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나와 당신의 청춘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 응원하며.
작년 7월, 딱 1년 전 즈음 어느 날이었다. 낮에 과도하게 카페인 수혈을 해서 그런지 그날따라 새벽 2시가 넘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일단 불은 끈 채로 침대에 누워 검정 천장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때 갑자기 베개 옆에 있던 휴대폰에서 번쩍하고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안 그래도 정신도 두 눈도 말똥말똥했는데 잘 됐다 싶어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밝은 빛의 출처는 인스타그램 메시지 알림이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발신자는 20대 중반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친하게 지냈던 네 살 위의 L 오빠였다.
오래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서 L 오빠와는 따로 만난 적은 단 한 번 밖에 없었지만, 드문드문 sns를 통해 가느다란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래도 오빠와 나는 전반적인 성향이 비슷한 탓인지 1년에 한두 번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가벼운 안부 인사부터 무거운 고민 이야기까지 함께 나눌 수 있다. 이번에 오빠가 메시지를 보낸 이유는 7월에 제주도로 여행을 오면 나를 보려고 했었는데, 일 때문에 못 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오빠는 내게 제주도에 언제까지 있을 계획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별 일이 없다면 일단 방을 계약한 기간인 내년 봄까지는 제주도에서 지낼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오빠는 내게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
"거기서 너 혼자 지내는 거 외롭지 않아?"
10년 넘게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줄곧 타지 생활을 했던 내게 이 질문은 너무도 익숙했다. 하지만 이 질문은 몇 번을 들어도 바로바로 대답하기란 쉽지가 않다. 워낙 내가 외로움이 온몸에 가득 찬 인간이라서 그런 걸까. 나는 사실 어디에서, 누구와 있더라도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와 성향이 비슷한 L오빠에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오빠. 근데.. 어디에 있든지 외롭지 않아? 그냥.. 나는 외로움이 당연해진 것 같아. 가끔은 나도 미친 듯이 외로워서 사람이 마구 그리워질 때도 있는데.. 알잖아. 그것도 다 스쳐가는 감정인 거.. 오빠는 요즘 어때? 많이 외로워?"
오빠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내게 하나의 질문을 더 했다.
"음.. 너도 이런 생각 가끔 하지 않아?
'예전처럼 내가 사람한테 온 마음을 다 할 수 있을까?'
아니, '앞으로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이, 그런 사랑이 있을까?'
뭐.. 이런 생각..?!"
어쩌면 오빠가 지금 내게 던진 이 질문이 어떠한 대답보다도 오빠의 마음 상태를 잘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외로운 건 둘째치고 오빠는 '사람과 사랑'이 고파보였다. 그리고 달콤한 사람과 사랑을 떠올림과 동시에 그로 인해 받았던 상처가 더 먼저, 더 깊게 느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오빠에게 나는 조금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내가 진심으로 생각하고 믿고 있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오빠. 나는 그런 사람이랑 사랑을 언젠가는 만날 거라고 믿어.
다만 그게 '언제'인지 모를 뿐, 오빠의 이런 고민들, 걱정들을 모두 싹 지워버리게 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이유를 물어본다면 대답할 수는 없어. 그런데 난 그냥 그런 사람과 사랑이 나타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 다른 어떤 사람은 나보고 아직 뭘 모른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이런 진실된 낭만, 꿈 하나는 갖고 살고 싶어.
사람은 모든지 다 생각하고 믿는 대로 보이고, 그렇게 행동하게 되잖아. 이런 믿음이 없으면 내가 찾던 사람과 사랑이 나타나도 내 눈엔 보이지도 않고, 보인다 해도 진심을 다하지 못할 것 같아.
'또 떠나가겠지.', '내 인생엔 그런 사람, 사랑이 없을 테니까.'라는 생각하면서.
그런 어리석은 거..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서. 그래서 이제는 더 믿어.
나 그런 사람을, 사랑을 정말 만나고 싶으니까."
오빠는 깊은 새벽의 감수성 때문인지 내게 장문의 답장을 보내왔다.
"네 말 듣고 보니까 그렇네..
근데 나도 나이를 먹은 건지 이제는 다 재고 따지게 돼..
꼭 사람, 사랑뿐만 아니라 작은 일들에도 미리 겁먹고 조금 덜 어려울 거 같은 것, 조금 덜 손해 볼 거 같은 것을 선택하게 되더라.
아니면, 그렇게 재고 따지고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안 하게 될 때가 더 많고.
예전에 내가 20대 중반 일 때 떠올려보면, 그때는 30대 중반 넘은 형 누나들도 다 젊어 보이고 나랑 별 차이 없다고 생각했었거든. 근데 형 누나들은 그때도 무슨 선택이든 고민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더라.
그때는 그게 이해가 잘 안 갔었어. 근데 이제는 내가 똑같이 그러고 있네.
슬기야. 요즘 내가 이래.
미친 듯이 외롭고, 미친 듯이 힘든 마음도 아닌데 뭔가 정체되어 있는 느낌 있잖아.
그러고 보면 이미 난 이런 어른이 된 건가 싶어."
오빠의 장문의 메시지를 읽고 나서 자신 있게 "오빠. 그런 생각하지 마!"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오빠의 속마음이 뭔지 너무도 잘 알 것 같아서 마음 한쪽 구석이 금세 허해질 정도였다. 그런 오빠에게 나는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할지 선뜻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오빠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맞아.. 그 마음 너무 알 것 같아.."라는 공감된다는 말 뿐이었다. 한 시간 남짓 휴대폰을 쥔 채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서였을까. 그간 숨어있던 피곤함이 갑자기 몰려오는 것 같았다. 오빠와 대화를 마무리 짓고 급하게 두 눈을 감았다. 잠이 곧바로 들 것 같았지만 역시나 만성 불면증러에게 잠이 이리도 쉽게 올 리가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 안, 그때 문득 어떤 멜로디와 가사가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바로 '넬'의 '청춘연가'를 유튜브에서 재생시켰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20대의 막바지 호주에서 지독히도 외롭게 지낼 때,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하던 시절 내 출퇴근길을 함께 했던 노래다. 단순히 하나의 노래라기보다 노래 가사 한 줄, 한 줄에 가슴 아릴 정도로 공감하며 들었던 '나의 이야기'이자 '나의 시절'이기도 하다.
참 재밌는 건 20대 후반에도 이 노래를 무척이나 '내 이야기'라고 느끼며 들었는데,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지금이야말로, '정말 내 이야기, 그리고 L 오빠를 포함한 우리의 이야기'라고 듣고 있다.
맞다.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그때가 청춘이었듯, 나중에 지금을 돌아보면 '지금 이 순간이 진정한 청춘이었다'라고 말하겠지.
청춘이란, 시절이란 이런 것 아닐까.
머리와 가슴의 부조화가 시작되는 시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가슴보다는 머리의 이야기에 귀가 기울여지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기.
그런 끄덕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아 자꾸만 가슴의 이야기를 슬픈 눈으로 뒤돌아보게 되는 시기.
그리 유쾌하지 않은, 그렇다고 슬프지만은 그런 시기.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이렇게 매 순간 망설이고, 흔들리고, 부서지는 이 시기가 훗날 지나고 보면 가장 빛났던, 가장 찬란했던 나와 당신, 우리들의 청춘이라는 것을.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청춘, 저의 꿈을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저도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에서 끝나지 않을 여러분의 청춘과 그 찬란함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