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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하기 싫으면 기대하지 말라던데

그럼에도 여전히 '기대주의자'로 살고 싶은 이유

by 기록하는 슬기


요즘 내가 일상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바로 이때다.

에세이를 다 쓰고 발행을 마쳤을 때, 글쓰기 클래스 모집하는 글을 올렸을 때, 출판사에 원고 투고 메일을 보내고 났을 때.



맞다. 이 순간들은 특별하지 않다. 어쩌면 당연한 순간들이다. 에세이 작가가 에세이를 쓰고 발행하는 일, 글 가르치는 사람이 클래스 모집 글을 올리는 일, 글 쓰는 사람이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에 투고를 하는 일은 지극히 해야 하는 일이다. 이 순간이 좋은 이유를 간단히 말하라고 한다면 '할 일을 다 해서 뿌듯하기 때문에, 후련하기 때문에'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말하고자 하는 '이 순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내가 쓴 글을 올리고 나면 '이번에는 구독자 분들이 좋아해 주실까?', '어떤 반응일까?'하고 기대한다. 글쓰기 클래스 모집 글을 올리고 나면 '이번에 모집이 잘 될까?', '어떤 수강생분들을 만날 수 있을까?'하고 기대한다. 출판사에 원고 투고 메일을 보내고 나면 '이 출판사에서는 내 글에 관심을 가져주실까?', '투고에 대한 답장이 올까?'하고 기대한다.



맞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나서 '기대하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그 후에 결과가 실망스러울지라도 아픔을 줄지라도,

희망을 꿈꾸는 짧디 짧은 찰나 같은 그 순간, 나는 삶을 감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기대는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여겼다.

'기대'라는 단어의 의미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긍정적이지 않아졌다. 기대 옆에는 부정의 언어가 따라다녔다. '기대하지 마',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거야'와 같이.



이렇게 기대를 하지 않아서 내 삶은 더욱 나아졌을까?

조금은 더 평온해졌을까? 조금은 덜 아팠을까?




P20250613_170821466_92FA5112-DE84-493B-9B9A-898110526423 (1).JPG 기대하지 말자라고 몇번이나 다짐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진심으로 원하는 일 앞에서 그 다짐은 무력하다. (feat. 원고 투고 메일)


글쎄. 기대를 억누른 수만큼 실망의 수도 줄어들었을 수는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억누른 기대의 수만큼 나는 삶의 희망, 재미, 감각도 덩달아 잃어버렸다. 한마디로 기대하지 않는 삶은 내게 너무 뻑뻑하고 밋밋했다. 나란 사람의 성향이 이런 건지, 팔자가 타고나길 이렇게 타고난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살아감에 있어 희망의 감각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삶은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야. 너무 피곤하게 깊게 생각하지 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하루하루 살더라도, 내 하루를 감각하고 싶다. '내가 내 하루를, 내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감각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감각이 희망과 긍정으로 향하고 싶은 사람이다.



물론 나처럼 사는 인생, 무척 피곤하다. 난 이 세상에 모든 생명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들은 다 피곤하다고 본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피곤함의 결과 무게가 다르다. 나처럼 HSP ( Highly Sensitive Person) 불리는 초예민한 사람들은 실제로 삶의 난이도가 몇 배 높다고 한다. (HSP 테스트해봤는데 중간 정도 점수가 나왔다. 다행히? 초초 예민은 아닌가 보다.) 살아가는데 감각과 생각이 많다 못해 넘쳐흐른다. 그래서 난 '희망, 긍정'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생각이라는 것의 특성상 그 대부분은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P20250611_223908448_7B819DCD-A3AD-4BB9-88FB-6384964040C9.JPG 나대로, 나한테 맞는 '기대'를 품고 나아가련다. 난 애초에 생겨먹기를 기대, 꿈, 희망, 낭만 이런 게 필요한 사람인가보다.



난 기대를 억지로 억누르지 않기로 했다. 실망, 절망이 폭풍우처럼 나타나 내 온몸을 흠뻑 적셔버릴지라도 비를 맞기 전까지는 맘껏 기대하고 꿈꾸려고 한다. 안 그래도 피곤하고 재미없는 인생, 기대하고 꿈꾸는 시간까지 도둑맞을 수는 없다. 이제는 20대같이 몽글몽글한 핑크빛 미래를 쉽사리 그릴 수 없는 30대 중반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난 내가 원하는 삶을 여전히 기대하고 꿈꿀 것이다.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는 삶을,

미움, 의심 따위는 모두 녹여버리는 온전한 사랑을,

다시 아무런 기약 없이 떠나는 아주 긴 여행을,

살고, 만나고,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과정 속에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난 그 삶을 이미 살고 있는 거라고 다시 한번 믿어본다.









기대하고 실망하며 반강제로 온탕에서 냉탕으로 옮겨지는 일상을 살아가는 요즘.

'어차피 실망할 거 왜 나는 이렇게 또 기대를 하는가. 기대를 안 하면 마음이 편할까.' 고민하다가 써본 글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기대'라는 건 '내가 해야지!', '하지 말아야지!' 스위치 on / off 누르듯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기대'라는 것도 감정의 영역이라 '기대를 한다'보다는 '기대가 된다'가 조금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물론 우리의 의식으로 강도와 빈도를 조절하는 노력은 할 수 있겠지만요.


기대라는 것 또한 사랑처럼 내 마음이 가는 곳에 이끌리고,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편안 것 같아요.

억지로 '기대를 하지 말아야지. 난 또 실망할 거야. 괜히 기대했어'보다는

실망할 결과가 오더라도 '그만큼 내가 정말 진심으로 원했구나. 내가 그만큼 많이 좋아했구나'라고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인정해 주는 게 저에게는 조금 더 편안 옷 같아요.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도 혹시나 기대 후 실망 속을 거닐고 계시거나 저처럼 기다리고 기대하는 일이 있어 실망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에 계신다면 제 글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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