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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r 18. 2022

3월 18일 정범근의 하루

사무실 이사

아침부터 범근은 책상 정리를 하느라 분주했다. 언제 놓은지도 모르는 서류와 수없이 쌓인 명함, 집에서 가져온 키보드와 마우스, 건조해서 사온 싸구려 가습기, 여름에 가져다 놓고 치우지 않고 방전된 휴대용 선풍기 등, 다양한 물건이 범근의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어디서부터 정리할까 고민하던 범근은 책과 자료들을 먼저 치우기로 했다. 


오늘은 회사의 이사 날이었다. 지금 사무실로 이전한 지 약 1년 만이었다. 범근은 짐을 싸다가 잠시 옛 추억에 빠졌다. 범근은 약 2년 전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지금 회사를 차렸다.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차린 회사였다. 범근의 원룸에서 시작해 운이 좋게 투자를 해주는 사람을 만나 지금의 사무실로 이사를 갈 수 있었다. 투자를 받기는 했지만 아직 수익 모델이 제대로 잡히지는 않아 항상 적자였지만 직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금 무리해서 지금의 사무실로 이전한 것이었다. 지난 1년 사이, 범근의 회사는 급성장했다. 업계에서 꽤나 주목받는 회사 중 하나가 되었고 후속 투자 이야기가 빠르게 오갔다. 인력을 더 충원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 더 넓은 사무실로 이사를 갈 수 있게 되었다. 범근은 지난 몇 달간 회사의 새로운 사무실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범근은 단지 2년 만에 이렇게 성장한 자신의 회사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대표님. 이 물건들은 어떻게 할까요?”


직원들이 회사 창고로 쓰고 있는 방에 있는 수많은 물건과 박스를 가리키며 범근에게 물었다. 그냥 버려야 하는 물건들이었지만 범근이 예전에 쓰던 물건들이었다. 범근은 그 물건들을 보자 옛 생각에 다시 사로잡혔다. 버리는 것이 마땅한 선택이었지만 범근은 물건을 버리지 말고 박스에 쌓아두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직원들은 투덜거리며 물건들을 챙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이었지만 범근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원룸에 살던 시절부터, 지금 사무실에서도 사용하던 물건들이었기에 추억을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은 범근의 마음이었다. 


“정대표, 애들 노트북도 좀 바꿔주자”


공동 창업가인 박이사가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직원들의 컴퓨터는 문서 작업만 간신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펙이 낮은 사양의 컴퓨터들이 많았다. 없는 살림에 이런 것에 투자하기 싫어했던 범근의 성향 때문에 직원들이 사용하는 장비들은 하염없이 초라했다. 그래도 이메일이나 문서 작업은 할 수 있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는 것이 범근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범근과 박이사의 컴퓨터는 최신 사양의 노트북이었다. 


“음…. 일단 생각해볼게. 그래도 성훈아, 우리 2년 동안 많이 성장했다.”


범근이 말을 돌리며 박이사와 옛이야기를 말하려고 했다. 박이사는 고개를 잠시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기 자리로 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범근은 잠시 박이사를 쳐다보더니 본인도 자기 자리로 가 못다 한 자리 정리를 다시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어느 정도 짐도 정리되었다. 범근은 직원들에게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오늘은 자신이 쏘겠다는 말에 직원들은 오랜만에 들뜬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범근은 근처의 저렴한 백반집으로 직원들을 데려갔다. 몇몇 직원들은 이사 날까지 쪼잔한 대표의 모습에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범근은 맛있게 밥을 먹고 법인카드로 직원들의 식사를 결제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박이사는 직원들에게 커피를 사겠다고 자청했다. 그리고 사무실 근처에서 약간 비싸지만 커피가 괜찮기로 유명한 카페로 가 직원들에게 커피와 빵을 샀다. 박이사는 자신의 개인 카드로 긁으면서 다음에는 더 맛있는 것을 사겠다고 직원들에게 말했고 직원들은 ‘역시 박이사님!’이라며 환호했다. 범근은 커피를 쪽쪽 빨고 있을 뿐이었다.


회사로 다시 돌아간 범근과 직원들은 남은 짐을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난 후, 드디어 짐을 모두 정리한 것을 확인한 범근은 용달차가 오는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며 나머지 정리를 박이사에게 부탁하고 새로 이사 갈 사무실로 먼저 이동했다. 


범근이 새로 선택한 사무실은 공용 오피스였다. 요새 같은 시국에 남들과 같이 사용해야 하는 공용 오피스를 선택하는 것이 조금 망설여졌지만 그만큼의 편리함이 있었기 때문에 범근은 공용 오피스를 선택했다. 청소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남들과 미팅을 할 때 보다 깔끔한 곳에서 할 수 있고 다른 회사들과 교류를 할 수 있고 역에서 가깝고 무엇보다 공용 오피스에서 제공하는 혜택이 곧 회사의 복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원래 사용하던 사무실보다 더 이득이 많을 것이라고 범근은 생각했다. 


범근은 공용 오피스에 도착해 사무실이 될 자리를 보며 잠시 혼자 감격스러워했다. 범근은 이제 진짜 잘 나가는 스타트업의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깔끔한 사무실, 현대적인 인테리어,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은 회의실, 공유 오피스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 등, 범근이 꿈꾸던 회사 사무실의 모습에 보다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범근은 자신이 사용할 층 바로 위 층에 있는 회사를 잠시 방문하기로 했다. 범근이 방문한 회사는 굉장히 유명한 회사로 공유 오피스 한 개 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범근은 언젠가 자신의 회사도 이렇게 한 개 층을 쓰게 되는 날을 꿈 꿨다. 그 회사의 대표는 범근과 아는 사이였다. 대표는 범근을 환영하며 새로 이사를 하는 것을 축하해줬다. 그리고 범근에게 앞으로 다양한 협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고 범근은 대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대표와의 대화가 끝난 후, 범근은 공유 오피스 라운지로 가서 커피를 내리고 다시 사무실이 될 자리로 들아왔다. 의자와 책상만 있는 자리에 앉은 범근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이삿짐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범근은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할 회사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하지만 청사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를 하면서 신경 쓸 것이 많았고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더 많은 챌린지를 받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박이사와 직원들이 자신을 욕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범근도 알고 있었다. 범근은 자신이 회사를 위하고 있고 회사의 돈을 아끼고 더 성장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다들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범근은 지금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그런 사소한 불만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어떻게든 성공하는 것, 그것만 범근은 바라보고 있었다. 범근은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이 꿈꾸는 미래와 현재의 자신을 냉철히 비교하며 다시 자신만의 사업 모델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이사를 마치고 다음 주가 되면 자신의 사업 방향을 다시 직원들에게 공표할 계획이다. 범근은 그게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이 회사를 위해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다고 보고 있는 범근이기에 다시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범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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