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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재팔난 ː삼재팔난과 마지막 성적표]

우린 그것을 삼재라 부르기로 했다 _ 삼재가 끝난 그 이후의 이야기

by Soden
『 삼재 : 인간이 9년 주기로 맞이하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를 일컫는 단어. 9년이 지나가는 시점부터 3년간 별의별 재난을 겪게 된다고 하며 이를 삼재팔난이라고 별도로 부른다. 』


거센 낙루로 기어코 밀려 나온 공허함은 허공에 붕 - 하고 뜨더랬다.

낙루 넘실대니 둑 없는 허공엔 위태로운 조각배 한 척만이 다다를 곳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하면 결코 선박 할 수 없어 항해하기 망설이기만 하는 것일까.

서글픈 조각배의 심정일랑 모르고 낙루는 자꾸만 넘실대며 들어온다. 마치 제자리인 것을 아는 것처럼.




3년. 일수로는 1년 365일이 3번인 1,095일

내가 걸어왔던 재난을 짧게 기록하면 3년, 길게 기록하면 1,095일.


짧고도 길었던 나의 삼재가 드디어 끝났다.

그럼에도 속이 후련하다던가, 자유롭다던가 사실 그런 건 전혀 느끼지 못했다.

3년 동안 수많은 재난 속에서 나는 늘 외로워야만 했다.

그리고 반복되는 그 외로움은 내게 내일을 꿈꾸고 싶지 않은 부정정인 사고를 하게 만들었다.


신을 모신다는 소위 무당들이 말씀하시길, 삼재팔난은 별의별 재난과 사고를 겪는다 하여, 재물적손실 혹은 자연재해, 관계의 변화수 등과 같이 갖갖이의 사건 사고들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정말 심한 삼재를 겪는 이의 경우는 목숨마저 위태로운 경우도 소수 있다고 하니 삼재를 믿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었다.


나에게는 어떤 재난들이 다녀가게 될까.

나에게는 어떤 재난들이 다녀갔을까.


다행히도 재물적 손실은 없었다. 오히려 삼재동안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우선시 되는 가치관이 있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돈은, 재물은 세상과 재난을 살아가는데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돈이란 그런 것이었다. 있다고도 없을 수 있는 것.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는 할 테지만

그것이 결코 내 행복을 이루는 완벽한 척도는 아닌 것.


자연재해로부터의 피해는 없었다. 대신 열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아니 나의 발가락개수까지 총동원해도 모자랄 만큼 아주 수많은 관계의 변화가 있었다.

내 기준 오랜 연애를 했던 사람과 벼락같이 이별을 하고 참 오래도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 이별이 내 삶과 재난의 시발점이 되었고, 정신 차리고 보니 난 깊은 동굴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 동굴은 나를 삼키는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어둡고 깊은 해저로 보내지기도 했다.


하마터면 못 헤어 나올뻔했다면서 나 요즘엔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말하면서도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어둠에 왼편 어깨마루부터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지만 괜찮아지지 않은 나의 3년이 여전히 숨어있을지 모르겠다.

얼마나 꽁꽁 숨었는지 내 마음인데도 아직도 찾지를 못하다니. 생각들이 종종 문턱을 만들고 영원히 함께 하자고 하는 것만 같았다.


3년을 보내고, 정확히는 삼재팔난이 모두 끝나고 나면 3년을 얼마나 열심히 잘 살아왔는지에 대한 성적표가 나온다는 말들이 있다. 그 전해 들려오는 이야기가 아주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굳이 삼재가 아니어도 3년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한 인간의 인생이 좌지우지될 수 있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일 테니까. 나는 재난이라는, 삼재라는 옵션을 하나 장착하고 살아온 것 그뿐이었다.


그래도 알고 싶었다. 3년에 대한 나의 성적표가.

나름 3년을 악착같이 그리고 모두가 나를 등한시하고 떠나는 순간과 깊은 해저를 홀로 빠져나오던 날도.

모두가 잠든 새벽 베란다에 간신히 걸쳐 앉아 마주한 휴대폰 불빛 너머 의지할 곳 하나 없다는 걸 깨달아 모든 게 무너지던 순간까지도. 버텨내었고, 이겨내었다고 그러니 내 성적표는 몇 점 일지.


궁금했다.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은 나에게 몇 점짜리 성적표를 던져줄지.

나에게 삼재팔난이 끝난 2025년은 어떤 감정들로 가득 차게 될지.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재난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지 자주 들고는 한다.

어쩔 때는 재난보다 더한 시간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자꾸만 무릎이 바닥을 찧으려고 한다.


차마 괴이지 못한 두 무릎을 앞세우고 어쩌면 최선이 아닌 3년을 살았던 것이 아닌지 스스로를 구박하며 면박 주었다. 어쩌면 단순 운이 안 좋은 긴 시간이었을지 몰라 라면서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따질여력은 없었기에.


그러고도 속이 터질 것 같은 날엔 보이지도, 닿지도 않는 신을 향해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마구잡이로 한다.

당신이 진짜 존재하기는 하냐며. 존재한다면 이래도 되는 것이냐고.

이렇게까지 내 마음과 내 세상사람들만 눌러대는 법이 세상천지가 어디에 있느냐며.

혼자 있어도 소리 없이 우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마냥 꺼억꺼억 한참을 울어재꼈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에게.

그리고 나보다 세상을 살았다면 더 한참을 살아가고 계시며,

삼재를 겪으셨다면 더 숫하게 겪었을 수많은 하늘아래의 어른들에게 묻고 싶었다.


사는 것이 다 이런 것인가요.

잘 살자고 수십번을 다짐하면서도 그 기준은 늘 어렵고 모르겠는것들로 여즉 가득합니다.

이악물고 죽을힘을다해 버티고,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겠다며 다짐하고 또다짐했거늘 왜 난 항상 제자리에 서있는 기분일까요. 독하게 살아야겠다 마음먹으니 모두가 날 지독한 사람이라 봅니다. 덕분인지 외로움만이 표독스럽게 나를 쫓아다녀 밤은 길고 새벽엔 잡아 먹힐까 노심초사하며 살아갑니다.


언제쯤, 꿈 다운 꿈을 이루었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언제쯤, 굳은살 깊이 박인 아버지 두 손 편히 맞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언제쯤,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인 이 세상에서 비로소 사는것이 원래 다 이런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삼재팔난은 끝났다 말합니다.

그리고 제 여행은 이제 시작이라 말합니다.


삼재가 남겨준 많은 물음표와 숙제들을 안고 갑니다.

그러고보니 꽤 무겁긴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게의 크기만큼 다음 삼재가 오기전엔 더 단단해져 있어야 겠습니다. 지켜야할 이들과 이루어야할 꿈들이 아주많아 질 것 같아요.


살아가는 동안 결코 쉽지만은 않을 세상과 마주하게 될 나에게, 지나온 이 3년이 사실은 재난이 아닌 어쩌면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큰 고난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혹, 신이 실로 존재하거든
부디 이 혼백 하나쯤 가엽게 여기실 테라. 간절하고도 지독스럽던 오랜 나의 소망을 담아 이 글을 바칩니다.


2022.02.01 - 2025.01.29 ___ 드림.



[ 삼재팔난 ː 삼재팔난과 마지막 성적표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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