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주말의 종료 버튼을 누르는 일요일 밤은 바쁘다. 금요일 저녁부터 풀어져버린 아이들은 빨리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자유로움의 상태는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잦아드는데 그래서인지 숙제도 꼭 그때 한다. 늦어진 식사부터 내일을 위한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어떻게 흘러갔는지. 집안 어둠의 가장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동안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다급하게 준비하던 저녁식사의 흔적이 손바닥 안쪽에 남아 화끈거린다. 메추리알 튀김을 하다가 기름이 튀었다. 얼른 찬물에 손을 담갔지만 많이 데었나 보다. 덤벙대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기름을 쓰는 음식을 하다 보면 자주 그런다. 심지어 오늘은 뜻밖의 사고였다. 메추리알이 품고 있던 기름이 갑작스럽게 튀었다.
뜻밖의 사고는 어릴 적부터 지속되었는데 멋모르고 뛰어다니던 서너 살 아이일 때 팬티도 안 입은 채로 미역국이 끓고 있던 곤로에 앉은 적이 있다. 기억에는 없지만 허벅지 뒤쪽의 흉터가 그날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런지 다행히 자국은 희미해져 이제는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자지러지게 울었었고 아빠는 엄마에게 불같이 화를 냈었다 한다.
왼쪽 손목에도 있는 데었던 자국이 눈에 띈다. 밥해먹는 일상을 몸에 기록이라도 하듯. 잊히는 기억 때문에 몸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써대던 영화가 생각이 난다. 남편을 처음 만나던 날도 포장마차에 줄 서서 사 먹었던 호떡 꿀에 손을 데었었다. 꿀이 흐른 자국만큼 색이 변한 자리는 한동안 호떡을 기억하게 해 주었는지 남편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게 해 주었는지 이제는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뜨거운 것에 약한 운명이라도 타고난 것일까 궁금해진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식당을 오랫동안 고생하며 끌어안고 있던 엄마의 손목은 불에 덴 상처로 자국이 많았다. 아직도 엄마를 떠올리면 음식을 나르던 휘어진 은색 쟁반이 먼저 떠오른다. 팔에 여러 번 난 상처들은 오래가는 흉터가 되어 이제는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는 엄마인데도 불에 덴 자국은 기억으로 남는다. 엄마는 덤벙대는 성격인데 나는 엄마 같지 않고 차분하다고 그랬었다. 딸의 인생이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라서였을까. 그래도 나는 엄마와 닮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똑 닮은 어미개와 강아지, 얼룩마저도 같은 어미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 사진들. 동물을 좋아하는 막내는 그런 사진을 볼 때마다 까르르 웃었다. 나는 엄마를 닮았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친정 엄마를 닮았다고 할 때마다 아니라고, 친정 아빠 얼굴을 못 보셔서 그렇다고 라고 하거나 친정 부모님 두 분의 얼굴을 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독립된 개체라고 말했던 자신이 떠오른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라는 노인들 흔히 하는 말들도 싫어하며 화를 냈다.
닮는다는 의미에 왜 그리 적개심을 품고 살았던지. 엄마 앞에서 왜 한 번도 닮았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는지. 우리는 각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엄마의 고생은 슬프면서도 왜 불길한지. 알 수 없는 자신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듯 데인 자국이 자꾸만 욱신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