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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Oct 29. 2024

이제는 사라진 불맛의 가게들

불맛 중독자로서 그간 십 수 꼭지의 글을 썼지만, 매 끼니를 그렇게 먹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제일 많이 먹는 건 우리 가게 메뉴다. 그래야 손님께 나갈 음식들이 제대로 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그다음이 집밥이다. 일을 마치고 가게 밖을 나서면 좋든 싫든 집에서 한 밥을 먹어야 한다. 우리보다 늦게까지 문을 여는 식당이 잘 없어서다. 목수가 사는 집에 비가 샌다 했던가. 외식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정작 외식을 할 기회가 좀체 없다. 결국 내가 불맛의 음식을 즐기는 건 기껏해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다.        


이태원에서 자주 먹던 수블라키(그리스식 돼지고기 케밥).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그런 내게도 일상적으로 불맛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으니 대학생 인턴기자 시절이다. 구직시장에서 이런저런 고난을 겪고 자영업으로 바로 뛰어든 내게 당시 인턴기자 활동은 내 인생에서 유일한 회사 생활이었다. 기자 직군은 취재를 하므로 다른 회사원들에 비해 외근이 많으나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인터뷰이와의 약속이나 갑작스러운 현장 취재가 없는 날에는 사옥으로 출근해 브리핑과 발제 및 사전취재를 한다. 상근기자 선배들과 함께 대형 기획기사에 쓸 자료들을 취합하기도 한다. 그런 날에는 같은 빌딩에서 일하는 회사원과 같은 일과로 움직인다. 이 시간을 버티게끔 돕는 순간이 딱 둘 있다. 하나는 점심시간, 다른 하나는 퇴근시간이다.


생애 첫 출근, 잊히지 않는 고추장 불백 세트


점심시간이 되면 빌딩에서 근무하는 회사원들은 하나같이 회사 밑 푸드코트와 상점가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가격도 싸고 맛있는 메뉴들이 많았다. 그때 상근 기자 선배들이 상점가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가 맛있다며 알려주기도 했다. 여러 가게가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하 1층에 있던 고추장 불백 직화 세트였다. 고추장 양념에 재운 돼지불고기를 연탄불에 구워내는데, 이 메뉴를 시키면 콩나물무침, 계란말이, 순두부찌개까지 같이 한 상에 나온다(한 상에 2인분이다).


동기들과 밥을 먹을 때면 꼭 이 메뉴를 시켜서 같이 나눠 먹곤 했다. 반은 순두부에 비벼 먹고 나머지 반은 직화 제육을 밥 위에 올려서 먹었다(아쉽다. 그때 사진이라도 좀 남겨 놓을 걸). 나는 먼저 순두부에 밥을 비벼서 남김없이 먹은 다음, 직화 제육을 먹었다. 쌈을 싸서 먹기도 하고 흰쌀밥 위에 올려 먹기도 했다.   


신기한 건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아내도 이 가게를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아내는 같은 내가 인턴기자를 수료한 바로 다음 해 입사했다. 회사 선배가 만나보라며 연락처를 줬는데, 소개팅 자리에서 그 가게들의 근황을 물으며 쉽게 친해졌다. 그리고 얼마 뒤 푸드코트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귀금속 매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그 넓은 푸드코트가 일시에 다 사라지다니. 그 빈자리에 귀금속 판매점? 굉장히 생뚱맞은 입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 푸드코트, 시간이 흘러 사라진 불맛의 가게들


그럼 이곳에 일하는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밥을 먹는 걸까. 설레는 마음으로 점심 메뉴를 고르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은 이제 어딜 가야 볼 수 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흔치 않은 직화구이 맛집이 그렇게 또 사라졌다. 비단 이 가게만이 아니었다. 직화로 패티를 구워주는 신촌의 햄버거집, 이대 근처에서 반미를 팔던 베트남 음식점, 구운 차슈가 맛있던 홍대의 단골 라멘집도 최근 몇 년 새 모두 문을 닫았다.     


사실 도심에서 뭔가를 굽는 가게를 들이는 건 쉽지 않다. 그건 백반집이 사라져 가는 요즘의 추세와도 비슷하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매캐한 연기 앞에서 뭔가를 구워야 하고, 다른 가게와의 마찰이 생길 수도 있으며, 하는 일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점점 줄어간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내 일상에서 하나 둘 사라져 간 가게들은 모두 그런 고민을 안고 있었으리라.


사실 나도 다르지 않다. 장사를 하는 순간 누구나 안게 되는 고민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10년 20년이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다. 30년을 할 수도, 당장 다음 달까지만 하게 될 수 도 있는 게 장사다. 시작은 내 의지로 했을지 모르나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제대로 문을 닫는 것도 장사의 덕목


생각이 거기까지 닿을 때면 ‘모든 폐점이 꼭 우울한 일만은 아니잖아?’라고 반문하곤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게만큼이나 다양한 이유의 폐업 사유가 있다. 꼭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는 건 아니다. 반대로 장사가 너무 잘 돼 높은 가격에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넘겼을 수도 있고,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는 좀 쉬고 싶었을 수도, 현재의 일보다 더 하고 싶은 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직업의 수명은 점점 줄고 있다. 자영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가지 일을 평생 할 수 있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게 지금의 세상이다. 그럴 때일수록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빠른 결단은 필수다. 장사가 안 되는 걸 넘어서 건물주에게 맡긴 보증금까지 까먹고 있는 상황이라거나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게 과로한 몸이라면 특히.


사 먹는 입장에서도 아쉽기만 한 일은 아니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음식점들이 생겨나고 있으니까. 어쩌면 그보다 더 맛있는 집을 찾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그런 점에서는 장사는 연애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해서 없어진 가게들을 보고 끝 모를 우울함에 빠지는 짓은 이제 하지 않는다. 그저 그 변화의 기로에서 모두가 최선의 선택을, 즐거운 마무리를 했길 바랄 뿐. 그래도 그때의 맛들을 생각 하면 지금도 기분이 좋다.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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