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것을 삼재라 부르기로 했다 _ 삼재가 끝난 그 이후의 이야기
『 삼재 : 인간이 9년 주기로 맞이하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를 일컫는 단어. 9년이 지나가는 시점부터 3년간 별의별 재난을 겪게 된다고 하며 이를 삼재팔난이라고 별도로 부른다. 』
나에게 그는 놓쳐버린 인연이었을까.
늘 한 발 느리게 도착하는 내 사랑들과, 이제는 확신 없는 이가 된 당신까지.
우리의 인연은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가, 못하는가.
딱 한 명이었다.
내가 삼재동안 사랑했고, 사랑한다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은.
삼재가 시작되자마자, 끝나버린 오랜 사랑은 나를 빈털터리로 만들었다.
지갑에 돈이 있어도 쓰임의 뜻을 분간하기 어려웠고,
24시간을 굶어도 위는 비어있다 소리 내어 지르지 않았으며
자주 삼켜내야만 했던 수성들로 나의 온마음은 한강을 이루었지만, 비우려해도 비워지지않는 거짓가득한 가뭄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겨우 그까짓 아픔에 생사를 논하냐는 그들의 말과
이만큼이나 되는 아픔이기에 생사를 논하고 싶어지는 나의 마음이 울퉁불퉁 비포장된 보도블록 도로 위 하나를 중심도 못 잡고 휘청거리며 걸어가게 만들었다.
겨우라고 말하는 그들의 말보다,
이만큼이라 칭하는 나의 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날엔
대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그 누구라고 붙잡고 기대어만 버리고 싶을 만큼,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내 마음하나만
온전히 뉘 일수 있다면 다 상관없었다.
가뭄만이 일던 마음에 꼬박 밤을 새워 삼킨 수성으로 한강을 이루다 어느새 그 깊이를 모를 만큼 바다가 되어버린, 무수히도 많은 새벽을 나는 견뎌내야만했다.
아, 아 - 곧 있으면 나는 이 바닷속으로 깊은 어둠의 먹이가 되어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을 찰나에 그를 만났다.
내가 좋아 죽겠다는 그의 눈과,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사랑을 속삭이는 입모양까지.
작은 형태적 몸짓마저도 나를향한 그 사람의 마음이 보였다. 그니까, 사랑이 보인거야.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는 그 말을 슬픔에 잠식되어 잠시 잊고 살았었는데.
나만을 사랑한다는 그의 모든 형태적 사랑은 숨기지 않은 것이었음을. 허나, 깊은 어둠에 지속적으로 살아가던 나에게 그 사람은 너무도 벅차고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런 당신이 이런 나를 사랑한다니.
그래도 괜찮은 사랑을 당신은 얼마나 갖고 있길래 내게 사랑을 말할까.
퍼내고 퍼내도 자꾸만 생겨나는 마법의 우물처럼 당신의 사랑도 무한으로 생겨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도 아쉬움 가득한 지나간 인연을 놓지 못한 채 당신을 바라만 보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그가 주는 사랑이 더욱이 무겁고 무섭게만 다가왔다.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나와 사랑 없는 사랑을 함께했던 지난 인연을 그렇게나 원망하며 나는 그러지 않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거늘, 지금의 내가 전 연인과 다른 게 무엇일까.
그를 보고 있자니 미안했다. 죄책감이 들었다.
나를 보고 웃는 그가 바보 같고, 그런 그를 보고 있는 나는 점점 더 죄를 짓는 마음에 온몸이 조여 오는 것 같았다.
정을 주고, 마음을 주고, 사랑을 키우려는 시작을 해야 하는 기간에 나는 그에게 미안함을 주고, 매일밤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지니다 결국엔 모진 말들을 일렬로 내세워 그를 나의 울타리 밖으로 내쫓았다.
쫓아내는 내가 뱉어내던 그 모진 말들로 나의 새벽도 오랜 시간 아물지 않았거늘,
나의 모진 말들로 흠뻑 적셔지며 쫓겨나던 당신의 마음을 감히 글자하나 문장 하나하나 내리울 수 있을까.
제아무리 박박 날 뛰어도 나는 나였다.
내 사랑은 늘 늦게 도착했으니까. 그래, 나는 뒤늦게서야 흠뻑젹셔졌던 당신의 그 마음들을 알았다.
당신, 나와같은 아주 깊고 어두운 바닷속을 다녀와야만 했구나.
그렇게 그 사람과 첫 연애, 첫 이별이 끝이 났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그와 나의 인연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 그와 다시하게될 두번의 연애와 두 번의 이별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그해 여름을 알리는 6월 초입 우리는 만났고
나와 당신, 우리 두 사람 모두 삼재의 시작이었다.
[ 삼재팔난 ː 저를, 여전히 사랑하실까요_1장 ]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