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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25. 2022

5월 25일 이신영의 하루

무슨 마음으로 회사를 다녀?

“무슨 마음으로 회사를 다녀?”


며칠 전 친구를 만났을 때 이런 질문을 들었다.


“글쎄…. 마음이 있나? 그냥 다니는 거지. 근데 무슨 일 있어?”


“다들 똑같구나. 요새 사는 게 재미없어서 그런 생각이 좀 드네. 미안해. 내가 분위기 좀 처지게 했지?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


나는 친구가 걱정되었지만 더 이상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정말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을 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그냥 스쳐가는 감정이겠거니라고 어림짐작했다.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친구가 한 질문을 계속 생각했다.


“무슨 마음으로 회사를 다녀?”


모르겠다. 그냥 돈 벌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다니는 게 아닐까?


.

.

.


오늘, 그 질문을 했던 친구는 나에게 퇴사를 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퇴사 기념으로 자신이 제대로 쏘겠다고 했고 우리는 약속 시간을 잡았다. 나는 퇴사할 용기가 있는 그녀가 무척 부러웠다. 그녀는 무슨 마음으로 자신이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지 답을 내린 것일까?


“이번 일만 잘 되면 신영님 커리어에도 정말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열심히 합시다. 파이팅!”


오늘 PM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아주 귀찮고 애매한 일을 시킬 때 PM님이 나에게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왠지 화가 났다. 


나는 내 마음이 들킬까 봐 아주 조용히 한숨을 쉬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누가 성장하고 싶다고 했나? 그리고 이 일이 내가 성장하는 것이랑 무슨 상관이야?’



.

.

.


지금 있는 회사는 내 전공이랑 전혀 상관없는 분야였고 내 업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름 기업 공채를 거쳐서 들어오기는 했지만 나는 입사 후 한 달 동안 내가 무슨 업무를 해야 하는지조차 잘 알지 못했다. 물론 면접 볼 때는 다 잘 대답했지. 하지만 회사에서 하는 일은 내가 지원했던 업무와는 전혀 다른 일 같았다. 내가 하는 일은 전문적이지 않았고 대학교를 나올 필요도 없어 보였다. 내 일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래에는 로봇이 우리의 일을 대체한다고 하는데 로봇은 반드시 내 업무부터 뺏어갈 것이 틀림없다. 그만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저 회사라는 조직이 돌아가게 하는 이름 모를 세포에 불과했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끝없이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말했다. 회사의 직원이 몇 명인데 다들 주인이면 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간다는 거야?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회사에 입사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분명히 있기는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냥 아침에 출근하라고 하니 오는 것이고 집에 가서 쉬어야 하니 퇴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출근을 해서 맡은 일을 해야 월급이 나오니 내 업무를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일은 열심히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적어도 나는 책임감 하나는 강한 편이었기에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최선을 다했다. 회사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적어도 내가 욕을 들을 일은 없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나에게 계속해서 욕심을 가지라고 은연중에 강요했다. 그런 것이 꼭 필요한 것일까? 나는 회사에서 임원이 될 생각도 없고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도 회사를 다닐 생각이지만 그건 내가 일을 아예 안 하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 이상의 욕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살아가니 집에 돌아오면 허무할 때가 많았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회사에서 내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살다가 내 대체제가 오면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이게 지금 내가 원래 원하던 일이 맞는 것일까? 수없이 많은 고민과 함께 잠든 날도 많다.


보통의 직장인처럼 나도 회사 안에서 힘든 일이 많이 있다.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도 있다. 최근 몇 달 간은 회사 사람들과의 갈등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근거 없는 소문, 악의적인 의도로 다가오는 사람 등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이곳을 계속 다니고 있다. 


만약 내가 지금 회사를 그만둔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경력 4년 차. 만약 지금 회사의 간판마저 사라진 나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 회사에 소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회사에서 대단한 걸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 경력이 다른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아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이다. 어쩌면 지금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 자체를 감사해야 하는 직장인일 수도 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정해진 장소로 이동한다. 정해진 장소에는 또 내가 앉을 의자와 책상이 있다. 그곳에 앉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남이 시킨 일을 한다. 그 일을 열정적으로 하면 열의가 있는 직원이 되고 그냥 시키는 일만 하면 의욕이 없는 직원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맡은 일을 잘 해낸다고 해서 칭찬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바로 욕을 먹는다. 내 성과를 가로채는 사람도 있고 내가 정말 못해서 망치면 비난은 내 몫이 된다. 너무 억울해서 화장실에서 몰래 울 때도 있고 그래도 마음이 맞는 동료들 덕분에 웃을 때도 있다. 그렇게 나에게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세상은 나에게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고 하지만 집에 오면 도저히 밥을 먹을 힘 자체가 나지 않는다. 잠들기까지 단 몇 시간. 다른 사람들은 그 시간마저 취미나 자기 계발에 쓴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만큼 부지런하지 못해 핸드폰만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잠을 잔다. 매일매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 


“무슨 마음으로 회사를 다녀?”


아무런 마음도 없이 다니고 있는 것 같다. 퇴사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이렇게 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 같다. 도망칠 용기도, 다른 길로 갈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매일 아침 나는 똑같은 레일 위를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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