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Sep 17. 2022

9월 17일 이태훈의 하루

친구의 귀환

오늘 민준이가 돌아온다. 


민준이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친한 사이였다. 같은 동네에서 자란 사이라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쳤고 같은 반이었던 적도 많았다. 민준이와는 5살 무렵부터 친하게 지냈으니 거의 14년은 매일 같이 민준이를 봤던 것 같다. 

민준이네 집에도 자주 놀라갔기 때문에 민준이의 부모님은 나를 굉장히 잘 알았다. 내가 놀러 가면 맛있는 것을 해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민준이 엄마는 우리 엄마하고도 친하게 지냈다. 서로 학원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고 입시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민준이는 19살, 고3이 되었을 때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당시 민준이의 아버지는 미국이 본사인 외국계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본사로 발령을 가게 되면서 가족 전체가 이민을 가게 된 것이었다. 민준이의 부모님은 기왕 이렇게 된 거 늦게라도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민준이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민준이가 미국으로 가기 전 날, 나는 민준이와 친한 친구들과 모여 즐겁게 놀았었다. 

그렇게 민준이가 떠난 후, 나는 한국의 평범한 고3이 되어 대학 입시에 몰두해야 했다. 1년 동안 노력했지만 내가 목표로 한 대학에 갈 수 없었고 나는 삼수를 한 끝에 마침내 내가 원하는 대학교에 갈 수 있었다.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내 기억에서 민준이는 잊혀졌다. 민준이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연락을 했지만 서로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SNS 친구이기는 했지만 민준이는 그마저도 잘하지 않았다. 그렇게 민준이는 내 어린 시절의 수많은 친구들처럼 성인이 된 나의 친구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만난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민준이의 소식을 들었다. 다들 민준이와 직접 연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선가 들은 민준이의 이야기를 나에게 말해줬다.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민준이는 미국의 대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하고 한인들에게 마약을 파는 일에 빠졌다고 했다. 평범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민준이가 갑자기 그런 길로 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친구들도 민준이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소문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인 정민준이라는 사람이 미국 유학을 가서 타락했다는 이야기처럼 술자리의 이야깃거리로 어울리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씁쓸해했다. 아예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말이 안 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저 민준이의 삶이 고달프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들 앞에서는 부정했지만 나 역시 그런 소문을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20대 중반의 나는 민준이를 고작 그렇게 밖에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다시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나에게 모르는 사람 하나가 메신저로 연락을 했다. 대화명에는 Peter라고 쓰여있었다. 그는 나에게 “태훈이니? 오랜만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냈었다.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나는 메시지를 차단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혹시 몰라서 나는 그의 정체를 물었다. 그리고 Peter라는 사람은 자신의 이름이 정민준이라는 것을 밝혔다.

나는 민준이의 연락에 크게 놀랐다. 그리고 마치 오랫동안 민준이를 걱정한 것처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었다. 민준이라는 사람이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진심으로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10년 전, 민준이가 마약을 파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민준이는 자신이 금융맨이 되어 뉴욕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듣자 나는 순간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내 어렸을 적 친구가 미국에서 타락하지 않고 아주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은 10년 전의 내 의심을 완전히 걷히게 만들었다. 

민준이는 나에게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있는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어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오랜만에 나와 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 둘이서 술을 마신적은 없으니 이번 기회에 술을 먹자고도 했다.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민준이가 한국에 오는 일정과 약속 일정을 확인했다. 

그래, 다행이었다. 내 오랜 기억 속의 민준이는 미국에서 아주 잘 살고 있었다. 너무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소문만을 듣고 의심했던 내가 너무 미웠다. 민준이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오늘은 돌아온 민준이를 만나는 날이었다. 이제 나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저씨가 되었지만 미국에서 금융맨으로 살던 민준이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너무 궁금했다. 그의 메신저 프로필에는 어떤 사진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를 다시 만나면 내가 알아볼 수 있을까? 그가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저 멀리서 선글라스를 끼고 뭔가 미국 느낌이 나는 스타일의 남자가 걸어온다. 저 사람이 민준이 일 것이다. 나는 혹시나 몰라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에게 다가온 그는 선글라스를 벗고 악수를 청했다. 10여 년이 흘렀지만 민준이의 모습은 거의 그대로였다. 미국물을 먹어서 약간 느끼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의 민준이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민준이에게 한국에 잘 왔다고 인사했다. 16년… 정확히 16년 만에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반갑다, 민준아. 

이전 21화 9월 16일 최윤태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