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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Mar 14. 2024

내 몸에 집중해 본 적 있나요?

운동을 시작한 지 10개월 정도 됐다. 충격적인 건강검진 결과 때문이다. 술, 담배 안 하니까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몸 관리를 놓고 살아온 탓이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공복 혈당이 120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130을 넘었다. 체지방률은 무려 27.5%. 의학적으로 비만의 기준을 충족했다. 이렇게 두면 고지혈증으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 얘기를 듣고 '멘붕'에 빠졌다. 생각해 보니 그럴만했다. 운동이랑은 담을 쌓고 산 시간이 장장 얼마였더라.     


그럴수록 몸은 더 피곤해졌다. 이유 없이 온몸이 결려왔고 앉을자리만 찾았다. 앉고 나면 영락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이걸 이겨내겠다며 공복에 탄산음료와 커피를 뱃속에 쏟아부어가며 일했다. 출출할 때마다 다디단 과자를 버릇처럼 씹어댔고, 밤 열한 시에 매운 라면을 두 개씩 끓여 먹었다. 그나마 몸이 이만치 버텨준 게 다행이었다. 다행히 6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 기간 내에 몸을 최대한 정상치로 돌려놔야 했다.   


바로 피트니스 클럽에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5kg짜리 아령을 네 번 들었는데 팔이 후들거렸다. 충격적인 체력. 그제야 나는 그간 스스로의 몸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었는지를 실감했다. 집에 와 찬장과 식탁에 쌓아 둔 과자와 초콜릿을 전부 치워버렸다. 다음 날 그 자리를 통밀빵과 파스타로 채웠다. 아예 입맛을 개조시키기로 했다. 짬뽕이 먹고 싶다면 대신 쌀국수를 먹는다거나, 프라이드치킨 대신 그릴 치킨을 시키는 식으로 바꿔 나갔다. 정제 밀가루와 설탕 근처에는 아예 가지 않았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성공했냐고? 꽤 독하게 관리를 한 덕에 6개월 간 근육량이 1kg 늘었다. 체지방률은 19.3%까지 내려왔다. 쉬지 않고 달리기 1.2km, 줄넘기 3라운드를 뛸 수 있을 만큼의 지구력도 생겼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7개월 차에 정체기가 찾아왔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열심히만 하시면 초반 6개월 동안은 드라마틱하게 몸이 바뀔 겁니다. 그 이후부터가 중요해요."라고 했는데, 사실이었다. 몸이 더디게 변했다. 근력도 좀체 늘지 않았다.      


정체기를 빠르게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유튜브를 검색하니 온갖 얘기가 나왔다. 고중량 저반복. 저중량 고반복. 무게가 아니라 자세다. 자세만으로는 부족하다. 식사량을 늘려라. 휴식이 중요하다. 초급자는 매일 해도 괜찮다 등등. 혼란했다. 결국 염치 불고하고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어느 날 트레이너 선생님이 할 일이 없었는지 나한테 말을 걸어왔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선생님, 제가 요즘 정체기인 것 같은데..."

"그럼 PT를 받아보시죠! (반짝이는 눈빛!)"

"아! 네네, 조만간..."     


내가 주저하는 걸 알아버린 걸까. 더 이상의 권유는 없었다. 대신 그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한 세트 들고 쉴 때 보통 뭐 하세요?"

"핸드폰 보는데요."

"그것부터 일단 바꿔보시죠."

"에?"

"운동도 공부랑 비슷해요. 결국 집중입니다."     


단련하고자 하는 근육에 부하를 집중하는 것. 이를 피트니스의 세계에서는 '고립(Isolation)'이라 한단다. 운동을 수행할 때마다 이 고립에 충실해야 근육이 발달한다는 게 그의 요지였다. 이건 자세나 호흡 이전에 태도의 문제다. 이걸 체득하는 것도 일종의 훈련이라 했다.     


이두박근을 이용해 덤벨을 든다고 하자. 이때 힘이 들어가는 이두박근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다른 부위로 부하가 분산되면 운동 효과는 떨어진다. 오로지 부하가 필요한 근육과 그 움직임만 생각해야 한다. 횟수를 반복할수록 이두박근은 점점 긴장하며 이내 단단해진다. 세트를 다 채울 때쯤이면 '더는 못 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고통이 밀려온다.     


한 세트를 끝내고 바벨을 내려놓으면 심장에서는 근육에 에너지원을 채워 넣고 미세손상을 회복하기 위해 정신없이 피를 보낸다. 회복의 시간. 가만히 있어도 좋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도 좋다. 몸이 다시 에너지로 채워지는 기분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개인차는 있겠으나 2~3분간 휴식하면 첫 세트 대비 90% 수준으로 근력이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시작. 이게 한 사이클이다. 이 순환에 오롯이 몰입하는 게 고립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어떤 면에서는 요가와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자기 몸과 소통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고중량 저반복, 저중량 고반복은 분명 효과적인 방법론들이긴 하나 이 진지함이 전제되지 않으면 몸이 강해지기 힘들다고 했다. 그렇게 일장 연설을 하더니 그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더 자세한 게 알고 싶으면 PT를 받으라는 말과 함께.     


(조만간 PT를 받을 생각이지만) 일단은 그의 말대로 '고립'에 신경 쓰면서 운동해 보기로 했다. 첫 도전은 랫 풀 다운. 케이블에 매달린 바(Bar)를 잡고 광배근을 이용해 끌어내리는 운동이다. 핸드폰은 라커룸에 갖다 놓고 비장한 마음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철봉에 매달리듯 팔을 최대한 폈다. 근육을 최대한 이완시킨 뒤 광배근에 신경을 집중했다. 숨을 들이켜면서 손잡이를 내렸다. 다시 내쉬고 서서히 원위치. 팔 최대로 펴면서 마무리. 평소에 가볍게 들던 무게인데 자극이 간다. 숨이 가빠지고 통증이 느껴진다. 걸레를 쥐어짜는 기분으로 한 번 더 손잡이를 잡아 내렸다.     


오, 이런 느낌이구나. 자기 몸에 제대로 명령을 내리는 느낌. 이 방식으로 어깨 운동과 등 운동, 복근운동을 차례대로 끝냈다. '고립'에 공을 기울여서일까. 다음 날 기분 좋은 근육통이 생겼다. 무게와 횟수의 변화 없이 그저 내 몸에만 몰입했을 뿐이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근육량이 늘었냐고? 드는 무게가 늘었냐고? 아직은 잘 모르겠다(사실 아무리 뒤져봐도 집중력과 운동능력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문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운동이 끝난 뒤에 느껴지는 후련함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가 정해진 무게를 기계적으로 들며 '아, 그래도 내 할 일을 했다'식의 자기위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상쾌함이다. 이 상쾌함이 쌓일수록 몸은 점점 건강해지겠지. 그 생각만으로도 피트니스 클럽에 가는 발걸음이 이전과는 다르다. 나처럼 막 운동을 시작한 '헬린이'라면 잘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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