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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May 26. 2022

5월 26일 한제훈의 하루

유리 멘탈

나는 상당한 유리 멘탈이다. 어릴 때부터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나는 친구들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장난으로 나에게 한 말이라고 했지만 하루 종일, 그다음 날까지도 친구들의 말이 신경 쓰였다. 선생님의 말은 더더욱 그러하였다. 선생님에게 혼나는 날이면 하루 종일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해서 늦게 들어오셨기 때문에 풀이 죽어있는 나의 모습을 볼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힘이 없는 나의 모습을 보면 부모님은 남자가 되어서 그런 것에 의기소침해하고 있냐며 나를 혼냈다. 그런 날이 되면 나는 밤새 남몰래 울었다. 

나이를 먹으며 어릴 때보다는 멘탈이 강해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말이 신경 쓰였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고 혹시나 남이 나를 안 좋아하는 것 같으면 그들에게 과도하게 잘해주려고 했다. 그래도 그때는 그렇게 눈칫밥을 챙기면서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군대에 있을 때는 잘 버텼던 것 같다. 물론 일이병 시절에는 힘들었지만 그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상병, 병장이 되며 이제 나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자신감이 넘쳤다. 나는 그때 내 멘탈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나는 다시 돌아왔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면서 멘탈이 전혀 남지 않았다. 겨우 취업을 했지만 직장은 군대보다 무서운 곳이었다. 회사에서 나는 다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상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영향을 받았다. 그가 나를 혼내면 일적이 아니라 사적으로 욕하는 것 같았고 힘들게 쓴 보고서를 보며 하나하나 지적을 당할 때는 내가 천하의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툴툴 털어내면 좋겠지만 상사의 말을 매일 밤 곱씹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잔 경우도 많았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폭식을 해서 몰라보게 살이 찐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내가 괜찮은 줄 알고 있다. 멘탈이 털려서 힘들기는 하지만 항상 웃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살면서 배운 가짜 배려는 여전히 나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잘해줬고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다. 그러나 완벽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균열이 생기면 나는 다시 혼자 힘들어했다. 항상 상처받지만 항상 괜찮은 척했기 때문에 그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다루기 쉬운 적이 없었다. 항상 깨기지 쉬운 존재였지만 나는 강철 인척 했다.

나는 예상치 못 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한계점에 부딪혔을 때는 오히려 침착했다. 그런 상황들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힘들어한 것은 인간관계였다. 사람과 어떻게 지내는가, 그들이 어떤 말을 하는가,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그러한 것들에 흔들렸다. 

오늘 오랜만에 정말 친한 친구와 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에게 요즘 나의 고민을 말하니 그는 나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태어나서 이런 것으로 상담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과연 그런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어떤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확신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돈이 얼마나 들지도 알 수 없어서 더 망설여졌다. 하지만 지금 나의 모습을 극복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인터넷에서 괜찮은 정신과를 검색해봤다. 회사 주변을 찾는 것이 편하지만 괜히 내가 이런 곳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는 않아 회사에서 멀고 집에서 가까운 곳을 검색했다. 어떤 곳이 괜찮을지는 모르겠다. 집 주변에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 있어 주말에 그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직 상담을 받아보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그곳이 나에게 답을 내려주지는 않겠지만 부디 그곳이 나에게 작은 위안과 위로를 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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