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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석천 Sep 22. 2021

백가지 생각중 하나를 딱 집어내기(R)

상선약수

               

현대는 불안의 시대라고 한다. 불안은 불확실성에서 온다. 쥐를 새로운 장소에 가져다 놓으면 불안 반응을 나타낸다. 불안은 생명체의 원초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현대처럼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어지러울 정도의 변화는 어쩔 수 없이 불확실성을 확대시키며 우리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증폭시킨다. 그러므로 불안의 대처는 아마 현대인의, 특히 사회진입을 앞둔 청년들에게는 더욱 중요해진다. 청년들은 입술이 마르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경험하며 사회에 진입한다. 불안해지는 마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예나 지금이나 삶의 중요한 문제이다. 21세기 두뇌과학의 시대를 맞으며 자신의 (두뇌) 잠재력 발휘를 위해서 불안의 대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2012년 하버드 경영대 애미 커드 교수는 TED 강연에서 단 몇 분간의 자세 변화가 마음 상태를 바꿀 뿐만 아니라 호르몬의 분비까지 변화시킨다는 흥미 있는 실험 결과를 보여주었다. 피험자들에게 한 그룹은 원더우먼 같은 자신감 넘치는 확장적 자세를 2분 간 취하게 하고 다른 그룹은 팔짱을 낀다든가 손을 모으는 것 같은 위축된 자세를 2분 간 취하게 한 실험 전후 침을 채취하여 테스토스테론 (결단의 호르몬)과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의 변화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는 앞 그룹의 경우 테스토스테론이 20% 증가하고 코르티솔이 25% 감소한 반면 뒤 그룹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 10% 감소하고 코르티솔은 17% 증가하였다. 두 그룹의 호르몬 변화 차이가 테스토스테론의 경우 30% 이상, 코르티솔의 경우 50% 이상이었다. 몸이 마음을 지배한다는, 즉 자세가 마음 상태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실험 결과이다. 취업 면접이나 수주 상담과 같은 입술이 마르는 스트레스의 순간에도 화장실에 가서 잠시 자신감을 상징하는 확장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위축되지 않고 상황에 집중하도록 뇌 호르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2012 애미 커드 TED 강연]      


애미 커드의 실험은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다루는 ‘자세‘라는 새로운 옵션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과학적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가 우리의 불안한 마음의 해결에 일조를 할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고 이를 대처할 수 있을까?      


뇌는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 신호와 기억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그린다. 즉 내가 보고 느끼고 있는 세상은 뇌의 창작품이다. 이렇게 뇌가 그린 세상, 인식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인식한 세상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실존(또는 실제)의 세상과 나의 인식 세상의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내가 그리고 인식한 세상을 실존 세상으로 혼동한다. 이러한 오류는 예부터 지적되어 오고 있다. 노자는 도덕경의 첫 구절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우리가 도라고 말하는 도는 실존의 도가 아니며, 이름도 마찬가지이다)에서  두 세상의 차이를 지적하고 시작한다. 현대인의 많은 정신적 갈등은 두 세상의 차이에서 출발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차이가 심해지면 우울증과 불안과 같은 정신적 질환으로 발전한다. 상사는 단지 사무적인 이야기를 하였을 뿐인데, 나는 그가 의도적으로 괴롭힌다고 느낀다. 결국 피해의식이 생기고 심리적으로 뒷걸음치며 상황을 악화시키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며 어떻게 실존 세상을 적절히 인식하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우울한 생각들을 접고 세상을 차분히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을까?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였다. 상선, 즉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물과 같이 살라”고 한 것이다. 물이 흘러감과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물은 먼 바다로 흘러갈 때에도, 오직 다음 스텝만을 보며, 지금 여기보다 높으면 머무르고 낮으면 나아가며 결국 바다에 도달하게 된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지금 위치가 더 낮은가만을 보며 흘러간다, 노자는 “자신을 낮추는 물의 겸손함”을 말하였고 공자는 “쉼 없이 흐르는 물의 근면함”을 말하였다. 상선약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자주 인용하는 사자성어라고 한다. 우리도 어려울 때, 흐르는 물을 보며 느끼고 깨닫는 각자의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 관점으로는 이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물은 ‘지금 여기‘의 위치만 보며 흘러간다. 이러한 현상은 물리학에서는 국소성(locality)이라고 하며 이가 바로 장론(field theory) (용어설명; 장론)의 기본 원리이며 자연현상의 기본 원리이다. 물은 ‘지금 여기’만 보고 흘러가고 지구는 ‘지금 여기’만 보고 공전을 하고 있다. 우주가 상상을 초월하는 그 거대하고 장대한 드라마를 펼치고 있으나 이는 모두 이 국소적 ’지금 여기‘의 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질 뿐이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삶이 힘들어질 때, 우리 뇌를 이해하는 것은 나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삶이 힘들기만 한 것인가?’ 우리 뇌의 무게는 몸 전체의 2% 정도일 뿐지만 소모하는 에너지는 25%로 아주 에너지 고소비 기관이다. 따라서 뇌는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중요할 때는 에너지 소모가 많은 정신집중을 하지만 평소에는 최대한 절약하는 이완 모드로 돌아간다. 엄마의 잔소리처럼 반복되는 무해한 정보는 왼쪽 귀로 듣고 오른쪽 귀로 흘리지만 [습관화, habituation] 벌에 쏘이든가 독버섯을 먹은 고통처럼 중요한 정보는 절대 잊지 않도록 [민감화, sensitization] 기억한다. 뇌는 에너지 소모율이 매우 높아 근육보다도 더 게을러지기 쉽다. 왜냐하면 게으름은 에너지를 절약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으름이 습관이 되면 좀처럼 새로운 것을 배우려하지 않는 완고한 성격이 되어 주변과 마찰을 빚고 피해를 주게 된다. 그러면 반작용으로 나에게 돌아오는 반응들이 차츰 거칠어지고 따라서 나는 여기저기서 스트레스를 받는 유해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뇌는 점차 부정적 신호에 반응해야 하고 그러면 뇌는 피곤해진다. 신호를 계속 무시하며 게으른 습관을 고집하면 상황은 감당하기 힘들게 악화된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상황에서 들어오는 신호들을 그때그때 대응하면 어려워질 개연성이 높은 문제들도, 흐르는 물처럼, 일상적 수준에서 미리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정말로 사소한 습관 하나가> ('나도 별의 순간을, 와이낫' 매거진)글에서처럼 보습제를 꾸준히 바르면 고질적 피부병을 피할 수 있고 자동차 엔진 오일을 제때 갈아주면 엔진을 해체해야 하는 큰 소동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무위(無爲)의 지혜이다. 비록 상황이 어려워도,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지 말고 충실할 것을 상선약수는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일들을 염려 않고, 이미 지나간 일들에 후회하고 집착하지 않으며, 물이 바로 한 발자국 앞만을 보고 나아가듯이 ’지금 여기’에서 들어오는 신호에 귀기우리는 것이 나를 방황케하는 ‘백가지 생각 중 핵심 하나만을 딱 집어내기‘의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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