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 서울에서 살았고 직장생활도 서울에서 했지만 결혼을 하며 모든 것들을 접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천안에 신혼집을 꾸렸다. 어찌 보면 너무 과감했던 선택이었지만, 그 모든 걸 접을 만큼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컸고, 타지에서 내 삶을 새롭게 꾸려갈 자신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바로 새로운 직장을 얻었고, 신혼생활도 내가 그린 이상처럼 행복함이 가득했다. 1년 후 우리는 아이를 계획했고임신,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마치 영화에서 주인공의 행복한 순간을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요약해 나가듯 그렇게 결혼 후 나의 삶은 무난하게 물 흐르듯 하면서도 또 빠르고 정신없이 변화했다.
오로지 내 삶의 변화, 이 행복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볼 겨를이 없었다. 천성이 외로움을 별로 안 타는 기질인 데다 자상한 남편, 사랑스러운 아이까지 딱히 타지에서 새롭게 친구를 사귀어야 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육아를 하다 보니, 나처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다른 엄마들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이 시기엔 아이에게 뭘 해주어야 하지? 뭘 사주어야 좋을까?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해줄까? 초보 엄마는 늘 물음표 투성이었다. 육아 친구 하나쯤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게 바로 그때였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 행운처럼 만난 언니였다.아이의 개월수까지 같았고 결혼, 출산, 육아에 이르는 끝도 없는 공감대에 속이 뻥 뚫리는 후련함이란. 정말 대단했다. 사실친한친구들 사이에 난 결혼을 제일 먼저 했고 혼자 아이까지 낳은 터라 제아무리 오랜 친구라도 공감대가 부족했다. 그런데 오래된 벗을 만난 것처럼 실타래 풀리듯 술술 통하는 즐거운 대화가 그저 신기했다. 엄마로서의 어마어마한 동질감에 하늘이 준 참 감사한 인연이구나 싶었다. 또한유쾌하고격이 없이 농담도 주고받으며함께 웃을 수 있는 언니였지만, 말을 놓으라는 내 권유에도 끝까지 나에게 존대해 주는 배려심까지 갖춘좋은 언니라고 생각했다.
"반찬 뭐 해 먹어요?
내가 아는 요리 모임이 있는데 같이 가볼래요?"
나에게 건네는 제안이 다른 곳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속셈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눈치챌 수 있었을까? 그때의 내가 안타깝지만, 다시 이때로 돌아간다 해도 난 모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