이는 달랐습니다. 아이는 매일 자랐고, 매달, 매 계절이 처음이었죠. 쇼핑이든 나눔이든 매번 새 물건이 필요했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갑자기 날이 뜨거워졌는데 아이의 여름옷이 없습니다. 나는 반 팔을 입었는데 아이는 긴팔뿐. 엄마들에게 주워들은 쇼핑몰로 남편과 향했습니다.
“우린 선사시대에 태어났음 수렵채집(=쇼핑)을 못해 공동체에서 쫓겨났을 거야.”
웃고 말 줄 알았던 남편이 대꾸를 합니다.
“너는 불을 잘 지켰을 거야. 그러니 쫓겨나진 않았을 것 같아.”
묘한 위로. 상상합니다. 모두가 사냥을 하러, 채집을 하러 나간 시간. 터를 단정히 하고, 불을 살피는 일상. 세상에서 돌아온 이들의 모험과 상처를 저장할, 그리고 내일을 준비하는 공간을 가꾸는 삶. 그래, 쫓겨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상상. 쇼핑은 현실입니다. 쇼핑을 잘못하는 모습은 대략 두 가지 결말로 드러납니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필요한 시기를 놓치거나 생각할 틈 없이 결제를 해놓고 사후에 정말 필요한지,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는 없었는지를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만족한 소비’를 찾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작년 3월에 한 달 동안 인터뷰 질문을 받고 글을 쓰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결제하면서 난 꽤나 단호했어요. 쓰는 사람이 되겠다, 되고 싶다 소망만 수년. 시간은 쌓여가는데 이야기는 지어지지 않아 마감도 없는 주제에 똥줄만 타기 또 수년. 프로그램 모집 광고를 보고 나를 인터뷰하며 정말 내가 쓸 수 있는 사람인지 힘겨루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성공한다면 쓰는 근육이 생길 테고 실패한다면 내가 왜 쓰는 사람이 되고 있지 못한 지를 알 수 있겠지 싶었고요. 물건으로 쥐어지지 않는, 나를 위한 소비를 얼마 만에 한 건가. 내 소비 규모에서 적지 않은 돈이었는데 사후검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인터뷰한다는 건 예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내 깜량으로 24시간은 질문의 의미를 생각하고, 글감을 정하고 구조를 잡고 글을 쓰기에 부족했어요. 앞의 글이 자꾸만 나를 부르고, 궁리만 하다 날이 지나기도 했고요. 이 글을 쓰다 저 글에 가서 기웃거리기도. 우왕좌왕. 우당탕탕.
그럼에도 즐거웠습니다. 내가 무엇을 주목하는지, 혹은 덮고 싶은지를 통해 나를 발견했습니다. 생각하는 나-는, 쓰는 나-는꽤 흥미로웠습니다. 글이 되기 전 경험과 기억은 아즈카반의 디멘터 같달까, 그렇거든요. 나를 감시하다 종국에는 내 영혼을 흡수해 버릴 간수. 반면에 글이 된 경험과 기억은 내 통제와 해석 안에서 정리되더라고요. 개운하게.
계속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