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것을 삼재라 부르기로 했다 _ 삼재가 끝난 그 이후의 이야기
『 삼재 : 인간이 9년 주기로 맞이하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를 일컫는 단어. 9년이 지나가는 시점부터 3년간 별의별 재난을 겪게 된다고 하며 이를 삼재팔난이라고 별도로 부른다. 』
나에게 그는 놓쳐버린 인연이었을까.
늘 한 발 느리게 도착하는 내 사랑들과, 이제는 확신 없는 이가 된 당신까지.
우리의 인연은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가, 못하는가.
무엇인가에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일이 되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자의적으로 나를 떠난 것이 아니었다는 점.
타인인 나로부터 비롯된, 곧 내가 살아야만 한다는 이기심과 오류 가득한 판단으로 인해 떠나 져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가 떠난 자리는 한동안 불이 지펴졌던 것처럼 소흔(燒痕)이 남겨져있었고, 어리석은 나는 그의 난 자리를 알아채기까지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상을 원망했다.
곧이어 다음날엔 원망의 짙음이 살짝 옅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2년, 대략 700일이 넘는 시간을 살아갔다.
죽을 만큼 힘든 마음을 움켜쥐고도 죽을 용기는 좀체 없었다 이야기하기를,
세상에 대한 '어쩌면'이라는 희망 따위와 함께 모순적인 죽음의 대조를 통해 나는 더욱이 세상을 열망하고 있다고 그 누구보다 간절히 소리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살아보니 살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그제 가서야 알았다.
그리고 그 살아진다는 말속에는 많은 것들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 또한.
단지 우린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이미 일정량의 감정을 소모했다는 것,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문제보다는 덜 중요하다 여겨지게 된다는 점.
완전히 잊히지는 않기에 안고 갈 수밖에 없었던, 살아보니 살아진다는 애환 가득한 과거의 이야기들이 줄을지 었다.
우습게도 나는 그가 떠나고, 내가 내뱉은 그 말들이 그에게 얼마나 가슴에 맺히는 말인지를 열 곱절은 곱씹고 되뇌인 뒤 그제야 그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내 안에서 짙어진다는 것을 인식한 때에 이미 그는 내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난 뒤였다.
남들보다 촉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자랐다.
그리고 그 촉은 예상외로 자주 맞았다.
그가 떠났음에도,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기에 닿을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는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다시 한번은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만약에라는 가정을 매일같이 어수룩한 밤하늘에 얼마나 수도 없이 놓았는지 모른다.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가 나를 여전히..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설령 그 말이 어떠한 위로의 보탬도,
당신이 그날을 잊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달려왔을지도 나는 모른 채 다시 그날을 상기시키는 불상사를 저지를지 모른다 하여도. 지금의 내가 온전히 살아가고 있음은 그 시절 당신을 만났기에 가능하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알았음 했다 당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그때 당신은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고.
나에겐 한없이 넘치고, 넘치던 사람이었다고.
어쩌면 내가 당신에게 가기엔 턱없이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었기에 우리가 어긋난 걸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닿을수 있을까.
모진 말들로 채워보내 미안했다는 이말이.
이보다 더 미안한 마음을 실어야 한다면 난 당신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할까, 이만하면 전해질까 내 마음이.
한낮의 태양이 조금씩 뜨거워지고 있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침대프레임을 등받이 삼아 잠시 기대어 창밖 넘어 들어오는 빛을 지그시 바라보다 휴대폰을 들어 갤러리를 들어갔다. 지나간 것들도 모두 남겨두고 싶어 하는 습관과 자주 기록하고 찍어두는 버릇이 있는 나는
따로 저장데이터가 큰 갤러리를 개별적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들여다보곤 한다.
종종 추억하고 싶은 것들이 생길 때면 이만한 것이 없었다.
스크롤바를 연신 내리다가 잡고 있던 휴대폰을 놓치며 놀란 탄성만이 튀어나왔다.
2년 전, 그러니까 내 사랑은 늘 타이밍이 없다면서 뒤늦게서야 알아차리곤 했던
언젠가는 다시금 만날 것만 같았던,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래, 그 사람의 휴대폰번호 11자리가 나란히 일련 된 사진 한 장이 저장되어 있었다.
다른 건 하나도 남겨져있지 않은 채.
그 순간 나의 세상엔 고민이라는 단어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2년을 무수히 수놓아보았던 시뮬레이션의 한 장면을 끄집어내어 볼 수만 있다면.
키패드 자판너머 떨리는 두 손을 움켜주고 11자리 그의 번호를 두드려 내려갔다.
번호가 ... 그대로이기를.
그가 여전히 변하지 않았기를.
내 사랑에 타이밍이 없다면 기회는 있기를 바랐다.
이 순간만큼은 신이 나의 편이 되어주길 아주 간절히 빌었다.
- 전송완료
' 잘 지냈어? 나 기억하려나 모르겠네 '
명치가 간지럽다가 콕콕 쑤셨다 오락가락한다.
누군가 내 심장을 쥐고 셰이크질을 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보낸 한 문장에 온몸이 간질거리고 쑤셨다. 기대와 걱정과 설렘으로 온몸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만큼은 신이 나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 응 잘 지냈어. 오랜만이야 너는 어떻게 지냈어? '
그 문자 알림은 나를 한번 더 2년 전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이 시작되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 삼재팔난 ː 저를, 여전히 사랑하실까요_2장 ]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